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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일대기:인생-사계 - 봄 : 2
201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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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일대기:인생-사계 - 봄 : 2
Ⅰ. 일대기 : 인생-사계(四季)

별을 따는 남자
문순동 | 강서구립우장산숲속도서관_서울


내 고향 ‘지 금 대’
배산임수. 내 고향은 마을 뒤로는 필봉산 준령이 임금처럼 허리를 젖혀 앉
아 있고 마을 앞으로는 낙동강 상류인 감천내가 유유히 흐르는 그야말로 하
늘만 빼꼼히 보이는 첩첩산중 산골마을 ‘지금대’이다. 어릴 때는 동네이름이
너무 촌스러워 괜히 부끄럽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무리 불러 봐도 싫증나지
않고 감칠맛 나는 이름이다. 김천시내에서 거창방면으로 40 여리 떨어진 작
은 산골마을에는 깜깜한 밤이면 집집마다 호롱불이 창호지에 흔들거리고 어
머니들의 다듬이질 방망이 소리가 토닥토닥 들렸다. 하늘에는 수많이 별들
이 총총 빛났는데 들마루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면 북극성이 유난히 빛났고,
어린 우리는 전설 가득한 북두칠성을 유난히 좋아 했다.
개사디, 먹어바꼴, 소름산, 비른날, 도롱골, 토골, 딱반날... 수많은 골짜기
의 이름이다. 골짜기마다 뜻은 알 수 없지만 정겨운 저마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골짜기마다 도랑이 흐르고 맑은 물에는 가재, 중태기, 붕어, 미꾸라지,
개구리가 굴에서, 돌 밑에서, 수초사이에서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가는 곳. 사
람들은 다랑이 논밭에서 나락이며 보리, 밀, 강냉이, 감자, 고구마, 콩을 심고
논두렁에는 감나무와 뽕나무가 무척이나 많았다. 산에는 소나무, 낙엽송, 오
리나무, 아카시아, 참나무가 골짜기마다 군락을 이루고 봄에는 특히 진달래
와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그야말로 찔레꽃이 붉게 피는 정든 내 고향
이다.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나는 할머니부터 나까지 대식구 속에서 가난하
지만 정겨운 그런 가족들 속에서 자라났다. 집집마다 감꽃이 피어 떨어지면
아이들은 감꽃 잎을 볏짚에 줄줄이 꿰어 예쁜 목걸이 와 팔찌로 만들어 제일
좋아하는 여자 친구에게 걸어주곤 했다.
가족 묘에서 바라본 마을 정경 마을규모는 30여 가구 되는데 대부분 문씨 
집성촌이고 연안 이씨가 다섯가구 있었다. 초가집에는 하얀 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는 데 어떤 집은 박의 무게로 금세 쓰러질 것 같았다. 또 처마가 
낮아서 뜨락에 올라서면 어른들은 허리를 굽혀야 하고 마루도 없어 바로 
디딤돌을 이용해서 방으로 드나들었다. 방문의 창호지는 어린애들이 밖을 
보기 위해 손가락에 침을 발라 온통구멍을 뚫어 놓았다. 작은 동네지만 큰뜸, 
건너뜸, 새뜸으로 나누어져 있고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너뜸은 
우리 집 마루에서 보면 살아가는 모습이 훤하게 보였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감천내는 낙동강 상류로 제법 물이 많은 김천 시민의 젖
줄이다. 냇가에는 수양버들과 모래사장이 평화로운 동네 풍경을 더해주고 어
린 우리에게는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다. 내를 건너는 다리는 나무로 만들었
는데, 폭이 좁고 높이가 낮아서 사람들을 아슬아슬하게 만들었다. 비가 많이
오면 다리를 건널 때 어지러워 엉금 엉금 기어서 건너가기도 하고 그래도 무
서우면 물을 보지 않기 위해 먼 산을 보면서 힘껏 달려서 건너 다녔다. 더 큰
물이 흐르면 다리는 속절없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데 물이 줄어들
때까지 도로로 나가지 못하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고립되었다. 이 때문에 큰
비 가 내리는 날은 학생들을 신나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동네 편에 서고 선생
님은 도로에 서서 출석을 부르면 공식적인 휴일이 되는 것이다.
추억의 내 고향은 해맑은 자연과 순수하고 소박한 사람들과 온갖 가축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복작복작 살아가는 정다운 이름 ‘지금대’ 다.

‘지금대’에서의 어린 시절
보리밭이 파릇파릇 해지면 어른들은 호미로 보리밭을 매고 동무들 과 나는
보리줄기를 꺾어서 피리를 불면서 해가 저물도록 놀았다. 보리가 누렇게 익
으면 낫으로 베어 묶어 마당에서 장골들이 삼베옷 입고 도리깨질로 타작을
한다. 알곡은 지게를 새끼줄에 묶어 세우고 체를 거꾸로 엎어놓고 한 사람이
타작한 알곡을 땅으로 떨어뜨리면 아버지가 돗자리를 양쪽에 잡고 바람을 부
쳐 알곡과 보리수염과 검불을 분리한다. 보리수염은 까칠까칠해서 어린 나
는 몸에 묻을까 두려워 멀리서만 구경했는데 보리 탈곡을 할 때쯤이면 배고
프고 고단한 보릿고개가 끝났다.
지금은 과수원이 된 논과 밭보리농사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장마철이 시작 
되는데 우선 논 갈기로 벼농사가 시작된다. 소에다 멍에를 얹고 쟁기를 
걸어서 논을 갈 면 힘든 소는 허연거품을 내면서 거친숨을 토해낸다. 
처음 일을 하는 소나 익숙하게 훈련이되지 않은 소는 어린아이들이 고삐를
쥐고 소를 이끌어 주어야 한다. 때마침장마로 비가 오면 물을 가두고 준비해 
둔 거름을 뿌리고 가래로 논을 잘 고른다. 모내기는 집집마다 돌아가며 
품앗이를 하여 공동으로 하는데 못자리에서 모를 쪄서 못줄을 대고 많은 
인원이 일렬로 서서 모내기를 한다. 한 줄은 좌에서 우로 심고 한 줄은 
우에서 좌로 심으면서 움직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인다. 모심기가 서툴면 
옆 사람 몫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마을 사람 모두엄청난 모내기 숙련공이었다. 
어린 아이들은 못줄을 대기도 하고 모를 공급하는 일도 했는데 하나같이 
무척이나 고단한 작업이다. 어머니와 형수님이새참을 이고 오면 오랜만에 
갈치나 고등어 찜 등이 찬으로 나오고 나무 그늘에 빙 둘러앉아 어른들은 
막걸리를 곁들여서 새참을 먹는데 그 맛을 지금도잊을 수가 없다.
모를 심고 나면 할머니는 논두렁마다 나무 송곳으로 땅을 찔러서 땅에다
구멍을 내고 구멍마다 두 알 세 알씩 콩을 심었다. 소가 많이 다니는 논두렁
에는 깨를 심었는데 소가 콩을 좋아해 걸어가면서 눈 깜짝할 사이 혀로 감아
뜯어먹기 때문에 소가 싫어하는 깨를 심었던 것이다. 심은 콩을 새가 파먹지
못하도록 논두렁마다 허수아비를 세워 놓곤 했는데, 새가 허수아비에 앉아
노는 모습을 보면 어린 나의 눈에는 ‘새의 눈에도 허수아비가 사람으로 보이
지 않는 모양이다’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가뭄이 심한 해는 물이 없어 모내기를 못하고 벼 대신 수수를 심는데 그해
에는 온 가족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냇가에 보를 막아 물을 대서 가물
어도 모내기를 하는 건너 마을과는 달리 다락논에 천 수답뿐인 우리 동네의
설움이 묻어난다. 그런 해에는 쌀에 수수를 많이 섞어서 밥을 하는데 어린 내
입맛에도 감촉이 까칠까칠하고 맛이 없어 철없이 투정을 부리곤 했다.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면 어린아이들은 빈 사이다병을 들고 논두렁
으로 나가서 메뚜기 사냥을 나간다. 나락 줄기에 혼자 있는 놈, 다른 놈에게
업혀 있는 놈이 무수히 붙어 있는데 우리는 빨리 많이 잡을 욕심에 업혀 있는
쌍둥이만 잡아서 빈병 가득히 잡아오면 어머니는 날개를 제거하고 잘 볶아서
찬으로 내어 놓거나 형님과 누나 들 도시락 반찬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그 맛
이 고소하고 담백하여 지금도 입안에 살아있는 것 같다.
늦가을 햇볕이 좋은 날을 골라서 남자들은 낫으로 나락을 베는데 한 사람
이 다섯줄정도 베어 나가면서 벼를 가지런히 베어 놓으면 다음 사람이 베어
나간다. 벼 베기는 벼를 잡는 손이 무척 아프고 벼가 살갗에 스쳐 매우 따가
워서 토시를 해야 하고 또한 허리를 굽히기 때문에 허리가 무척 아프다. 논바
닥에 가지런히 베어 놓은 벼는 며칠간 햇볕에 잘 말리고, 그 후 여자들이 볏
짚으로 묶어 단을 만들어 중간을 접어서 세워 또다시 햇볕에 말린다.
잘 건조된 볏단은 어른들이 지게나 소달구지로 집으로 날라 탈곡기를 발로
밟으면서 타작을 한다. 다 탈곡된 나락은 보리와 같이 검불을 제거하고 멍석
에 잘 말려서 뒤주에 보관한다. 집에 쌀이 떨어지거나 쌀을 팔기 위해서 아버
지는 소달구지에 나락을 실어다 정미소에서 쌀로 도정을 한다. 쌀겨는 소죽
을 쓸 때 넣어서 소를 살찌우는 데 소중하게 사용되고 껍질은 소 마구간에 넣
어서 농사짓는 거름으로 사용하게 된다. 어린 우리 형제들은 추수가 끝난 논
에서 벼 이삭을 줍는데 다른 애들이 먼저 주워가지 않게 이른 아침 서리 내린
논을 누비고 다녔다. 또한 초등학교에서는 이삭을 주워 제출하라는 숙제도
있었고 곡식을 쥐가 먹지 못하도록 쥐약을 놓아서 쥐의 꼬리를 3개씩 잘라 제
출하라는 숙제도 있었으니 당시의 가난을 말해 준다.

▶ 이 글은 문순동 님의 자서전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며,
전문은 홈페이지(www.libraryonroad.kr)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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