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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일대기:인생-사계 - 여름 : 2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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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일대기:인생-사계 - 여름 : 2
Ⅰ. 일대기 : 인생-사계(四季)


새 출발을 위한 삶의 자화상
이성구 | 광진정보도서관_서울


맛있게 먹었던 ‘짬밥’
유신독재체제의 소용돌이 속에 휴강과 휴교가 반복되면서 대학 2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의미 없는 시간의 흐름에 회의를 느끼고 2학년을 마치
고 군 입대를 결심하였다. 1973년 3월 2일 조치원에 있는 보충대 훈련소에
입소하여 교육훈련을 받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격리된 시설에서 고된 훈련을 받으며 생활하다보니 자유
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끼게 되었다. 군대에서 주는 밥을 비하해서 ‘짬밥’
이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맛이 없어 못 먹겠다고했다. 그래서 배식
으로 주는 밥을 먹지 못하고 군대 매점에 가서 사서 먹었다. 그러나 나는
고달프고 어려운 자취 생활을 하다 와서 그런지 뜨거운 밥과 국물이 너무
나 맛있어 세끼를 꼬박꼬박 모두 먹었다. 그래도 부족해서 추가로 더 먹으
려 했으나 떨어져서 못 먹을 때는 서운한 마음으로 돌아서야 했다. 오히려
사회에서보다 영양가 있는 식사를 골고루 제때 먹으니까 말랐던 얼굴에 살
이 붙어 동안(童顔)이 되어 있었다. 군 생활은 어려움이 없이 잘 적응하며
생활하였다. 다만 사격훈련 때 사격 성적이 저조하여 힘든 기합을 많이 받
았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위해 의정부에 있는 보충대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보충교육을 받으면서 일요일이면 점심 준비를 위해 식당으로 가
서 라면 봉지를 뚫는 일을 했다. 그런데 식사시간에 국물에 라면 스프를 넣
어 먹으면 그렇게 맛이 있었다. 이를 위해 라면에 있는 스프를 몰래 훔쳐서
통일화 발아래에 넣었다. 이를 눈치 챈 감시병이 휴대품 검사를 하여 스프
를 뺏겨서 먹지도 못하고 죽도록 기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5분 대기조로 주변 순찰을 나가 벌판의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다 먹으면
그렇게 맛이 있었다. 그래서 외출하면 호주머니에 고추를 몰래 따 넣어 가
지고 와서 식사시간에 동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면 매우 고맙고 즐거
워했다.

영창 갈 뻔한 위기의 순간들
회식하는 날의 보초근무
군대 생활은 행정병으로 편안히 근무했다. 기억이 생생한 이야기로는 6
군단 시설처에서 근무했을 때인데 일이 너무 많아 매일 야근할 정도로 고
된 일과를 보냈다. 이를 위로해 주기 위해 일요일 밤늦게 야근이 끝나면 막
걸리와 돼지고기를 사다가 회식을 시켜주었다. 이러한 환경은 다른 부서
에 근무하는 군인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회식이 있던 어느 날 보초 근무가 새벽에 배치되었던 나는 마음 놓고 술
과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한참 회식이 진행되던 11시쯤 고참 선배가 보초
근무로 호출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가장 졸병인 나에게 대신 먼저 보초를
서면 자신이 새벽에 서주겠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먹다 말고 보초 근무를 나
갔다.
행정병인 나는 비밀 취급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주로 CP막사나 통신실
같이 중요한 보안시설에 배치되어 보초근무를 섰다. 이날도 술에 취한 상
태에서 할 수 없이 비몽사몽간에 CP 보초를 섰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잠이
오는지 참을 수가 없었다. 졸음을 참으며 서 있다가 일직사령이 잠자리에
드는 것을 확인하고 꽃밭 옆에 있는 바위에 앉아 잠깐 눈을 감는다는 것이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다.
일직사령은 잠이 오지 않았는지 막사 밖으로 나와 주위를 살펴보다 보초
가 잠자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직사령은 본부중대 일직사관을 호
출하여 조인트를 때리면서 크게 혼냈다. 그래서 혼을 맞은 일직사관은 모
든 중대원을 기상시켜 침상위에 부동자세로 세워 놓고 기압을 주면서 나
를 불러내어 실신할 정도로 매를 때렸다. 그리고 중대원들은 완전 군장으
로 연병장과 막사 주위를 맴도는 단체기합을 받았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
나는 본부중대 사무실에서 영창을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었다.
눈앞이 캄캄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런데 근무 부서
인 시설처장이 이 소식을 듣고 일직사령이었던 작전처장을 찾아갔다. 그
리고는 내가 열심히 일을 잘 했고, 자대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부
서회식이 있는 날이었으니 선처해 주길 건의하셨다. 건의는 받아들여져서
영창은 면하게 되었으나 그 죄 값으로 예하부대인 야전 공병 대대에 전출
되었다.
이런 연유로 말단 소충분대에서 눈물나는 훈련과 일을 하게되었다. 훈련도 
고달팠지만 훈련이 없을 때는 참호 수리나 도로건설에 참여하여 밤낮없이
고달픈 생활로 팔자에 없는 귀양살이를 했던 가슴아픈 추억도 있다.
고단한 소대생활이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대대 작전정보과에 행정병이 필요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내가 차출돼서 발령을 받게 되었다. 작전정보과
교육계로 근무하면서도 매일 작전과 교육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이를
상급부대에 보고하기 위해 거의 날밤을 세워가며 차트를 만드는 일이 계
속되었다. 그래도 육체적으로 고달픈 군생활에서 벗어나 다시 편안하게 행
정을 보는 행운을 얻은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여기서 얻은 교훈으로 평생 머리를 맴도는 말이 있는데 ‘한번 실수가 10
년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순간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평생의 운명을 좌
우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가는 중요한 경험을 하였다.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결정
군 제대 1년 정도를 남겨두고 새로 창설된 3군사령부의 군사편찬을 위
한 군사편찬위원회에 차출되어 근무하게 되었다. 본청 본부중대에 파견되
어 말년에 어색하고 어정쩡하게 생활하게 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본청에는 수시로 장군들이 돌아다녀 될 수 있으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숨
바꼭질하면서 피해 다녔던 생활이 생각난다. 군기가 너무 세서 지적을 받
지 않기 위해 고참 표시가 나는 허름한 복장을 신병과 같이 새것으로 받아
서 갈아입었다. 새롭게 다시 신병 생활을 시작하는 것같아 군사편찬에 참
여하는 보람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롭게 시집살이를 하는 파견 생활
에 불만도 많았다.
특히 사령부에는 여군 중대가 있어 함께 근무하고 있었는데 군사편 찬위
원회에도 여군 중사가 타자수로 배속되어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여군
중사가 나에게 타자기를 들고 본청으로 따라오도록 지시를 하였다. 제대
말년에 고생하고 있는데 타자기를 들고 따라갈 수는 없다는 얄팍한 자존
심으로 이를 거부하고 졸병에게 이를 대신하게하였다. 이에 분개한 여군
중사가 중대장에게 명령 불복종으로 직접 보고하겠다고 말하였다.
부대 안에서 여군에게 불복종하거나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면 바로 군대
영창에 가도록 되어 있었다. 제대 말년에 파견 와서 또다시 군대 영창에 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정말 한심하였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군
사편찬위원장의 중재와 배려로 잘못을 사과하고 일을 마무리 지었다. 이
일도 잊지 못할 사건으로 머리에 오래 남아있다.


▶ 이 글은 이성구 님의 자서전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며,
전문은 홈페이지(www.libraryonroad.kr)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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