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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구술:아들 딸이 받아 쓴 우리의 이야기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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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17-03-02 10:06 조회1,008회 201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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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구술:아들 딸이 받아 쓴 우리의 이야기 - 4

Ⅲ. 구술 : 아들 딸이 쓴 우리의 이야기 



도박과
여행의 아들

반영진 | 목포공공도서관_전남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나
육체적 노동을 좋아했던 나에게 중장비 일은 적성에 맞았다. 중장비 기계를 작동
시키며 일할 때 느끼는 역동성과 수십 명의 노동자가 해야 할 일을 단숨에 해치우는
그 힘이 아주 좋았다. 나는 아무래도 현장 체질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중장비 일이 나의 평생 직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어머니가 어려운
형편이라도 학업을 포기하면 안 된다며 독려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옛날 분이
시라 8대 장손인 아들이 몸 쓰는 일을 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다. 한 마디로 선비처
럼 공부하는 직업을 갖게 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런 자식들을 위해 힘든 일을 마
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고 결심했다.
드디어 전남대학교에 합격했다. 대학 등록금의 마련이 어려워서 무작정 입대를
했다.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서였다. 군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하기 전에 등
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 일을 했다. 열심히 일을 한 결과, 대학 등록금을 마련
하여 복학했으며, 그 후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마쳤다. 졸업 후, 한 고등
학교의 수학 선생님으로 취직하게 되었다.
교사가 되어 조금 안정이 되자 내 나이가 서른 살이 됐다. 그 무렵 동료 교사의 주
선으로 다른 학교의 교사였던 ‘이윤주’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 보았을 때 내 눈에 이
윤주 선생은 아주 사납고도 똑똑해 보였다. 나는 이윤주 선생에게 목포에서 제일 사
나운 여자라는 별명을 붙이고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5개월간의 연애 끝에 결혼하
게 되었다. 그 후로 결혼한 지 23년이 지났고 2남 1녀라는 자식을 얻게 됐다. 큰 딸인
유정이는 대학교 4학년, 큰 아들인 기범이는 대학교 1학년으로 공군에 입대하였고,
막내아들인 영진이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다. 이제까지 교사 생활로 벌어온 돈을
생활비, 자녀 교육비, 부모 양육비, 레져 활동비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비록 부유하
지는 않지만 평범히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의 여유로운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어릴 적의 꿈을 실행해 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행하기를 좋아했다. 그랬던 나는 감수성이 풍부했던 21살
때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15일간 전
국 무전여행을 떠났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무전여행은 당연히 힘들 것이라 마
음먹고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힘들지 않았다. 다만 혼자 하는 여행이라 외롭고 고
독하긴 했다. 그래도 그 외로움이 나한테 다양한 자연경관을 깊이 느끼게 했다. 삶의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때 만난 사람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 후 28살이 됐을 때, 교사라는 직업이 과연 나의 적성에 맞는지 그리고 평생 직
업으로써 교사를 선택해도 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7일 간 제주도
도보 무전여행을 떠났다. 여러 가지 고민들이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떠난 여행
이었지만, 역시 고민에 대한 해결 방안을 여행에서 찾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고민
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였고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자는 교훈을 얻
었다. 여행 도중 나에게 도움을 주셨던 분들과의 관계는 지속되지 못했지만, 그 분들
에 대한 은혜에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보다 윤택한 삶을 살고 싶기에 여행을 통
한 행복하고 뿌듯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나의 삶 속 기쁜 일과 슬픈 일
항상 경제적 어려움으로 돈에 대한 집착만 있었을 뿐 여자에 관심을 가질 시간조
차 없었다. 그렇기에 여자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숫기가 없어 연애를 못해봤던 나
는 직장 동료의 소개로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어여쁜 이윤주 씨를 만나게 되었다. ‘목
포에서 가장 사나운 여자’라는 애칭은 나의 맘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좋은 사람
을 만나니 내 자신이 완성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느끼게 해준 사람을 만
난 게 몹시 기뻤다. 또한 어려웠던 집안 경제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점차 안정된
일도 기뻤다. 내가 직접 번 돈으로 자녀들을 양육하고 부모님께 생활비도 드릴 수 있
는 것에 감사했다. 그래도 가장 감격스러운 일은 역시 자식을 가졌을 때이다. 큰 딸,
둘째 아들, 막내아들을 낳을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을 느꼈다. 그런 자식
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늘 기쁜 마음을 가졌다.
행복한 일들과 함께 슬픈 일들도 없지는 않았다. 결혼 후 아내의 요청으로 어머니
께서 건강검진을 했는데 암이 발견됐다. 불행 중 다행으로 초기 암이었다. 나를 이끌
어 주신 어머니의 암 수술로 잠시 걱정이 컸으나 지금은 완쾌하셨기에 별 걱정이 없
다. 한 번은 초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여자를 군 제대 후 본 적이 있다. 그 때 왠지 모
를 처량함과 함께 슬픔이 내게 다가왔다. 그래도 추억은 추억이라 아름다웠다고 생
각한다. 지나간 첫사랑은 붙잡지 않음으로 첫사랑 일 수 있다던가. 그렇게 떠나보냈
기에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날 수 있었고 지금의 아이들을 낳을 수 있었다.
그럭저럭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자식들을 잘 키우고 있다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몇 해 전, 둘째 아들인 기범의 반항기가 시작됐다. 이제까지 잘 커왔던 기범인데, 고
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던 것이다. 나는 당황했다. 그렇기에
기범과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기범도 큰 고비 없이 사춘기를 넘겼다.
지금 세 자식은 부모의 말을 잘 따라주고 있다. 무엇보다 건강함으로 자신들이 하고
자 하는 일과 닿고자 하는 세상을 향해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이제까지 기쁜 일들,
슬픈 일들이 많았으나 기쁜 일만 생각날 뿐 슬픈 일은 모두 극복 가능했기에 지금은
아주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나의 어머니 그리고 나의 삶
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역시 어머니이다. 아버지가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신 뒤 어머니는 어떻게든 자녀들의 교육을 책임지려 하셨다. 고등학교 때 돈
이 없었을 때도 어머니가 직접 식당일을 하시며 버신 돈으로 나를 공부 시키셨다. 어
머니는 나한테 인생이 화려함보다는 끈질긴 생명력임을 알 수 있게 해준 영웅이셨
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을 교육시키려는 어머니의 일념이 지금의 나를 만
들어 준 것이다.
나의 삶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는 교사라는 정신적인 직업보다는 노
동적인 직업이 내 적성에 맞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이따끔 든다는 점이다. 한 시
절 중장비를 움직일 때의 그 역동적인 감각이 떠올라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자식들한테 부끄럽지 않게 살았던 것이 내 삶에서
자부할만한 일이다. 자녀들이 자신의 이익보다는 남을 배려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나는 교사로서
명예롭게 퇴직하고 싶기에 여생도 지금처럼 무난히 이어졌으면 좋겠다. 퇴직한 뒤에
는 여행을 다니고 봉사를 하며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내 인생이 화려한 것은 아니
지만,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 반드시! 행복이 찾아온다는 믿음을 알리고 싶다.

 

「이 글을 쓴 반영진은…………
2000년 9월 22일 태어난 나는, 보통 아기들과 달리 4.16kg의 우량아였다. 그
런 나에게 참되고 진실되게 살아가라는 의미로 반영진이라는 이름을 할아버지
께서 지어주셨다. 나에게는 누나와 형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활발하고 밝았던
나머지 형과 누나랑 함께 놀 때면 코가 깨지고 턱이 찢어지고 머리를 다치는 등
나의 어린 시절은 위험천만했다. 우리 누나는 나와 6살 차이로 지금은 서울대
학교 경제학과 4학년이고 형은 나와 4살 차이로 성균관대 경제학과 1학년이다.
하지만 우리 형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올해 공군으로 입대하였다.
우리 형과 누나는 공부를 항상 잘했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 첫째와 둘째가 공부
를 잘했기에 막내인 나에게 거는 기대 또한 크다. 비록 지금까지 밝게 생활하고
열심히 공부하고는 있지만, 너무나도 잘난 우리 누나와 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그렇기에 나는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
를 풀고 있다. 배드민턴, 탁구, 축구 등 많은 운동에 재능이 있어서 즐겨하지만
특히 요즘은 농구에 빠져 살고 있다. 당연히 좋아하는 만큼 잘하기도 한다.
지금 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 번은 기숙사 친구들끼리 누가 가장 인격
이 좋지 않은지에 대해 투표한 적이 있다. 예상치 못하게도 내가 바로 가장 인격이
좋지 않은 친구로 선정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샤워를 20분 동안 한다는 이유 그
리고 과자를 뺏어먹는다는 이유 등 이상한 이유들이 난발했다. 비록 내가 인격이 좋
지 않은 친구로 뽑혔지만 행복하다. 인격이 좋지 못한 내게 친구들은 항상 밝고 착
하게 대해주기 때문이다.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런 친구들에게 굉장히 고맙다.
최근 한 가지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물론 내가 잘생기기는 했지만 이에 비해
내 첫인상이 무섭다는 것이다. 몇 주 전에 있던 리더십 캠프에서 알게 된 친구가
말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 무섭게 생겼는지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
도 며칠 전에 친구 할머니께서 내게 착하게 생겼다고 말해주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섭게 생겼다는 나의 고민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나의 꿈은 육군 장교가 되는 것이다. 사실 약간 두렵기도 하다. 올해 있었던 사
관학교 시험이 최고로 많은 수가 응시했고 앞으로 경쟁률이 더 높아질 전망이
라고 한다. 그렇기에 앞으로 더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나의 꿈을 이루기 힘들 수
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부터 더 열심히 공부해서 꼭 육군사관학교에 들
어갈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깊이 상상할 것이다, 30년이 지난 후에 육군
장교로서 위대한 리더가 되어 있는 나의 모습을…

 


▶ 이 글은 반영진 님의 자서전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며,
전문은 홈페이지(www.libraryonroad.kr)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홈페이지 공지 및 보도-홍보에서 원본파일을 다운하실 수 있습니다.(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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