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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편지]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 / 정철현
201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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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편지]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 / 정철현

스티븐 J. 굴드의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

 

정철현(고전평론가)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제목만 보면 어린이 동화책같다. 브론토사우루스는 어린이책에 단골로 등장하는 목이 긴 초식공룡이 아니던가. 일명 ‘둘리 엄마!’ 그러나 우리 기대와는 달리 이 책은 과학책이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사소하고 하찮은 모든 생명체를 응원하며 쓴 자연학 에세이들이 여기에 모여 있다.

 

사소한 것들을 사랑한 편협한 과학자의 책

 

그런 만큼 이 책에는 온갖 사소한 개체들의 사소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온갖 생물들의 개인사에서부터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그렇지만 바로 이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사소한 개체들의 이야기를 근사하게 풀어내는 게 과학자 굴드의 독특성이니까.

 

이런 질문이 나올만하다. ‘과학자로서 일반적이지 않은 개체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편협한 태도 아닌가? 그래서 어떻게 일반화된 이론을 도출해내는가?’ 굴드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과학이란 원래 편협한 것이며, 편협한 과학이라야 더 근사한 이론을 만들 수 있다’고.

 

굴드에게 과학은 객관적인 실체에 다가가기 위한 정보 수집, 이를 종합(귀납)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런 과학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과학이란 인간의 창의력과 판단을 이용해 구성한 앎이다. 창의력과 판단! 이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며, 또 사회, 문화, 역사적인 영향 하에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이론은 사실 과학자들이 창조력을 발휘해 구성한 일종의 ‘편견’이다. 물론 여기엔 과학의 방법과 절차를 잘 지켜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어있다.

 

굴드는 편협하고 개인적인 연구를 통해 훌륭한 생명관을 창조한다. 이 책에 실린 두 에세이 <어쩌지, 잘 못 해낼 것 같아>, <오리너구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각각 레오바트라쿠스 개구리와 오리너구리라는 사소한 개체들의 사소한 삶에 관한 이야기다. 레오바트라쿠스 개구리는 자기가 낳은 알을 먹어서 강력한 위산이 분비되는 위(胃)에다 알을 품는다. 그리곤 새끼가 다 자라면 토해낸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알을 둘러싼 점막이 위의 소화효소 분비를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의 점막과 위(胃)의 ‘기상천외한 만남’이 개구리의 위를 따스한 육아낭으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생존의 달인들,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대로

 

오리너구리는 또 어떠한가? 그들은 우연히 물속에 살게 되었고, 그곳에서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 속에서 독특한 입과 꼬리, 갈퀴가 있는 발과 같이 공학적으로 뛰어난 신체구조를 독자적으로 창조한다. 그 중 압권은 새의 부리와 비슷하게 생긴 주둥이다. 비교적 짧은 세대에 걸쳐 오리너구리는 그들의 평범한 입을 장애물을 피하고 먹이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감각기관으로 변모시켰다. 신체의 작은 부분만을 변화시켜 생존율을 높인 것이다.

 

우리는 보통 다른 동물들이 인간에 비해 하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굴드는 이들의 독특한 발명품들에 놀라고 감탄한다. 레오바트라쿠스 개구리와 오리너구리가 보여주듯 각각의 계통들은 저마다의 삶들 속에서 자신들의 신체를 기발하고 기묘하게 전환한다.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 나름의 길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개개의 생명이 이렇게 멋지게 살고 있는데, 생명체들에게 어찌 고등과 하등의 딱지를 붙인다는 말인가. 그들은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대로 근사하게 살아내는 생존의 달인들로서 모두가 승자다. 모든 생명체는 그 자체로 옳은 것이다. 그래서 굴드는 “경이로운 생명(Wonderful Life)이여!”라고 외친다. 그 자체로 모든 생명들이 경이롭다는 새로운 생명관의 구호로서.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매우 근사한 ‘사소한 것들을 사랑한 편협한 과학자의 책’이다. 굴드는 사소한 개체들의 삶을 순수하게 긍정했다. 아주 멋지게. 굴드는 사소한 것을 사랑했고, 그들의 대변자가 되었다. 사소한 것들의 개개의 가치를 최고로 끌어올렸고, 그 결과 새로운 생명관을 구성해냈다. 우리는 이를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에서 볼 수 있다. 굴드와 함께 사소한 생명체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자. 온갖 사소하고 하찮은 생물들, 역사적 인물들의 생활사들을 무궁무진하게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