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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일대기:인생-사계 - 겨울 : 1
20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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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일대기:인생-사계 - 겨울 : 1

 Ⅰ. 일대기 : 인생-사계(四季)



 내가 살아온 길

이재은 | 강남도서관_서울

 

 

외손자 돌보기
외손자는 금년 초등학교 4학년이다. 입학할 무렵 그 밑의 외손녀가 젖먹
이어서 어미가 학교에 데리고 다니기가 힘들 것 같아 내가 데리고 다니는
일을 맡았다. 나에겐 있는 게 시간인지라 내가 나선 것이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20분, 지하철 타고 30분, 내려서 15분 걸어가면 딸
네 집에 당도한다. 입학식날 외손자 손을 잡고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가
서 운동장에서 긴 시간 떨고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입학하여 2주 동안
은 등교시간에 맞춰 나도 부지런을 떨었다. 그 이후로는 혼자 다닐 수 있다
고 하여 나는 학교에 갈 일이 없어졌다.
그 해 10월 어느 날 나는 외손자가 어떻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나 궁금하
여 학교를 찾았다.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니까 담임선생님 만 교실에 계
실 거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교실 안에 외손자가 눈에 띄었다. 나하고 눈이
마주쳤고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니 나를 밀어 내는 것이었다. 알아
보니 숙제를 해 오지 않아 담임선생님께서 숙제를 하고 가라고 하여 벌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대충 학교생활을 듣고 외
손자를 데리고 정신없이 집으로 갔다. 어미를 불러 야단을 치고 외손자에
게도 타이르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2학년이 되어서는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받아쓰기 시험이 있었다. 미리 문
제지를 나누어 주고 공부를 해 오도록 하여 시험을 치루는 데도 집에서 하
지 않는 외손자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었다. 내가 안달이 되어 준비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엄마, 아빠는 애 공부에 대해서는 완전 방임주의자들
이다. 숙제가 있든, 시험이 있든 그것은 자신의 몫이지 부모가 관여할 일이
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글쎄 그것도 좋은 교육 방법이 될지 모르
겠지만 나로서는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외손자 공부는 결국 내
가 맡게 되고 만 것이다. 사위나 딸은 나를 달갑게 보지는 않겠지만 그렇다
고 감히 직접적으로 탓하지는 못하는 걸로 안다.
나는 월, 수, 금, 일주일에 3번 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불가피하게 못
가는 날이 생기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가기도 한다. 숙제든 시험공부든 그것
은 내가 가야 할 걸로 외손자는 생각한다. 내가 가야 책가방을 비로소 열고 숙
제할 생각을 한다. 나는 숙제를 도와주기도 하고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도
하고 그 밖에 예습 복습을 하게 한다. 3학년 때부터 영어인증제를 실시하고 있
기 때문에 영어도 같이 하게 되는데 복지관에서 하는 영어공부가 도움이 된다.
초등학교 교과서가 언제부터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아주 훌륭하게 제작
되어 있다. 전에는 국어, 산수, 사회, 자연 등 주지 교과서가 단권으로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국어는 읽기책과 말하기, 듣기, 쓰기책으로 나누어져 있
다. 산수는 수학으로 바뀌고 익힘책이라 하는 문제집이 따로 있는데 자습
용으로 잘 엮어 졌다. 사회는 교과서 외에 자기 고장의 사회책이 행정 구청
별로 만들어졌다. 자연은 과학으로 바뀌어 실험, 관찰 내용을 별책으로 묶
어 각 교과서가 두 권 씩으로 분리 되어 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보람된 일이 외손자 돌보
는 일이라 생각한다. 여행할 때도 제일 아쉬운 게 이 일을 못하는 것이다.
어떤 부모가 나한테 자식을 맡기겠는가? 누가 나한테 공부하겠다고 한 시
간, 두 시간 앉아 있겠는가? 내 딸이고 내 외손자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한
다. 흔히 일이라면 의무도 따르지만 일정한 보수도 있기 마련인데 나에겐
보수는 없다. 오히려 갈 때마다 과자 값이 들어간다.
여섯 살 난 외손녀는 지가 심심할 때는 내 신발을 감추고 가지 말라고 붙
잡지만 아빠가 퇴근하여 저와 놀아주고 오빠랑 가족끼리 오붓하게 지내고
싶을 때면 밖이 깜깜해졌다고 살짝 와서 속삭이는 것이 얼마나 예쁜지 나
로 하여금 또 안 보고는 못 견디게 만든다.
나는 외손자에게 집에 돌아오는 대로 숙제부터 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
록 하고 있지만 아직 실천은 안 되고 있다. 외손자가 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
면 내 일은 끝날지 모른다. 아직까지 내 말대로 하지않아 일을 계속할 수 있
는 것 아닌가 하고 고맙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숙제는 제가 알
아서 하더라도 대학에 들어 갈 때까지는 돌보아 주고 싶은 게 내 욕심이다.
은퇴 후의 세월을 여가로만 보낸다면 그것은 너무 지루할 것이다. 가장 조화
로운 삶이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나 교육, 일, 여가 사이의 균형이 이루어진
삶이 아닌가 싶다. 다행히 우리 복지관에서 자아를 성장시킬 수 있는 교육을 시
켜 주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각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즐겁게 해 주는 것
은 다행한 일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 외손자 돌보는 일이 있는 나로서
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이 생활이 혹여 깨질까 두려워하며 감사한다.  


▶ 이 글은 이재은 님의 자서전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며,
전문은 홈페이지(www.libraryonroad.kr)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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