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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편지] 조선후기의 인문지리서, 이중환의 『택리지』 / 신병주
201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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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편지] 조선후기의 인문지리서, 이중환의 『택리지』 / 신병주

조선후기의 인문지리서, 이중환의 『택리지』

 신병주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길 위의 인문학’ 취지와 관련하여 가장 적합한 책을 추천하라면 필자는 단연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중환(李重煥:1690~1752)이 쓴 <택리지(擇里志)>를 꼽고 싶다. <택리지>는 이중환이 여러 지역을 답사한 배경을 바탕으로 정리한 인문지리서이다. 전국 각 지역에 대한 지리적 배경 및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까지 담아내고 있어서, 그야말로 길 위에서 만나는 인문학의 고전이 된다.


정치적으로 남인이었던 이중환은 당쟁의 여파로 전국을 유랑했다. ‘보통 사대부가 사는 곳은 인심이 고약하지 않은 곳이 없다. 당파를 만들어 죄가 없는 자를 가두고, 권세를 부려 영세민을 침노하기도 한다. ... 다른 당파와는 같은 고장에 함께 살지 못하며, 동리와 골목에서 서로 나무라고 헐뜯어서 측량할 수가 없다.’고 한 부분은 당쟁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인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중환은 정치적 아픔을 국토에 대한 애정과 인문학적인 소양으로 극복하였고, 이것은 불후의 저술 <택리지>의 저술로 이어졌다.

 

<택리지>는 크게 사민총론(四民總論), 팔도총론(八道總論), 복거총론(卜居總論), 총론(總論)의 네 분야로 나누어져 있다. 사대부의 신분이 농공상민(農工商民)과 갈라지게 된 원인과 내력을 설명한 '사민총론', 우리 국토의 역사와 지리를 서술한 다음, 지역의 산맥과 물의 흐름을 언급한 '팔도총론',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지리(地理),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의 네 가지 조건을 설명한 '복거총론(卜居總論)', 그리고 네 가지의 내용을 모두 정리한 '총론(總論)'이 그것이다. 

 

네 개 분야 중 저자의 인문학적인 소양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은 '팔도총론'이다. 이 부분에서는 각 지역을 설명하면서, 필요한 경우 역사적 인물과 그 지역의 문화를 널리 소개하고 있다. 태조와 태종의 갈등을 상징하는 함흥차사(咸興差使)에 관한 이야기는 함경도 부분에 그 과정이 상세히 나온다. 

 

병자호란에 대한 기록은 '팔도총론'의 경기, 강화부에 관한 기록에서 언급하고 있다. 정묘년(1627년)에 청나라 군사가 황해도 평산에 와서 형제국이 되기로 화약을 맺고 물러간 사실과, 병자년(1636년)에 청국에서 용골대를 보내 남한산성의 형편을 탐지하게 한 것 등을 기록하고 있다. 강화도 부분에서 병자호란의 뒷이야기 까지 기록한 것에서 역사에 대한 저자의 관심이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라도 진도에 관한 기록에서는 이순신이 진도의 해협에 쇠사슬을 설치하여 왜적을 물리친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까지 들려오는 전언을 기록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는 차이가 있다.

 

경상도 부분에서는 ‘좌도(左道)는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가난하여 비록 군색하게 살아도 문학하는 선비가 많다. 우도(右道)는 땅이 기름지고 백성이 부유하나 호사하기를 좋아하고 게을러서 문학을 힘쓰지 않는 까닭으로 훌륭한 사람이 적다.’라고 하여 경상좌도에 대해 보다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인의 뿌리가 되는 영남지역 출신 인물에 대해서는 특히 자세한 설명을 가하였는데, 예안의 이황, 안동의 유성룡, 상주의 정경세와 이준, 성주의 김우옹과 정구, 삼가의 조식, 안음의 정온 등의 행적을 언급하였다. 

 

충청도에 대해서는 ‘남쪽의 반은 차령 남쪽에 위치하여 전라도와 가깝고 반은 차령 북편에 있어 경기도와 이웃이다. 물산은 영남?호남에 미치지 못하나 산천이 평평하고 예쁘며 서울 남쪽에 가까운 위치여서 사대부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여러 대로 서울에 사는 집으로서 이곳에 전답과 주택을 마련하여서 생활의 근본이 되는 곳으로 만들지 않는 집이 없다. 또 서울과 가까워서 풍속에 심한 차이가 없으므로 터를 고르면 가장 살 만하다.’고 하여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복거총론'에서는 살 만한 곳을 택하는 데 있어서 주요 조건으로 지리, 생리, 인심, 산수를 들었다. 첫째 조건으로 꼽은 지리는 교통이 발달한 곳과 같은 현대적 의미의 지리가 아니라 풍수학적인 지리를 의미한다. 이중환은 ‘지리를 논하려면 ’먼저 수구(水口)를 보고, 다음에는 들판과 산의 형세를, 이어 흙빛과 물의 흐르는 방향과 형세를 보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어 ‘재물이란 하늘에서 내리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닌 까닭으로 기름진 땅이 먼저이고, 배와 수레를 이용하여 물자를 교류시킬 수 있는 곳이 다음이다.’라고 하여 생리의 조건을 제시하였는데, 기름진 땅으로는 전라도의 남원, 구례와 경상도 성주, 진주를 꼽았다. 이어서 ‘풍속이 좋지 못하면 자손에게도 해가 미친다’고 하여 풍속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팔도의 인심을 서로 비교하여 기록하였다. 복거의 마지막 조건으로는 산수를 들면서 ‘집 근처에 유람할만한 산수가 없으면 정서를 함양할 수 없다’고 하였다.

 

<택리지>가 완성되자 여러 학자들이 서문과 발문을 썼으며,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베껴서 읽었다. 필사본이 수백 종이나 되는 것은 <택리지>의 명성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조선시대에 ‘길 위의 인문학’ 행사가 있었으면 필수 도서가 되었을 책 <택리지>를 읽으면서 250년이 지난 우리 국토의 여러 현장들을 만나볼 곳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