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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일대기:인생-사계 - 가을 : 4
20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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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일대기:인생-사계 - 가을 : 4

 Ⅰ. 일대기 : 인생-사계(四季) 

 

 

인생!
하루 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안은옥 | 강서구립우장산숲속도서관_서울

 

 

내 생애에 가장 추웠던 날
아파트를 구입하고 약간의 빚도 있거니와, 혼자 살기에는 현재 내가 전세 살
고 있는 아파트 생활이 불편함이 없기에, 내 명의로 산 아파트를 전세금 받고,
전세를 주었다. 2001년 2억 전세금으로 약간의 빚을 갚고, 나머지 금액은 예금
이율이 높은 저축은행에 예금자 보호가 되는 오천만 원씩 분산해서 엄마와 내
명의로 예금을 했다. 거치기간을 1년씩 계속 연장을 시켰다. 세입자가 2년 계약
이기에 여차하면 돌려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엄마가 위독하시면
서,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 예금 찾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해서 엄마 이름으로
했던 예금을 내 명의로 바꾸었다. 계속 연장함으로서 재예치하는데 여러 은행
을 다녀야 하는 불편함과 많은 시간소비가 아까워 한곳의 저축은행에 내 명의
로 예금자 보호가 되는 상환선인 오천만 원을 휠씬 상회하는 1억5천만 원을 한
입에 몽창 떨구었다. 몇 년 동안 거래했어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안심했었
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연말이었다. 아침 뉴스시간에 저축은행의 파산으
로 고객들이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내귀를 의심했다. 매 시간별 뉴스를 다
시 듣고서야 내가 예금한 저축은행이 파산된 것을 확인했다. 하늘이 노랗고, 온
몸에 힘이 쫙 빠져 나가면서 주저앉았다. 기염을 토할 일이였다. 그 돈이 어떤
돈인가? 물론 다들 힘들게 벌은 돈이긴 하지만, 미용 일을 하면서, 하루종일 서
서 일하고, 고객들한테 업신여겨 가면서 땀과 피로 물든 단순 육체적이며, 많은
감정노동으로 이루어진 나에게는 값진 노동 댓가로 이룬 것이다. 너무나 귀하
게 벌은 돈이기에 먹고 싶은 것도 안 먹고, 옷도 안 사고, 안 쓰는 초절약생활로
전철했다. 백화점 가본지도 오래 되었다. 나에게는 그런 애지중지한 돈이였다.
또한 과거에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가졌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나이도
많지 않아 젊기도 해 많은 돈 벌 기회가 많았고, 경제적 관념이 없이 돈의 크
기를 자세히 알 수 없기에 지금처럼 크게 힘이 들지는 않았다. 또한 가족도 옆
에 있고 엄마도 있어 마음의 위로를 느꼈지만, 이번에는 홀로 나이도 많아 떠
안는 부담은 실로 막중했다.
내가 24살때 둘째오빠는 홀로 미국에 기술자로 가서 많은 돈을 서울에 있
는 둘째 올케한테 송금했다. 둘째 올케는 아파트로 돈을 벌어 보겠다며, 나의
돈을 꿔갔다. 그 당시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차곡차곡
쌓아놓아던 나의 전재산, 그 당시 아파트 한 채에 맞먹는 금액이었다. 처음에
는 적은 금액이었는데, 이자도 꼬박 꼬박 주었고 오빠부인인 가족이라서 아
무런 생각없이 서로 도울 수 있으면 도와주고 나로 인해 돈을 벌수있으면 서
로 윈윈효과를 볼 수 있다란 생각에서 몇년을 걸치니 전재산을 꾸어주게 되
었다. 내가 대학교를 입학하고 2학년 여름방학때 영국 영어 연수를 가려고
올케한테 돈을 일부 달라고 했다. 하지만 차일피일 하루하루를 계속 미뤘다.
그러던 어느날 올케가 말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막내딸이 아직 어린 5
살을 남겨두고 위로 딸들이 2명있는데 그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렇
게 어린 세 딸을 남긴채 사라졌다. 둘째오빠는 올케를 전국으로 찾아 다녔다.
하지만 숨어버린 사람을 찾기란 모래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어려웠다. 둘
째 올케는 동네사람들에 의하면 부동산하던 남정네랑 바람이 났다라는 소문
도 돌았다. 나중 오빠는 칼까지 들고다니며 미친 듯 나죽고, 너죽고 하는 심
정으로 울부짖었다. 엄마는 그 길로 둘째오빠 집으로 가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림을 떠맡았다. 그 나이드신 늙은 노모가 당신 몸도 건사하기 힘들었던 나
이다. 그 당시 오빠가 많은 돈을 벌었는데도 불구하고 내 집하나 마련하지 못
하고 반지하에서 살았다. 노모는 반지하에서 힘들어 하셨다.
아이들도 불쌍했고, 오빠도 안타까웠지만 원망도 스러웠다. 왜 이지경이
되도록 가정을 소홀히 했는가? 라고 물으니 난 돈만 열심히 벌어준 죄뿐이
없다고 했다. 어디서 내 돈을 받을것인가? 공중에 떠버린 사람한테 소리 칠
수도 없고, 난감한 지경이다. 사실 내 나이가 돈이란 감이 오지를 않았다. 그
돈으로 경제적 가치를 경험하지 못해 그때는 그렇게 까지는 심하게 하늘이
노랗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도 많아서 더욱 더 취업도 힘들어지고,
돈 벌 수 있는 상황은 별로 없는 작금에 나의 두번째 경제적 손실인 전재산을
잃었다는 생각에 미치지 않은게 다행이었다. 하늘을 우러러 하느님은 왜 나
한테 이런 고통스런 형벌을 두 번씩이나 가하실까? 왜 나일까? 하는 질문을
수없이 허공에대고 소리질렀다. 우리나라 정부한테도 따지고 싶었다. 이런
경제적 사태를 미연해 방지할 수도 있었던 문제였다. 저축은행의 부실한 경
영을 현 정부가 방관한 경제적 책임을 고스란히서민이 떠안은 거였다.
과거에도 뉴스에서 저축은행 사태가 났었을 때 남의 일로만 알았다. 그리고
예금할 때도 설마 그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리란 꿈도 꾸지 않았던 일이, 눈앞
에 펼쳐졌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고, 한낱 꿈이려니 싶었다. 그리고는 어김
없이 시간이 지나 새해가 밝아지고 있었다.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고, 일도
머리도 엉망진창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첫해 첫날 새벽에 눈이 엄청 많이 내
렸고, 최하의 기온을 기록하는 엄동설한으로 너무 추워 온 세상이 얼어붙었고,
거리에 사람구경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도시는 조용했다. 마치 숨을 고르는 것
처럼 온 도시가 정지된듯했다. 나는 마음을 어떻게 추스려야할지를 몰랐다.
아침 일찍 북한산을 향했다. 북한산은 쉬는 날이면 자주 갔었던 평상시 즐
기던 나의 힐링 장소였다. 그곳에서 산 위를 걸으면서, 사유도 하고, 머리가
아프면 뇌를 비우기도 하는 무념무상의 상태를 즐긴다. 산 위에 올라가 물이
흐르는 계곡에 앉아, 물에서 나오는 음이온을 내 몸이 받으면 머리가 맑아져
서, 현재의 문제의식인 고민을 많이 다각도로 생각해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어 좋고, 앞으로의 미래를 구상도 할 수 있는 나만의 장소였다. 그래서 그
렇게 혹한으로 춥고, 눈도 많이 쌓여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북한산을 눈바람
이 세차게 불고 입김이 나오자마자 고드름으로 변하는 강추위를 맞아가며 산
을 걷고 또 걸었다. 가슴은 오히려 강한 눈바람으로 시원하게 느껴졌다. 막혀
있던 가슴이 뻥뚫린 느낌이다. 산위의 풍경은 온통 하얀 눈세상이다. 모든 것
을 덮어 버렸다. 온통 하얀색인 백지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힘들게 몇시
간을 걸어 산위를 오르면서 내린 결론은 그래! 아직 몸은 건강하잖아! 돈은
또 다시 벌면 되지만 만약 건강을 잃었다면 회복조차 힘들었을텐데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몸이 아프면 병든 몸으로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병원비로
돈도 날리고 허무하게 죽지만, 사지가 멀쩡하게 건강하니 다행이다라며 마
음의 위로를 받았다. 산한테, 자연의힘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힘을 받았고, 자
연이 주는 정확하게 산이 우리에서 가져다 주는 정신적, 육체적 건강함과 마
음의 위로 힐링은 무한하여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내 생애 경제적 손실의 아픔을 두 번씩이나 크게 치렀다. 값비싼 교
훈인 것이다. 일련의 저축은행의 사태를 보면서 우리나라를 원망했다. 저축은
행의 부도는 정치적 개입도 있었고, 얼마나 부실하고 안일하게 행정심사를 허
술하게 해서 그것을 서민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생각하니 억울했다. 정치인들
의 놀음에 서민이 놀아나고 있었다. 결국 나라는 개개인의 국민의 책임은 안
지면서, 의무만을 크게 부각시킨다. 몇 년 전 우리나라 국민이 다른 나라에 감
금되어 힘든 상황에서도 구해내지 못하고 사망했을 때 나라가 국민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충격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민을 구했
다. 물론 국력의 힘인 것을 부인하진 않지만, 국내에서 일어나는 일에서는 서
민을 울리는 일을 만들지는 말아야 하지 않는가? 물론 내 잘못이 가장 큰 이유
인 것은 안다. 결국 나라는 국민을 위해 해줄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 정치가들
은 자기들의 이익추구만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다. 그들의 잔치에 그저 우리
서민들은 놀아나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피해의식을 느끼며 살고 있다. 작년에
베스트 셀러였던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란 제목에 확당겨지는 끌림이 있
어 읽게 되었다. 요즈음 헬조선이니 하면서 우리나라의 사회체제에 환멸을 느
낀 젊은이의 세태를 묘사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 꿈을 이룰 수 없는 아득
함에 호주행을 떠나면서 행복을 꿈꾸는 한국의 젊은이를 표현했다. 우리나라
의 젊은이뿐만 아니라 국민조차도 살기가 힘들다. 젊은이들은 꿈조차 펼칠 일
자리 조차 허락치 못하는 아쉬움에 가슴 아프다. 나는 외국에 사는것을 매우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았었다. 왜냐하면 외국에 살면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
아가야 되며, native 영어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상이 글로벌화 되어짐
이 현실로 피부에 와닿았다. 가까운 친구들이 미국, 캐나다로 이민가고 중국,
베트남으로 가서 사는것을 보고 또한 친구 자녀들이 외국에 살고있는 사람들
과 결혼을 하면서 더욱 더 세계가 가까워짐을 피부로 느꼈다.  


▶ 이 글은 안은옥 님의 자서전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며,
전문은 홈페이지(www.libraryonroad.kr)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홈페이지 공지 및 보도-홍보에서 원본파일을 다운하실 수 있습니다.(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