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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편지] 열자列子, 분별적 사유에 대한 환상적 조롱 / 홍숙연
201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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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편지] 열자列子, 분별적 사유에 대한 환상적 조롱 / 홍숙연

『열자列子』, 분별적 사유에 대한 환상적 조롱

 

홍숙연(고전비평공간 규문)

 

 

“열자는 아직 참된 학문을 하지 못함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갔다. 3년 동안 나가지 않고 아내를 위해 밥을 짓고 돼지 기르기를 사람 먹이듯이 하여 세상 일에 좋고 싫음이 없어졌다. 허식을 깎아 버리고 본래의 소박함으로 돌아가 무심히 독립해 있으면서 갖가지 일이 일어나도 얽매이지 않았다. 오로지 이와 같이 하여 일생을 마쳤다.” (『장자』, 「응제왕」)

 

『장자』에 기록된 열자는 하나의 학파를 이룰 정도로 학문으로 대성하지는 못했지만 무심한 듯 이름 없이,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고 조용한 삶을 살았던 듯하다. 열자는 제자백가 중에서도 아웃사이더다. 열자라는 인물의 실존 여부와 『열자』라는 책 자체의 진위가 의문시되다 보니 텍스트의 권위도 그다지 높지 않다. 『열자』의 전반적인 내용이 허虛를 중시하는 내용이 많아 노자, 장자와 함께 도가 계열로 분류될 뿐이다.

 

환상적 이야기들과 이름 없는 주인공들

 

하지만 『열자』에는 당대 어느 제자백가의 책에서도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의사도 고치지 못한 병을 낫게 한 떠돌이 도인, 내장 기관까지 사람과 똑같은 자동인형을 만드는 공인, 꿈과 현실의 경계가 불확실한 이야기, 동서남북으로 끝없이 갔을 때 도달하는 미지의 나라 이야기, 우리와 전혀 다른 풍습을 가진 나라에 대한 기록 등 차마 ‘지식’이 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한데 엮어 놓았다.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은 거의가 이름없는 농부, 나무꾼, 유랑민들이다. 명망가들이 등장하더라도 자신의 지식을 뽐내다 망신만 당한다.

 

『열자』라는 책은 평생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 없이 조용히 살다 사라졌을 수도 있는 열자를 앞세워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기적적으로 회생시켰다. 그래서 정교한 형이상학이나 체계적인 논리는 없어도 전국시대戰國時代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경험과 욕망을 엿볼 수 있다. 『열자』는 법과 윤리로 세상을 다스리고자 애쓰는 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명분과 신념을 되묻는다. 그래서 공자나 자산처럼 세상에서 칭송받는 스승이나 재상들이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만다.

 

『열자』가 전하는 ‘잘 사는 법’은 사실 간단하다. 헛된 명예를 다투느라 삶을 피폐하게 만들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너의 즐거움을 만끽하라! 그런데 이런 웰빙(well-being)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분별이다. 열자가 9년간의 배움 끝에 다다른 것은 확실한 판단력이 아니라 무분별이었다. “천하의 이치는 언제나 옳은 게 없고 언제나 그른 게 없다.”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 안과 밖의 구별도 없어져버린 경지. 이것은 분별력의 상실이 아니라 고정된 가치 기준의 거부다. 남쪽의 유자가 회수를 건너 북쪽에 오면 유자가 아니라 ‘탱자’가 된다. 그러나 유자가 옳고 탱자가 나쁜 게 아니다. 천지의 기운에 따라 모든 것은 변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삶은 옳고 어떤 삶은 그른 게 아니라 삶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에서 이름나는 삶을 원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있어도 선뜻 “나는 원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세상의 원칙을 내면화해서 그것을 자신의 분별로 삼는다. 그렇게 해야 타인의 인정을 받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져야 할 하나의 분별이 있다면 자신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열자는 묻는다. 한때의 비난을 피하고 영예로운 일을 중시하느라 자기 정신과 육체를 괴롭히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에게 좋은 것인가?

 

열자가 말하는 ‘지복(至福)을 누리는 법’

 

세상의 모든 것은 생겨나고, 변하고, 사라진다. 나 자신도 이 덧없는 흐름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 궁극의 원리를 모르는 자들이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을 영원히 가지려고 발버둥치고 있으니, 이 짧은 생을 살면서 하루라도 편할 날이 있겠는가? 불행 역시 변하고 사라진다. 우리는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한 소유를 향해 삶을 갉아먹고 급격한 감정의 기복을 겪는 대신, 사물과 자신의 모든 변화를 겪고 지켜보면서도 동요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라. 이것이 열자가 말하는 ‘지복至福을 누리는 법’이다.

 

인의예지仁義禮知가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던 유학자들에게 『열자』의 이야기들은 ‘이단적’ 쾌락주의자들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삶을 즐기는 것이 올바른 일이며, 몸을 편안히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는 열자의 주장은 그 시대가 얼마나 평안치 못한 시대였는지를 반증한다. 죽음을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다독여야 할 정도로 전쟁과 학살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지만 열자는 삶을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태어난 이상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행복을 구성해야 한다. 행복에는 어떤 ‘외적 조건’도 필요치 않다.

 

열자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부자가 되면, 지위를 얻으면, 존경을 받으면… 그러나 행복하고 싶다면 이런 거짓 약속에 속지 말라! 행복은 아무 조건 없이도,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어떻게? 분별을 버리고, 척도를 내려놓고, ‘미래’라는 환상에 현재를 걸지 않음으로써. 지금 당장 자신이 있는 곳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발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