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는 지역 역사, 깊어지는 우국충정(대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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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가는 지역 역사, 깊어가는 우국충정(대구탐방)
오 성 재
아는것 만큼 보이고 , 보이는 것 만큼 안다고 했다. 따라 나선 태전 도서관 주관한 대구탐방 일정은 북구 연암산 중턱의 구암서원을 먼저 들렀다. 달성 서씨의 문중 서원이다. 조선 중기 대표학자 서거정을 위시한 문중 명현을 모신 승현사를 배알하고 안내원의 설명을 들었다. 시내가 훤히 내려다 뵈는 이곳의 경관은 그만이다. 시가지 근방에 이정도의 서원이 자리하고 있음을 늦게 알았다. 조금은 가파른 산 중턱이라 호흡을 가다듬어야 오를수 있는 곳이다.
이어 달성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먼저 향토역사관을 들러 공원의 축성 내력과 변천사를 기록과 사진으로 확인하고 주변 토성길 따라 걸어본다. 30 년이상을 이곳에 직장을 두고 살아왔으도 정작 관심과 역사적 고증을 듣고 확인해 본 기억은 드물다. 스쳐가는 일상의 개괄적 인식만으로 대충 파악하고 그려느니 생각만 해왔다. 일제 강점기의 토성은 신사 참배의 요람이였고, 백년 전 사진 속에 공원앞 일주문은 도리이(鳥)가 떡 버티고 있어 신사의 전형적 숭배외관의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경술국치 이후 순종 황제의 어가(御駕) 순행로가 서성로 공구 상가의 길따라 이곳을 찾은 참담과 울분의 내력이 가슴을 울린다. 1300 미터의공원 산책로는 다행히 온전한 축성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간단한 도시락을 먹고 건강다지는 보행의 숲길은 호젓하다. 사방이 훤히 틔어있어 어디를 둘러봐도 고층 건물들로 꽉 짜여 도시 경관이 숲길의 운치를 배가시키는 듯하다.
대구 읍성의 시초는 단연 이곳으로 부터 출발한다. 당시는 감영이 있었고 모든 행정의 센타였다. 외성은 성 밖 동서남북 성로가 사통 팔통 발달해 현재의 감영 공원까지 대구부를 이루는 외곽의 형태를 유지했다고 한다. 오래 전 일본 북 큐슈 테제부 신궁을 답사하며 주변에 오래된 고목이 천년은 넘어선 듯한 모습이 그들의 전통의 역사적 단면을 유추해 본적이 있다. 지키고 관리해온 보존의 방식이 돋보였기에 지금의 달성 공원의 관리와 비교가 된다. 맑은 공기와 신선한 가을 햇살이 낙옆을 드리운다. 경내는 동물을 관리하고 있어 공원의 본래적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돌로 축성 기반 위에 다시 봉분을 쌓은 방식은 전략적 외침의 방어에 유일했으리라 추정은 되지만,다만 성문을 여닫는 백성의 통제의 수단이 더 현실적이였으리 짐작한다.
시내 외곽 동쪽 망우당 공원으로 향했다. 임란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곽재우 동상이 버티고 있고, 근방에는 영남제일루가 대구 관문의 상징으로 우뚝서 있다. 근래 세워진 임란의병관(임란호국 영남충의단 전시관)이 각종유물과 관련 영상물을 홍보하고 시민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앞쪽으로 항일독립기념탑이 45 미터의 다이아몬드 형상으로 호국의 산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뒤로 조양회관(광복회관)이 붉은 벽돌 2층 건물로 독립 운동하신 선열들의 유품과 기록물이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다. 다리 아프도록 발품을 팔고 답사한 하루는 모르고 건성으로만 느겼던 애국 푸념의 타성을 다시금 환기해 보는 각성의 여정이었다. (2017. 10. 21. 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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