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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일화:그때 그런 일이 있었네 - 사람, 그리고 사랑 : 5
20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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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일화:그때 그런 일이 있었네 - 사람, 그리고 사랑 : 5

 Ⅱ. 일화 : 그때 그런 일이 있었네



내 영혼의 노래

서금순 | 인천광역시율목도서관_인천

 


숨 막히던 나의 첫사랑
대입 학력고사를 마치고 입학을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동창모임에 나
왔던 그는 누나와 같이 지내던 친구 선종이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
었다. 선종이의 권유로 누님 댁에서 같이 저녁식사를 하게되었는데, 나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수저만 딸그락 거리고 있었다.
“아작”
아뿔싸, 설상가상 돌까지 씹다니!
민망한 마음에 저녁밥은 어디로 먹었는지…….
후, 고문의 시간이었다.
“데려다 줄께.”
인천 지리도 잘 모르면서 쫓아 나온 그는 버스정류장에 같이 서서 내가
타고 갈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타야 함에도 나는 무작정 걷기를 시도했
다. 정작 물어보고 싶은 얘기는 한 마디도 못하고 학력고사는 잘 치뤘는지,
인천엔 언제까지 있을 건지 고작 두어 마디만 나누었을 뿐……. 까만 어둠
처럼 우리 사이엔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불빛이 환하지 않은 밤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내일 전화할께.”
그와 헤어지고 돌아온 밤, 창문으로 침입한 환한 달빛 때문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잠이 살풋이 들었을 때 “따르릉!” 전화 소리에 놀라 단번에
일어나 받았더니 언니를 찾는 전화였다. 어쩔 수 없이 바꿔주면서 언니에
게 빨리 끊으라고 노려보며 온갖 손짓 발짓을 했다.
언니가 전화를 끊자마자, 아예 전화통 앞에 붙어 앉았다.
“일 번지 다방 앞에서 만나자!”
드디어 둘만의 첫 데이트!
중 2때 나는 인천으로, 그는 천안으로 전학을 간 후 친구들을 통해서만
소식을 전해 듣다가 중 3 겨울 고등학교를 배정받고서야 그는 첫 편지를
보내왔다. 고등학교 3년 동안 편지로만 교재가 이어지다 처음 만나게 된
것이었다.
설레임에 한껏 모양은 냈으나 비람머리에 체크무늬 바지, 처음 입어보는
자켓의 부자연스럽고 촌스러운 모습에 신흥동에서 동인천까지 가는 길에
몇 번이나 돌아갈까 망설이다 연락할 방법이 딱히 없어 약속 장소로 향했다.
떡라면을 시켜놓고 오늘은 젓가락만 끼적끼적, 라면 발을 들어 올리자니
국물이 튀면 어쩌나, 소리가 나면 어쩌나, 떡이나 먹을까 집으려 하니 미끄
러워 잡히질 않았다.
“이 다음에 돈 벌면 맛있는 거 사줄게. 지금은 학생 신분이라 이것 밖
에…….”
미안해하는 그의 말에 ‘맛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닌데…….’ 변명조차 하지
못한 채 음식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고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자유공원을 걸으며 좋은 성적을 받았음에도 집안 사정 때문에 수도권 대
학을 선택하지 못하고 4년 장학생에 지원금을 받는 캠퍼스를 선택했노라
며 그는 아쉬운 듯 말꼬리를 흐렸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성실히 공부한 그와는 달리 예비고사 성적만 믿고 지
원했던 교대도, 국문학과도 떨어지고 후기도 포기한 채 장학금을 준다는
전문대 간호학과를 선택했던 나의 모습이 부끄럽고 초라하기만 했다.
그렇게 새내기 대학생으로 출발하면서 다시 만난 나의 첫사랑.
우린 천안과 인천을 오가며 몇 차례 만남을 가진 후에야 터미널로 가던
철로에서 버드나무 가지를 사이에 두고 겨우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림자도 밟기 어려웠던 사람, 감히 똑바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슬그
머니 훔쳐보듯 쳐다봐야 했던 사람.
그의 한마디에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잃었던 용기와 자신감이 생기곤 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고 내려가 버리면 영~영 오지않을 것 같아 터미널 다
방에서 몇 번이고 차표를 물리며 결국엔 막차로 보내야 했던 사람.
만나는 날이면 비는 왜 그리도 오는지, 가지 말라는 말 대신 빗물처럼 흐
르던 눈물…….
내가 천안에 내려갔을 때는 기차역까지 데려다준다고 나왔다가 같이 기
차를 타고 인천까지 온 적도 있었다.
징하게 애가 끓게 사모하여 한번 만나고 나면 일주일 정도는 멍하게 여
운처럼 남은 그의 자취를 더듬다 겨우 정신을 차려 낮에는 일상으로 돌아
갔지만 밤이 되면 장문의 편지로 그리움을 달래며 촛불을 밝혔고, 학교에
서 돌아오면 우체통을 들춰 보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던 그 시절…….
목소리가 듣고 싶은 날에는 동전을 잔뜩 바꿔 놓았다가 나의 하교시간에
맞추어 우체국 교환원이 바꿔주는 전화로 동전이 다 떨어질 때까지 전화
통에 매달려 ‘끊는다’를 수없이 하고서야 수화기를 놓았던 그리운 사람.
초등학교 1학년 짝꿍부터 오랜 시간 푹푹 곰삭은 젓갈처럼 정이 들어 수
차례 이별의 순간에도 돌아서기 힘들었던 사람.
피 끓는 청춘, 애닯던 우리의 사랑,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
.
.
.
“드르렁~ 푸~ 크억,”
반백의 머리에 잔주름이 제법 패인 얼굴에 내 옆에 잠들어 있다. 그 시절
엔 애잔한 그리움으로 잠 못 들게 하더니 지금은 그 추억을 회상함으로 잠
못 이루게 하는군요.


그대가 오지 않는 밤에도
그대가 오지 않는 밤에도
나의 창가에 불을 밝혀 둡니다.
혹여
그대 왔다가 그냥 지나치실까 봐.
아니 올 줄 알면서
새어 나온 불빛 밟고 그대 오시려나.
그대가 오지 않는 밤에도
빗장을 열어 놓습니다.
혹여
그대 왔다가 발길을 돌리실까 봐
아니 올 줄 알면서도
흔들리는 문소리로 그대 오시려나
- 나의 그대를 기다리며 썼던 시입니다.


남편의 선물
나의 남친은 매우 똑똑하고 공부 잘 하는 휴머니스트였다. 형편이 어려
워 4년 장학생에 생활보조금을 받는 조건으로 단대 campus를 선택했다.
‘내 고향 칠월은 /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남친은 그간의 생활비를 조금씩 모아서 내 생일에 맞추어 근사한 선물을
사주려고 올라오던 중, 기차 안에서 그만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았다. 생일
을 챙겨주는 것은 고사하고 돌아갈 차비조차 없어진 남친, 신호등에 멋쩍
게 서 있는 그를 보는 순간 ‘얼마 나 당황했을까? 그 마음만 받으면 족하
지…….’ 이런 마음이 들었으며 좋으련만 “어휴, 못 말려. 이럴거면 오지나
말지.” 속상한 마음에 팽 토라져서 오히려 화를 내고 말았다.
그날, 동기보다 결과를 중요시한 내 모습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몹시 후
회가 된다.
1984년 2월 그간의 실수도 만회할 겸 파도가 밀려 오는 바닷가에서 사랑
을 나누던 남녀가 선전하던 ‘마리안느’ 시계를 졸업선물로 받았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가느다랗고 얄상한 문양의 예쁜 손목시계.
안경·시계점에서 일하던 동생이 특별히 골라 준 것이었는데, 그 다음날
부터 시간이 1분씩, 1시간씩 점점 느려지더니 급기야 어느 날엔가 아예 멈
추고 말았다.
나는 왜 그 시계를 교환하거나 고쳐달라고 청하지 못했을까?
인천과 천안이라는 거리도 있었고, 선물한 시계가 그렇게 금방 망가진
것을 알면 속상해 할 것 같아 내색하기 싫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때로 시
간을 멈추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그래도 잊지 못할 생일선물이 있었다.
결혼 8년에 접어든 해, 남편에게서 “퇴근 후 주안역에서 만나자”는 전화
가 왔다. 올망졸망 세 아이를 친정엄마께 맡기고, 모처럼 처녀 때 심정이
되어 지하상가 계단 앞에서 머리를 쑥 빼고 남편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장미 33송이를 든 남편이 쭈뼛거리며 쑥스러운 듯 나타났다. 순간 나는 나
의 눈을 의심했다. 천하에 뻣뻣한 사람이 화원에 들러 포장을 부탁하고, 서
울에서부터 전철을 타고 내려오는 내내 꽃을 들고 있으려니 얼마나 화끈
거렸을까?
짠순이 주부였던 나는 “뭐하려고 이런 걸 사왔어! 돈 아깝게! 지고 나면
그만일껄!!!”이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날만큼은 ‘서른 세송이의 장미’
가 너무 예뻤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경양식집 돈까스 밖에 없는 줄 아
는 남편과 단 둘이 오붓한 식사를 했다.
고교 졸업 후 처음 만나 떡라면을 사주면서 “돈 벌면 더 맛있는 거 사줄
게!”한 약속을 지키기라도 한듯 조금은 상기된 모습이었다.
남편은 알고 있을까?
나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은 어린 시절 내 마음으로 성큼 성큼 걸어 들어
온 까까머리 어린아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 이 글은 서금순 님의 자서전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며,
전문은 홈페이지(www.libraryonroad.kr)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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