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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과 인문학
201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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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과 인문학
[옛글에서 읽는 오늘] 허생과 인문학

경향신문(2013. 10. 26) ☞ 원문보기
 
허생이 돈을 빌린 지 5년 만에 변씨를 찾아갔다. 뜻밖의 출현에 변씨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당신 얼굴빛을 보니 별로군요. 빌려간 만 냥은 필시 다 잃어버리지는 않았소?”

허생이 웃으며 말했다. “재물로 얼굴빛이 좋아지는 것은 장사치들에게나 있는 일이오. 어찌 많은 재물이 도를 살찌우겠소?” 그러고는 빌린 돈의 열 배인 십만 냥을 내놨다. “내가 한때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독서를 중단하고 당신에게 만 냥을 빌린 게 부끄럽소.” 변씨는 크게 놀라 절하면서 사양했다. “십분의 일의 이자만 받겠소.” 허생이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은 어찌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 허생은 붙잡는 것을 뿌리치고 휙 가버렸다.

연암의 <허생전>에 나온 한 장면이다. 먹고살기 힘들어 독서를 중단하고 돈벌이에 나섰던 허생. 매점매석으로 큰돈을 벌었다. 허생이란 인물은 허구적이고 그의 재물에 대한 태도는 다소 모순적이지만, 돈이 돈을 벌고 독점에 의해 치부하는 것은 현실적이다. 

허생은 돈벌이에 나선 것이 부끄럽다고 했는데, 그의 부끄러움에 쉽게 동조할 순 없다.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이란 게 있지 않은가. 또 백성이 이롭게 쓰고 민생이 넉넉해야 비로소 덕을 바르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재물이 과연 도를 살찌울 수 있겠느냐는 그의 반문은 자살률이 높은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지지만 그만큼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은 중요하지만 하나의 조건이 될 뿐이다. 도리어 사회의 과도한 물질적 추구 속에서 우리네 각자의 삶은 더욱 각박해질 수 있다. 

얼마 전 인문학의 위기니 인문학도의 위기니 하더니 어느새 인문학 열기다. 돈벌이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던 인문학이 돈이 된단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 배경엔 인문학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과연 인문학의 본령인지는 다소 의문이다. 

옛글에서 인문(人文)이란 말은 천문(天文)·지문(地文)과 짝을 이룬다. 인(人)은 천·지·인의 하나이고, 천지 사이의 존재이다. 문(文)은 겉모양, 무늬, 꾸밈이란 뜻으로 쓰인다. 해와 달, 별들이 천문이요, 산천·초목이 지문이요, 시서(詩書)·예악(禮樂)이 인문이다. 인문은 대체로 문화 또는 문명의 뜻으로 쓰였다. 인문은 결국 사람과 삶에 관한 것이다. 인문학은 물질과 정신의 균형과 같은 사람들의 오래된 고민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인문학 열기의 배경은 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여기저기 인문학 프로그램이 눈에 띄는데, 도서관 인문학 프로그램도 그 하나이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현장을 거니는 프로그램 등이 있으니, 가까운 동네 도서관을 찾아보자.

김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