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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편지] 증여와 순환의 삶에 대한 보고서 / 이희경
201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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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편지] 증여와 순환의 삶에 대한 보고서 / 이희경

증여와 순환의 삶에 대한 보고서

 

이희경 (문탁네트워크)

 

 

마르셀 모스(1872~1950)가 1923~1924 <사회학연보>에 수록했던 『증여론』은 인류학 분야의 대표적인 고전이다. 나아가 인류학을 넘어 서구사상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특히 바타이유, 뒤메질, 레비-스트로스, 부르디외, 보드리야르, 데리다, 푸코 등 저명한 프랑스 사상사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끼친 책이기도 하다.

 

호혜적 소유관계를 통해 살림살이를

 

그 이유는 무엇보다 『증여론』이 특정 사회에 대한 단순한 경험적 관찰을 뛰어 넘어 그 사회를 움직이는 어떤 총체적 관계-체계-를 밝힌 책으로, 사회학의 초석을 놓은 뒤르켐의 조카답게 매우 많은 이론적 쟁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모스의 작업이 단순한 이론적 작업이 아니라 당대 프랑스 자본주의 나아가 러시아혁명으로 만들어진 레닌식 사회주의를 동시에 넘으려는 실천적 기획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 이해에 따라 합리적으로 움직이며 그런 개인들의 이해관계를 ‘내버려 둘 때 laissez faire’ 사회가 잘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자본주의적 공리는 정말 맞는 것일가? 혹은 사적소유가 모든 불평등의 원인이기 때문에 모든 소유를 공적소유로 바꾸고 그것을 당이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주의적 신념은 또한 정당한가? 이 두 가지를 모두 넘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모스는 이 질문을 붙들고 사적 소유도 아니고 공적 소유도 아닌 호혜적 소유관계를 통해 살림살이를 영위해간 역사상 선행형태들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것을 ‘증여의 경제’라고 불렀다.

 

모스가 분석한 태평양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의 원시부족들이나 북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에서는 필요한 모든 것들을 교환이나 재분배가 아니라 ‘주고- 받고- 되갚는’ 증여의 순환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조달한다. 그리고 ‘주고 - 받고 - 되갚는’ 것은 자발적일 뿐 아니라 의무적인 것이다.

 

먼저 주는 의무! 북서부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에는 ‘포틀래치’라는 의례가 있다. ‘포틀래치’란 ‘식사를 제공 한다’, ‘소비 한다’는 뜻인데, 출생, 성년식, 결혼식, 장례식 같은 통과의례나 추장 취임식, 집들이 같은 세레모니를 통해 손님들에게 온갖 음식과 선물을 잔뜩 안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건 기분에 따라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은 게 아니다. ‘포틀래치’를 통해 누군가에게 자기의 재물을 베풀어야 하는 것은 그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의무이다.

 

주고-받고-되갚는 관계, 상호의존과 평화가

 

다음 받는 의무! 다야크족은 식사하는 것을 목격하거나 식사 준비 하는 것을 본 경우에는 반드시 거기에 참석해야 하는 의무에 입각한 모든 법과 도덕의 체계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면 또 밥을 먹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되갚는 의무! 특히 마오리족은 물건에도 영혼(‘하우’)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물건에 붙어있는 이 영적인 힘은 그 탄생지, 숲과 씨족의 성소 그리고 그 소유자에게 돌아오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답례를 통해 그 영혼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물건을 받은 사람이 오히려 위험해진다고 생각했다.

 

이들 사회의 사람들은 얼핏 보면 매우 원시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스가 보기에 이들은 결코 서구적 기준의 ‘원시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회는 레비스트로스가 말했듯이 지금 우리와 다른 사유, 다른 윤리와 문화를 갖고 있는 사회이다. 그들은 주는 것을 경쟁하고, 가장 많이 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가장 가진 것이 없고 누추한 곳에서 사는 자가 추장이 되는 사회적 윤리를 발전시킨 사회였다.

 

또한 물건과 물건의 교환처럼 보이는 순간조차 교환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물건에 깃든 그 사람의 영혼, 그 부족의 삶이기 때문에 재화가 더 많이 순환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의 일부가 되도록 만든 사회였다. 이런 사회에서 경쟁이 아니라 상호의존이,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모스는 『증여론』을 통해 우리에게 그런 사회의 비전을 다시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