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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나침반, 길 위의 인문학 / 한윤옥
201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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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나침반, 길 위의 인문학 / 한윤옥

삶의 나침반, 길 위의 인문학

 

- 2014년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을 되돌아보며

  

 

한 윤 옥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운영 기획위원장?경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지난 주, 11월 21일에 한 일간지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하였다. <“마음으로 장사하는 법은 ... ” 창고 개조한 도서관서 논어 읊는 시장 상인들>이란 제목 아래 수유시장에 부는 고전 읽기 바람과 인문학 강좌를 소개하고 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은 시장상인이었는데 ‘이익보다 의(義)를 우선하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해 거상으로 성공한 뒤 위나라 재상에 올랐다고 한다. 서울 수유시장의 상인들도 21세기의 자공을 꿈꾸며 수유마을 작은도서관에서 인문학 강의를 듣고 책을 읽는다는 내용이다. 수유시장 작은도서관은 2010년 봄에 만들어졌고, 이 도서관이 만들어지자 독서동아리가 생겨났고, 곧 이어 선생님을 모셔다 강의를 듣자는 아이디어가 나와 지난해 가을부터 인문학강좌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참여 동기와 목적은 “돈에 얽매여 살다보니 정신적 빈곤에 시달려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다”, “돈만 아는 무식한 상인이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어서”,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이 되라의 마음으로 장사를 하고 싶어서... ”, “두부 한 모에 손님의 행복을 담아 팔려고”, “감정쓰는 방법을 배우고 고객들에게 늘 웃는 모습을 보여주려고”등과 같다.

 

이들의 목적과 동기에는 돈, 마음, 행복, 감정, 웃음이 공통적으로 담겨있고 그것은 정신적 빈곤과 인간의 본질로 귀결되고 있다. 철학과 문학, 역사를 화두로 논하지 않아도 삶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이 태어나고 존재할 수 있게 된 이유이다.

 

 

2. 왜 인문학이고, 왜 책읽기인가?

 

인문학이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인문학의 분야로는 철학과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신학 등을 들 수 있지만 흔히 문학, 역사, 철학인 문사철로 요약되기도 한다.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대표인 도정일 교수는 인문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문학은 문화를 일구어 오는 과정에서 인간이 유별나게 잘 성취한 것, 예를 들면 예술이나 과학이나, 학문 같은 분야에서 성취한 것을 좀 더 적극적이고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거지요. 겉보다는 안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인문학적인 태도입니다. 그 ‘안’을 채우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삶의 의미, 가치, 아름다움, 목적 같은 무형의 자산입니다”라고 하였다.

 

인문학을 보게 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으며, 연극이나 뮤지컬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업들이 하고 있는 마케팅 활동에서부터 전략적 제휴의 모델까지도 인문학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은 무수히 많다. 

 

삼성그룹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채용키로 하는 등 인문학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인문학이 기업 위기 탈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의 경영보고서가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11년‘인문학이 경영을 바꿀 수 있다’라는 주제의 보고서에서 “기업이 기술과 가격 차별화만으로 경쟁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으며, 인문학이 새로운 돌파구로 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애플의 아이폰, 구글의 페이스북이 가진 차별적 경쟁력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본성 충족이라며 이는 인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와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가 아이폰과 페이스북에 열광하는 이유는 첨단기술과 새로운 기능 때문이 아니라 ‘단순하고 편하고 재미있는 것을 원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만족시켰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인문학은 책장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현장에 존재하는 정신인 것이다. 그러면 이런 삶의 철학을 어떻게 습득할까? 책읽기라고 할 수 있다. 책읽기를 통한 인문정신의 습득이다.

 

오늘날 우리 인류가 문화와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역사와 문화를 통하여 축적된 사유의 전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어진 인류 문화의 전수 매개체로서의 기록매체가 있었기 때문에 인류문화가 후세에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더욱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기록물의 전달속도와 범위가 무한하게 커졌는데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볼 점이 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기록매체만 있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지 않았다면 과연 인류문명과 문화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결국 우리 인류 문명과 문화를 전승하는 기록물이 기록물로 존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문화문명의 전달매체가 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읽는 행위에 의한 것이다. 그 기록물이 문자이건 이미지건, 그 내용이 어떤 매체에 담겨있건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우리 인류를 과거와의 연계성 속에서 정체성을 찾고, 미래를 지향할 수 있게 하였다는 바로 그 관점에서 독서를 하지 않는 인류의 미래는 오싹한 전율과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독서를 생각해야 하는 거시적 이유이다.

 

그런데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 보면 우리나라 성인의 과반수(56%)가 ‘책 읽기가 생활화되어 있지 않다’고 응답하면서, 그 이유로 ‘일이 바빠서’, ‘독서가 싫고 습관화되어 있지 않아서’, ‘다른 여가활동을 즐기기에 바빠서’ 등을 들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바쁘고, 습관이 안 되어 있으며, 다른 여가활동에 시간을 투자하느라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우리 개개인을 심미적, 철학적, 도덕적, 전문적, 성찰적 인간으로 만드는데 책을 따를만한 미디어가 없고, 책읽기를 통한 사유만한 것이 없다는데 이견을 제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중요성은 알겠는데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책읽기’라는 것인데 이렇게 그냥 내버려두고 앞으로 나가도 괜찮은 것일까?

 

 

 

이하의 내용은 첨부파일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2014년 11월 27일(목) '2014년 도서관「길 위의 인문학」운영 
사업담당자 마무리 워크숍' 중 한윤옥 선생님의 기조발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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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_삶의 나침반, 길 위의 인문학_한윤옥.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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