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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편지] 낡은 고전에서 읽는 우리의 미래 / 정출헌
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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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편지] 낡은 고전에서 읽는 우리의 미래 / 정출헌

낡은 고전에서 읽는 우리의 미래

 

정출헌

 

최근, 고전에 대한 관심이 유례없이 뜨겁다. 그런 고전에 종종 ‘오래된 미래’라는 아름다운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낡은 것처럼 보이지만, 미래를 기획할 수 있는 지혜와 영감을 준다는 찬사이겠다. 자기 시대를 치열하게 하게 살아간 선인의 삶을 통해 진한 감동뿐만 아니라 오늘의 한계 상황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굳센 다짐을 던져준다고 믿는 까닭이다. 하지만 정작 고전을 읽고 깊이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고전은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읽지는 않는 책, 또는 보석처럼 번뜩이는 뭔가를 간직하고 있으리라 기대하며 읽어보지만 결국 양파처럼 아무 것도 없는 책이더라는 불명예스러운 비난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 고전을 읽고 재미있고 감동 받았다는 사람은 만나본 적이 거의 없다.

 

고전이 재미와 감동, 그리고 가치가 있는가?

 

우리 고전소설의 최고 수준을 구가한다는 판소리조차도 유치하거나 황당하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예컨대, <흥부전>은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욕심 많은 형은 망하고 마음 착한 동생은 부자가 되었다는, 뻔한 줄거리에 진부한 결말! 이런 <흥부전>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며, 고전으로 일컬어질 만한 가치를 과연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흥부전>의 참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흥부전>을 동화가 아닌 원작으로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번 물어보자, 흥부가 부자 된 이유가 뭐냐고. 모두 착했기 때문이라 답한다. 맞다. 다시 물어보자, 흥부가 보여준 착한 일이 뭐냐고. 모두 제비다리를 고쳐준 것이라고 답한다. 맞다. 흥부가 제비다리 고쳐준 일은 착한 일이고, 그로 인해 큰 복을 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 정도의 선행이 그토록 벼락부자로 만들어줄 만큼 대단히 착한 일이었던가? 우리는 여기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알기 위해서라면, 흥부와 놀부가 어떤 사람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형 놀부는 맏아들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유산을 독차지 하고 떵떵거리며 잘 살 수 있었다. 그러고도 재물에 눈이 멀어 동생 흥부를 엄동설한에 쫓아낸다. 갈 곳 없는 흥부는 많은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 되는 일이라면 아무리 궂은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도 헐벗고 굶주렸다. 게으르거나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상천지에 날품팔이를 해서 부자 된 사람이 과연 있었겠는가? 그런 흥부가 마지막 선택한 돈벌이는 매품팔이이다. 자기 신체를 팔아 돈을 벌어보려 했던 매품이란, 요즘으로 치면 피든 신장이든 팔지 않을 수 없었던 인간으로서 극한적 선택이다. 인간이 이쯤 이르면, 누구든 주변을 돌아다볼 여유가 없어지게 된다. 정신과 육체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부는 그렇지 않았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 봄 햇살을 쬐고 있다가 우연히 다리가 부러져 파르르 떨고 있는 제비새끼의 아픔이 보였던 것이다. ‘새 다리’란 본디 매우 가늘다는 말이다. 그러니 새끼의 다리는 오죽 가늘었을까? 그럼에도 아파하는 제비 새끼 다리의 미세한 떨림을 보았다니, 흥부의 눈은 예사롭지 않다. 아니, 정말 예사롭지 않은 것은 제비새끼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겼던 흥부의 마음이다.

 

이것이 <흥부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미물의 아픔에도 가슴 아파할 수 있다면, 같은 이웃사람에게 있어서야 말할 필요가 없다. 맹자는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仁)을 행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는, 피눈물 나게 고생하면서도 착한 심성을 잃지 않고 있던 흥부에 대한 경외심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흥부는 박통에서 온갖 재물이 나오자 이렇게 노래한다. “여봐라, 둘째 놈아. 건넌 마을 건너가서 너의 백부님을 오시래라. 경사를 보아도 형제 볼란다.”,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 박 흥부를 찾아오소. 나도 내일부터 굶주린 사람 도와 줄란다.”라고. 재물에 눈이 멀어 자신을 내쫓은 형도 끌어안고, 자기처럼 굶주린 사람들을 보듬어 안고자 하는 흥부의 마음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흥부의 모습, 과거의 꿈이자 만들어야 할 미래? 

 

고전소설 <흥부전>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바로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박과 같이 둥그런 세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재산 상속을 둘러싸고 형제간에 피터지게 싸우고, 돈과 권력에 따라 인간관계가 좌우되는 냉혹하기 그지없는 사회이다. 그런 상황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놀부처럼 탐욕스런 가진 자의 횡포는 꺾일 줄 모르고 나날이 높아만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때론 좌절하고 때로 분노한다. 하지만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준 탐욕 때문에 결국 파멸하고 마는 놀부와 대비되어 모두가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려던 흥부의 모습은 조선후기 민중이 꿈꾸었던 과거인 동시에 지금의 우리들이 만들어가야 할 미래이기도 하다. 낡은 고전이 여전히 낡지 않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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