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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일곱째날, 나두야 간다, 송정공원에서 나주 율정주막 지나 월출산 누릿재 너머까지
201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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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일곱째날, 나두야 간다, 송정공원에서 나주 율정주막 지나 월출산 누릿재 너머까지

옛길걷기 인문학 [14]

일곱째날, 나두야 간다 - 송정공원에서 나주 율정주막 지나 월출산 누릿재 너머까지

 

나주는 1896년 전국을 13도로 나눠 전라남도 도청을 광주에 두기 전까지 전라남도의 중심 도시였다. 금성관은 나주목 관아의 객사 공간인데, 객사는 관찰사가 관할 구역을 순행할 때 업무를 보던 곳이자, 중앙 사신이 지방에 오면 묵었던 곳이다.   

 

금성관 마당에 서니 정자나무 밑에 병사들처럼 도열해 있는 비석들이 눈에 띄었다. 조선 후기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중심에 섰던 김조순의 비석도 있다. 해설을 맡은 이종범 교수는 조선 후기의 세력 판도를 해박하게 풀어놓는데,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그 집안이 지조를 지켜 일제 강점기 때에 친일한 사람들이 적었다고 했다.  


금성관을 나와 우리는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석조여래입상이 있는 덕룡산 미륵사를 찾아갔다. 석조여래입상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함께 동행한 정성권 학예사는 궁예가 견훤과 나주 전투를 치르고 나서 세운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내용은 근자에 논문으로까지 발표했다는데, 나주 석조여래입상을 안성 미륵불과 더불어 궁예가 영토를 확장하면서 세운 상징물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의 하나로, 석조여래입상의 입술 중앙이 약간 도톰한데 이는 활을 쏘는 궁수의 신체적인 특징을 드러낸 것으로, 활을 잘 쏘았던 궁예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좀 더 학계의 논의가 이뤄져야 할 사항이지만, 미륵불을 자처하고 등장했던 궁예와 석조여래입상을 연계시키는 것이 흥미로웠다.  


석조여래입상은 한 덩어리의 응회암으로 만들었는데 높이가 5.38m나 되어 웅장하고 늠름했다. 여래입상 바로 앞에는 칠불상이 새겨진 고깔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 보물 제461호로 지정된 불상이었다. 고깔 바위 위쪽에 놓인 동자상을 돌려서 잘 돌아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동자상이 사라지고 없다. 4면 바위에 7개의 불상을 조각해 놓은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주에 유배온 걸출한 인물로 정도전과 조광조가 있다. 한 사람은 조선을 개국하고, 한 사람은 조선을 혁신하려고 했다. 정도전은 나주에서 백성들의 현실을 보고 정치적으로 더 성숙해졌지만, 조광조는 나주에서 꿈을 접어야 했다. 조광조가 머물고 간 뒤에 그 영향으로 1538년 가을 별시에 급제한 13명 중에 장원과 차석을 포함하여 호남 인재가 4명이나 되었다. 선비의 세계란 그저 은둔하면서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 나라를 살피고 들어와 글을 읽는 것인데, 그 정신을 잘 실천한 두 인물이 나주와 인연을 맺은 것이다.  


나주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니 흰 돌들이 빛나는 월출산이 보인다. 월출산을 넘으면 강진 땅이다. 우리는 월출산의 동쪽 고개인 누릿재를 넘기 위해서, 천왕사를 오른쪽에 두고 사자저수지 위쪽까지 올라왔다. 누릿재 길은 월출산국립공원 관리인들이 동행하였다. 누릿재 길은 편백나무 숲이 잘 조성되어 있고, 길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게 단장되어 있었다. 강진과 영암은 누릿재를 포함한 구간, 월출산 천왕사 입구~누릿재~월남마을~월남사지 3층석탑~강진다원~안운마을~무위사~성전 달마지 마을까지를 '그리움이 짙은 녹색향기길(16.6km, 5시간 30분)'로 지정해 두었다.   


누릿재는 황치(黃峙)라고도 부르는데, 강진 유배를 가던 다산은 이 고개를 넘으며 황치라는 시를 지었다. “누릿재 고개 위에 우뚝 속은 바위들이/ 나그네 뿌린 눈물에 언제나 젖어있네/ 월남 쪽에서 월출산 보지 말게/ 봉우리마다 도봉산을 너무도 닮았으니.”


다산이 월출산을 도봉산에 견준 것이 흥미롭다. 왕조 시대라 북쪽 산을 보면서 개인의 신원을 위한 연군가를 부르기 십상인데, 다산은 그러지 않았다. 누릿재 길은 영암 쪽에서는 편백나무 숲이 좋았고, 강진 쪽에서는 월출산의 산세를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시 한 수 지을 만한 멋진 풍경이었고, 그래서 다산이 누릿재를 시제로 삼았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해가 월출산 너머로 기울자 월출산의 하얀 산 능선이 더 선명해졌다. 누릿재를 내려와 강진군 병영면으로 향했다. 병영면에는 병영성이 있고, 하멜기념관이 있다.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직원으로 일본으로 가던 중에 제주도에 표류하여 한양, 강진, 여수 등에 13년간 살았고, 그중 강진 병영에서 7년간을 지냈다. 강진군은 이를 기념하여 하멜의 고향 네덜란드 호르큼시와 자매 결연을 맺고, 2007년에 하멜 기념관을 개관했다.


비록 호송된 것이지만 삼남대로를 타고 한양과 강진을 오갔을 때의 하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사람들은 예정된 길을 가기도 하지만, 때로 예정에 없던 길을 가기도 한다. 생명을 걸고 길을 가기도 하고, 꽃구경하며 길을 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길을 걸을 때 가장 행복한 것일까? 혹여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좋을 때, 그 때가 가장 행복한 것은 아닐까?

<글·사진/ 허시명>   

<여행정보>
광주송정역, 나주역, 광주역에 KTX 고속열차가 선다. 열차 문의 1544-7788. 광주에서 장성, 나주, 영암행 버스를 이용하려면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에 있는 광주종합버스터미널(062-360-8114)을 이용한다.
월출산 자락길/ 월출산의 영암읍내 회문리 기찬랜드에서 녹동서원, 성풍사지 5층 석탑을 거쳐 천황사까지 7.3km는 걷기 좋을 길로 단장되어 있다. 영암쪽 누릿재 길 걷기는 천왕사에서부터 시작하고, 강진 쪽에서는 월남마을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하멜기념관/ 하멜이 살았던 당시의 네델란드의 생활상과 당시의 세계 지도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멜이 표류했을 때에 함께 들어온 오크통 모형도 전시해 놓았다. 전남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80. 061-430-3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