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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일화:그때 그런 일이 있었네 - 사람, 그리고 사랑 : 6
20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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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일화:그때 그런 일이 있었네 - 사람, 그리고 사랑 : 6

Ⅱ. 일화 : 그때 그런 일이 있었네



노을이 그린 그림

이인희 | 인천광역시율목도서관_인천

 

 

내면의 마음을 읽을 줄 모르다
결혼하던 해 겨울이었다.
겨울이라 남편이 귀가할 때는 밖이 어두웠다. 그래도 신혼이라 돌아올
때가 되면 나가서 기다리곤 했다. 유독 춥던 날이었다. 그날도 나가서 기다
리고 있는데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둥글넓적한 것을 팔
에 끼고 오다가 나를 보자 기분 좋은 듯 내밀었다.
“날이 춥기에 하나 샀지.”
꾸러미 옆으로 빨간색 앙고라 스웨터 자락이 비쳤다.
색깔은 이게 뭐냐. 비싸게 샀다…….
사다준 공은 없고 타박만 했다.
정작 내면의 마음을 읽을 줄 몰랐다. 철이 없었다.
노래방에 가면 남편이 부르는 노래가 있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진짜 애처롭게 느끼기는 하는 건지.
남들에게 하는 걸 보면 아버님은 정이 많으셨다. 그 정을 베푸느라 미처
감당하지 못한 집안일을 어머니 혼자 하느라 힘이 많이 드셨다. 아버님이
젊어선 직장일로 집을 떠나 계셔, 어머님 홀로 부모님 모시고 자식들 키우
면서 젖소 키우랴, 농사일하랴 쉴 틈 없이 일하셔야 했다. 나이 들어선 남
의 궂은일 돌봐주러 분주하게 다니던 아버님 덕택에 집 지키느라 제대로
된 외출 한번 못해보고 일만 하다 돌아가셨다.
‘피는 속이지 못한다.’ 남편이 그걸 닮았다. 길 가다 할머니가 늦도록 야
채를 펼쳐놓고 팔고 있는걸 보면 다 사가지고 온다. 먹을 수 있던 없던 양
이 많던 적던 개의치 않고. 또 약방의 감초처럼 가서 끼는 곳이 많다. 없으
면 일이 되지 않는다고 불러 대서…….
활동 범위가 넓다 보니 늘 바쁘다. 그러다보니 집안일은 내 차지다. 그래
놓고 젖은 손이 애처롭다는 노래는 꼭 부른다.
뒷방울 저수지로 낚시를 갔다.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을 따라 갔는데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는 순간 풋풋
한 풀과 흙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잔잔하게 흔들리는 저수지의 물은 햇빛
을 받는 대로 반짝였는데, 투명한 비닐을 깔아놓은 듯한 수면이 잔잔하게
흔들리며 일렁거리는 모습이 아주 평화스러웠다.
‘참 맑다!’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이 느낌이 좋아서 낚시를 다니나?’
즐겨 낚시 다니는 마음을 읽어보려 했다. 가져온 짐을 정리하고 먹을 것
을 준비했다. 그동안 아이들은 막대기로 땅에 낙서를 하기도 하고, 작은 돌
멩이를 물 위로 던져 물수제비를 뜨며 놀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아이들과
텐트로 들어가 누웠다. 편히 쉬고 있는데 남편이 우리를 불러댔다.
“여보! 얘들아! 이리 와 봐!”
나가보니 팔뚝만한 미꾸라지 한 마리를 보여주며 잡았다고 좋아라했다.
양동이에 물을 담고 넣어 놓기에, 위에 뭘 덮어놓으라고 하고 우리는 먼저
잤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나가보니 미꾸라지가 없어졌다. 튀어 올라 달아
난 모양이다.
“어휴, 덮어 놓으랬잖아요!”
순간 잔소리가 나갔다.
돌아오는 내내 잡은 물고기보다 놓친 물고기 탓만 했다. ‘귀가 얼마나 따
가웠을까?’
“장래 희망이 뭐니?”
초등학교시절엔 묻는 사람이 더러 있었는데, 그 후 대학교 진학을 위해
입학원서를 쓸 때까지 그걸 물어온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여자는 학교를 졸
업하면 조신하게 있다 시집가서 잘 사는 것이 본분인 것처럼 느껴지던 시
절이었다. 고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친구가 성모병원에서 근무하다 결혼하
면서 일을 접고, 숙대 아동복지학과를 졸업한 친구도 구청에서 근무하다
결혼하고 일을 접었다. 스튜어디스를 하던 친구도 은행에 근무하던 친구
도 결혼하면서 하던 일을 접었다. 난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딸만 일
곱인 집의 맏이여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 생각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하
나 둘 시집을 갈 때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직장과 교회에만 열심히 다녔다.
그게 부모님을 위하는 길이라고 여기며…….
스물여섯 살 되던 해였다.
연년생인 동생이 혼기가 되자 사귀던 사람을 데리고 왔다. 어머니는 눈
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동생을 먼저 결혼시키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단호함이 내 의지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
었다. 결혼을 하지 않고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오히려 부모님 마음을 불편
하게 하는 것이라는 걸 미처 몰랐다. 마음을 고쳐먹자 사방에서 선 자리를
주선했다. 결혼 조건으로 우선 종교를 내세웠다.
살아온 환경이나 생김새가 달라도 한 가지 모아지는 게 있어야 할 것 같
아서였다. 생각이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격을 보기로 했
다. 그 당시 고모님을 따라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활동하던 지금의 남편이
두 가지 요건을 갖추었다. 데이트 할 때 모두 남매같이 닮았다고들 했다.
그래서 천생연분인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고기보다
채식을 좋아하고, 잘 익은 김치보다 방금 버무린 겉절이를 좋아하고, 순한
국을 즐겨 먹던 나와 달리 남편은 칼칼한 찌개를 좋아했다. 나는 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자야 하는데 남편은 겨울에도 냉수를 즐겨 먹을 정도로 시원
한 걸 좋아했으며, 피난 나와 단출하게 지내던 우리 집과 달리 시댁은 아주
번화한 집안으로 모임이 잦고 친척들끼리도 어울림을 즐겨 생활양식도 달
랐다.
순종을 미덕으로 알고 맞추어 나갔다. 맞추어 나가다 보니 포기해야 할
것이 생겼다. 맞추려고만 말고 바꾸어 보려고 시도해 봤더라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포기한 것들.
그러다보니 나를 위한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제와 찾아보려고 하니 너무 나이를 먹었다.
그래도 남편은 보석 같은 두 딸과 손자 손녀를 만날 수 있게 해준 동반자
존재 자체로 안도감을 안겨주는 울타리 같은 존재다.
알게 모르게 버팀목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이인희 님의 자서전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며,
전문은 홈페이지(www.libraryonroad.kr)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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