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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편지] 살아있는 인간의 역사서 / 나은영
201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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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편지] 살아있는 인간의 역사서 / 나은영

살아있는 인간의 역사서, <사기열전>

 

나은영 (문탁네트워크) 

 

 

 『사기』는 중국 한나라 무제 때 태사령을 지낸 사마천이 쓴 역사서이다. 총 130편으로 본기, 세가, 서, 표, 열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열전 70편은 춘추전국시대부터 한무제 시대까지 쟁쟁한 왕족에서부터 미천한 백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박제된 영웅이 아닌 생생한 인간군상을 

 

 흔히 역사에 기록되는 인물은 후손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삶일 경우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탐욕을 부리고 배신하기도 하며, 원수를 갚기 위해 생을 걸었던 삶들에 더 집중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아내를 죽인 오기, 친구를 배신하는 이사나 방연 같은 인물들이 그랬다. 초나라 출신 오자서는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평왕의 무덤까지 파헤쳐 시신에 매질을 했다. 탐욕에 눈이 멀어 왕에게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바치는 춘신군. 이들의 삶도 열전에 기록하여, 박제된 영웅이 아니라 인간의 생생한 삶이 오롯이 담긴 산 인간의 역사책이 되었다. 

 

 그런가하면 왕과 신하, 주인과 식객, 친구와의 사귐 등을 통해 인간사에서 맺은 인연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자객들과 제 목의 피를 뿌려서라도 왕의 위엄을 지키겠다고 적국의 왕을 위협했던 인상여, 자신의 진가를 알아준 포숙아와 우정을 나누었던 관중 등. 삼천 명의 식객을 거느리면서 귀천을 따지지 않았던 맹상군은 개 짖는 소리와 닭 울음 흉내를 잘 내는 식객의 도움으로 목숨을 위협하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열전에는 사마천 이후 누구도 역사책에 서술하지 않았던 인물들도 수록되어 있다. 의협심으로 세간에서 인정을 받았던 유협을 기록한 ‘유협열전’, 왕의 총애를 받을 때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동전까지 주조되었으나 결국 거지가 되어 죽음을 맞이한 인물을 다룬 ‘영행열전’, 재치 있는 말솜씨로 위기를 모면한 인물들의 이야기인 ‘골계열전’ 등. 당대에 유명했던 점쟁이나 거북점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록한 ‘일자열전’·‘귀책열전’은 사료적 가치도 높다고 한다. 

 

 사마천이 이런 역사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을 따르는 작업이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사유할 수밖에 없었던 실존적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태사령 출신 집안의 전통을 이어 당대 왕의 업적과 시대의 면모를 기록하여 대대손손 널리 알려야 한다는 당위에서 시작한 집필이었다. 그러나 궁형을 당한 이후 자신의 몸에 새겨진 기억으로 인해 당위를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 필요했다. 

 

묻고 또 묻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그는 자신이 겪은 비극의 경험을 통해 역사 속의 인물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열전의 시작인 ‘백이열전’에서 백이와 숙제가 원망이 없었을 것이라 평한 공자의 의견에 과연 그럴까? 라고 질문하며 자신의 논지를 펼쳐나간다. 이들은 무력으로 은나라를 정벌하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에 반대하여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 죽었다. 인의를 지키라며 무왕의 말고삐를 잡았던 그들이 고난에 처하는 것이 하늘의 도인가? 그렇다면 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역사의 인물인 백이숙제를 불러내어 묻지만 결국 자신에게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고 궁형으로 처벌한 한무제에 대한 비판일 수밖에 없다.

 

 이후 사마천은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절실한 물음으로 열전의 인물들을 비추어보니 그들의 삶에 드리운 각양각색의 동력들이 도드라졌다. 결국 역사란 출중한 능력이나 덕망 혹은 어리석은 왕 한 사람의 폭정이 아니라, 수많은 인간들이 얽혀있는 갈등과 욕망이야말로 진정한 동력임을 통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고정된 가치에 얽매이지 않게 된 사마천의 사유와 문학적 소양이 화학 반응을 일으키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인간의 산 역사서 <사기열전>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2000년이 지난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