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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구술:아들 딸이 받아 쓴 우리의 이야기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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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17-03-02 10:28 조회887회 201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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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구술:아들 딸이 받아 쓴 우리의 이야기 - 7

Ⅲ. 구술 : 아들 딸이 쓴 우리의 이야기



20년 된
글러브에 담긴 이야기

최윤녕 | 목포공공도서관_전남

 

 

기쁜 일, 슬픈 일
내가 살면서 가장 기쁜 일은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였을 때, 사랑하는
자식들이 태어났을 때, 그리고 현재의 종교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중
내 큰아들 윤녕이가 태어날 때 기억은 참 새롭다. 나는 그 당시 부산에서
목포로 발령이 나서 임신한 아내를 두고 목포로 내려왔다. 아들이 태어나
던 날 나는 직원들과 회식을 하고 있었다. 애가 태어날지 몰랐으므로 나는
과음을 하여 맨 정신이 아니었다. 그때 병원으로부터 산모가 진통을 시작
했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과음을 해서 운전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새벽
까지 기다려 첫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그 밤에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얼마나 초조하고 걱정이 되던지. 의사는 전화로 산모가 수술을 하려면 보
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면서 나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다. 내가 부산에
도착했을 때 의사가 전화로 자연분만에 성공을 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전
해 왔다. 나는 결국 아들이 태어나는 그 순간을 보지 못했다. 지금도 그 일
을 생각하면 아들과 아내에게 미안하고 혼자서 고통을 잘 견뎌준 아내에
게 감사하다.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이 있기 마련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
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연세가 드시면 돌아가시는 게 자연의 이치라고 여
기면서도 부모님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 부모님을 잃는 슬픔보다 더 큰 슬
픔과 충격은 막내 동생을 잃었을 때이다. 그중 가슴 아픈 기억은 막내 동생
이다.
나의 막내 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기념으로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놀고 있었다.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놀다가 술이
떨어지자 친구와 함께 슈퍼로 갔다. 그리고 돌아오다가 발을 잘못 헛디뎌
서 그만 논두렁으로 떨어졌다. 동생 친구는 운 좋게도 논에 있는 물에 떨어
져서 다치지 않았는데, 동생은 불행하게도 돌에 머리를 부딪쳐서 그만 세
상을 떠났다. 그 어린 나이에, 그것도 성인이 되어 꿈도 펼치기도 전에 세
상을 떠난 동생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막내 동생이 떠오르면 지금도
쓰라리고 아프다.


20년 야구사랑
현재 나의 취미활동이자 꽤 잘하는 것은 야구이다. 야구를 처음 시작한
것은 내가 부산에서 근무할 때다. 한 20년 정도 된 것 같다. 내게는 낡은 검
은색 글러브가 있다. 내가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산 글러브이다. 20년
나의 야구 인생이 그 글러브에 담겨있다. 내게는 참 소중한 것이다. 지금은
내게 새 글러브가 생겨서 그 낡은 글러브를 아들에게 주었다. 글러브를 주
면서 나는 아들한테 글러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못했다. 말로하기가 쑥
스러운 것 같다. 야구 경기가 사람의 인생과 닮았다는 그런 철학과 애정을
아들한테 자세히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아들이 그것을 소중히 다
루어주었으면 싶었다.
내 아들 윤녕이는 그 글러브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있을까?
나는 야구를 매우 좋아한다. 여느 40대 아저씨들과 같이 야구 방송을 보는
것을 즐긴다. 또 직접 하는 야구를 좋아한다. 나의 야구 사랑이 어느 정도이
냐면 큰아들이 어렸을 때 우리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데도 나는 주말마다 야
구하러 나갔다. 내가 주말마다 야구를 하러 나가는 걸 아내는 싫어했다. 아
내는 화를 내며 야구를 하러 가려면 아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하였다. 나는 아
이를 데리고 나갔다. 내가 경기를 하는 동안은 아이를 돌봐줄 수가 없었다.
나의 포지션은 투수이다. 내가 공을 던지려고 하면 윤녕이가 울면서 그라운
드로 달려왔다. 고마운(?) 나의 아들 덕분에 경기는 1시간씩 중단되곤 했다.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나의 아들은 울보였다. 툭하면 우는 철부지였다. 그런 나의 큰아들이 어
느새 부쩍 커서 고등학생이 된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고마울 뿐이다. 또 나
의 딸, 막내아들도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마움을 느낀다. 나의 아내는 부산
을 떠나 목포로 와준 것 자체가 고맙다. 타지에 아는 사람도 없을 텐데 잘
생활해준 것도 고맙고 내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꾹 참고 견디어 주어서 고
마움을 느낀다. 언젠가 나의 이런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이 되어 사람들에
게 읽힐 것이다. 이걸 읽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적극적으로 살아라. 주위를 조금 더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고 살아갔으
면 좋겠고 내 주위의 가족들이 최고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란다.”
나는 앞으로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고, 현재의 내 삶에 만족을 느끼며 행
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의 아내 애란씨, 큰아들 윤녕이, 둘째 딸 윤서, 그리고 막내아들 우솔
이런 우리 가족을 다른 사람들은 식구가 너무 많다고도 하는데 나는 적당
하다고 생각한단다. 아기였던 큰아들이 어느덧 고등학생이고, 딸도 벌써
중학교 2학년이고, 막내도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 된 걸 보면 얼마나 뿌듯
하고 대견한지 모른단다. 아무 탈 없이 커주고 삐딱하지 않고 올 곧게 크는
너희들을 보면 감사함을 느낀단다.
또 그렇게 아이들을 키워준 나의 아내 애란씨, 많이 고맙고 사랑합니다.
우리 식구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꿈을 이루면서 다 같
이 열심히 살아가자.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한다.”

 

이 글을 쓴 최윤녕은…………
나는 목포마리아회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1학년이다.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직장이 목포로 옮기게 되어서 지금까지 목포에서 살고 있다. 나는 어
렸을 때부터 별났다고 한다. 우리는 빌라에서 살았는데 나와 동생이 옥상에 올
라가 이웃집 자동차로 벽돌을 던졌다. 이웃집 자동차는 손상을 크게 입었고 부
모님께 매우 혼났다. 또 아버지의 차 트렁크에 매달려 있다가 아버지가 나를 못
봤는지 그대로 출발해서 떨어져서 다치기도 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
이가 없고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나의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나의 성격은 지금도 고쳐야 할 문제이지만 낯을 가리고 남들 앞에 서는 것에 대
해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또 긴장을 하면 말을 더듬는 등 문제가 있다. 따라
서 나는 이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
나의 취미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손재주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만들
기를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은 것 같다. 나는 그 중
에서도 자동차, 비행기, 배와 같은 탈것들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몇 달
전에 타이타닉호라는 배를 만들어보았다. 그것을 다 만든 뒤 내가 그곳에 탄다
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나의 장래희망은 항해사이다. 나는 커서 누구에게나 존경 받는 선장이 되어서
이 세상 이곳저곳을 항해하고 싶다. 내가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다
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같은 곳을 직접 배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봉사활동
을 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램이다.
지금의 ‘나’는 아주 작은 존재이지만 작은 일부분으로서 최선을 다해서 이 세상
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고 싶다.

 


▶ 이 글은 최윤녕 님의 자서전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며,
전문은 홈페이지(www.libraryonroad.kr)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홈페이지 공지 및 보도-홍보에서 원본파일을 다운하실 수 있습니다.(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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