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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편지]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 누구나 의사가 되는 책 / 박장금
20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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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편지]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 누구나 의사가 되는 책 / 박장금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 누구나 의사가 되는 책’

 

박장금(인문의역학연구소 감이당)

 

 

『동의수세보원』은 조선시대 이제마(李濟馬, 1837~1900)가 지은 의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동의수세보원』은 의사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의학서가 아니다. 자신의 병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게 해주는, ‘누구나 의사가 되게 하는 책’이다.

 

오늘날 의학 분야의 발전은 눈이 부실 정도지만 환자와 의사의 경계는 더욱 엄격해져서 질병을 탐구하고 치료할 권리는 전문가에게만 주어진다. ‘병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구호가 단적으로 보여주듯, 환자의 임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환자는 오직 아플 뿐, 자신의 병을 치료할 권리는 고사하고 알 권리조차 박탈당한 상태이다. 이런 시대에 누구나 의사가 될 수 있다니 눈이 번쩍, 귀가 쫑긋 해질만한 소식이 아닌가. 보통 사람들에겐 문턱이 너무나 높은 현대의학과 비교하면 가히 의학 혁명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누구나 언젠가는 아프기에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는 질병에 대해 새로운 사유를 하게 된다. 인간은 모두 불균형 상태로 태어나므로 존재론적으로 어딘가는 아프고 언젠가는 아픈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최선의 치료는 눈앞의 질병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않고, 근본적으로 불균형한 몸을 균형 상태로 만들어 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몸을 이해한다면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주체는 의사가 아니라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기 몸을 가장 잘 아는 자가 누구이겠는가? 자기 몸의 주인은 자신! 그러므로 자기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마 자신이 아프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와 같은 질병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마는‘열격반위증(熱膈反胃症)’이라는 수시로 토하는 지병을 앓았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의사도 아닌 무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자신의 병을 연구하여 치료법을 찾아냈다는 사실이다. 이제마는 자신의 병이 ‘타고난 체질’에서 온 증상으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할 때 더욱 심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이제마는 감정을 다스리고 섭생에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병을 치료하는 데 성공한다.

 

이제마는 이런 임상 경험에 근거하여 ‘사상의학(四象醫學)’의 체계를 수립하고, 이 의학 체계를 널리 알리기 위해 『동의수세보원』을 편찬했던 것이다. ‘사상의학’은 오장육부의 크기, 길이, 모양에 따라 사람의 체질을 크게 태양(太陽), 태음(太陰), 소양(少陽), 소음(少陰) 네 유형으로 구분하고, 이 체질에 따라 생겨나는 질병과 그 치료법을 체계화한 이론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 네 가지 체질 중 한 가지를 타고 나는데, 그 어떤 체질도 완전한 것은 없다. 예컨대 비장이 크고 신장이 작은 소양인은 일을 잘 벌이고 행동과 대처가 빠르지만 일의 마무리를 제대로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간이 크고 폐가 작은 태음인은 일을 벌이지는 않지만 맡은 일을 책임 있게 완수해 낸다. 이처럼 모든 체질은 각각의 장단점을 타고난다. 한쪽이 뛰어나면 다른 방면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인간은 누구나 치우친 존재로 우리가 부여받은 어떤 능력도 치우침의 결과일 뿐 어떤 존재도 더 우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마는 질병의 원인을 외부 환경이나 몸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마음도 치우치면 질병이 된다. 체질에 따라 마음과 감정의 작용도 다르게 드러난다. 이제마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각각 태양, 소양, 태음, 소음에 연결시키고, 각각의 체질이 건강하게 발현되면 인의예지를 구현하게 되지만, 사심이 개입되면 탐비라박(貪鄙懶薄:탐내고 무례하고 게으르고 천박함)으로 변질되어 욕심과 안일과 방종과 사사로움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질병은 몸과 마음 모두를 다스려야 치료가 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면서 다스려야

 

우리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면서 다스려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타고난 체질을 고집하면 마음과 몸의 불균형은 심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게 없는 것을 다른 체질로부터 배우면 된다. 예컨대 태양인은 기질적으로 포용력이 있고 은혜를 잘 베풀지만, 사심이 생기면 계산적으로 은혜를 베푸는 척하는 이해 타산적 인간이 된다. 태양인이 이런 불균형 상태를 치유하려면 태음인의 의로움을 배워서 다른 신체가 돼야 한다.

 

자신에게 스승이 되는 체질은 나와 다른 모든 체질이다. 만약 자신의 체질만 고집하게 되면 몸의 생리는 불통이 되고 결국 몸은 병들게 된다. 소통하지 않는 삶은 그 자체로 병이다. 인간은 다른 체질과 소통하지 않는 한 아프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여 치료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배움인 것이다. 그러니 내 몸의 의사는 바로 나다.

 

이제마는 말한다. “널리 의학을 밝혀 집집마다 의학을 알고 사람마다 병을 알게 된 연후라야 가히 장수하게 될”거라고. 그래서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매우 쉬울 뿐만 아니라 의사가 되는 법은 간단하다. 몸이 아프거든, 나의 체질을 알고 내가 관계 맺는 방식을 보라.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배우라. 그것이 자기 몸에 대해 의사가 될 수 있는 시작인 것이다.『동의수세보원』에는 그 지혜가 오롯이 담겨져 있다. 궁금하면 내 체질을 아는 것에서부터 차근차근 터득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