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빛정보도서관] 글빛, 달빛 슬로리딩 - 함께 읽는 고전인문학당 <참여후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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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되는 만남을 소망하며
-길 위의 인문학, 신영복의「담론」느리게 읽기 참가후기-
오랜 가뭄 끝에 찾아온 장마가 끝자락에 접어들어 이젠 종아리에 부딪는 햇살이 따갑다. 혹독하셨다던 선생님의 여름 징역살이를 기억하며 이쯤이야! 어깨를 편다. 여름더위와 겨울추위는 하나다. 자신의 생각을 서슬 푸르게 벼를 수 있는 계절이었다고 하셨다. 담론을 읽으면서 선생님이라면 뭐라고 하실까? 어떻게 하셨을까? 자주 맘속으로 여쭤본다.
글빛정보도서관에서 8회로 예정된 「담론」읽기 안내문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신청했다. 흠모하는 마음만 가졌을 뿐 아직 「담론」을 읽지 않았고 장소는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함께 읽어나간 경험이 없어서 궁금하기도 했다.
책의 지정된 분량을 읽고 마실을 가듯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측의 친절하고 세심한 배려로 장소는 쾌적했고, 매회 숭례문학당에서 김선화, 류경희 두 분 강사님께서 오셔서 능숙하게 이끌어 주셨다.
먼저, 읽은 부분에 별점을 매기고 읽은 소감과 인상 깊었던 점을 돌아가며 말하였고 경청했다. 책 부분 부분을 낭독하기도 했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타인의 생각을 주의 깊게 듣고, 저자의 견해에 공감유무를 밝히고 그 근거를 제시하는 등 토론이 이어지는 내내 우리는 신영복 선생님의 세계인식과 인간 성찰의 끝모를 깊이, 인간에 대한 애정에 감탄을 거듭했고 때로는 전율했다. 마치 상처주지 않고 눈높이를 맞추어 아이를 훈육하는 아버지처럼 참으로 조곤조곤 쉽게 강의하심에 놀라고 고마워했다. 눈부신 지식의 향연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검색과 사전의 도움도 얻어서 읽었노라 다투어 고백했다.
25장으로 이루어진 「담론」을 관통하는 핵심은 인간 관계론이다. 공부는 머리로만이 아니라 가슴을 거쳐 발까지 가는 것이다. 실천적 주체가 되어 세계를 이해하고 변화시켜 나가야 함을 조용하지만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강의하신다.
세계는 장기 지속의 구조 위에 있고 고전은 오래된 미래로 그 속에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있다. 「주역」의 겸손, 「논어」의 화동담론, 「맹자」의 민본사상, 「노자」의 물과 무위, 「장자」 탈정(脫井) 등을 가져와 존재보다는 관계가 중요하다. 실천적 버전으로 연대하라 말씀하신다.
토론이 거듭될수록 우리 모두 글의 내용에서 나아가 그분을 깊이 만나고 자신을 만나가는 듯했다. 일면식도 없었던 서로였지만 생각의 다름까지 이해하고 공감해갔다.
책의 후반부를 읽고는 가슴이 아리다는 사람도 많았고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하다고도 했다. 점차 모두 선생님께 빠져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생님께서 강의하신 삼독의 2단계라고나 할까? 때로는 조금씩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정도가 낮은 공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함께 맞는 비’를 두고는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이 같아야 한다.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이 동일한 것이라는 설명을 하시긴 했지만 아직도 나는 다 이해 공감하지 못하고 화두로 간직한다.
살아가면서, 양심이라는 단어를 만날 때 선생님이 예시하신 그 젊은 죄수의 ‘물 탄 피’를 어찌 잊을 것이며 떠는 지남철의 바늘을 보며 어찌 지식인의 단호한 자세를 상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선생님께서 걸어오신 삶의 결론이 「담론」이 아닐까? 창신(創新)하라. 인간을 이해하고 공감하라. 삶을 반성하고 안목과 인식을 기르기 위해 양심을 가지고 공부해라. 변화하고 세계를 변화시켜라. 하방연대하고 상생하라. 울림이 크다.
그분이 좋아하셨다는 글귀를 적어본다.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독자가 그 분의 책을 만나서 얻은 공감과 변화의 약속은 계속될 것이고 그 만남은 누군가에게 가서 꽃으로 피어나야 할 것이라고 그 분은 간절히 바라셨다. 늦지 않다. 괜찮다. 화수미제!니라. 과정을 소중히 여기며 다시 시작하라고 따뜻하게 격려하신다.
인간의 아름다움으로 달관의 표정이 있는 얼굴을 말씀하셨는데 선생님이야말로 카르마를 다 깨뜨린 달관의 자세로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아꼈던 분으로 느껴진다. 여느 사람이라면 한탄하고 한이 맺혀 분노하며 소리높일 일들인데 자신의 고통에 저리도 겸허할 수가 있을까? 책의 매 장마다 감동 그 자체였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되 바꿀 수 있는 것은 용기를 가지시고 역경을 살아내심에 감사하다. 초서의 어부의 노래가 주는 지혜로움이 느껴진다.
우리집엔 감히 내가 선생님께 말을 건네 보는 물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생님께서 주신 글제로 80년대 말 서툴게 쓴 남편의 서예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선생님의 사군자 그림과 글씨가 들어간 머그컵 세트이다. ‘고송노석(古松老石)’.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분의 깨달음이 담겨있구나 느낌이 왔다. 만고풍상을 겪으나 그늘과 자리를 내어준다는 뜻이라셨다 한다.
이 시대의 사표(師表) 곧 그 분이 아닐까? 머그컵은 아까워서 한두 번 쓰고는 삼십년 가까이 바라만 본다. 대나무를 그리시곤 심허귀죽(心虛歸竹)이라 쓰셨다. ‘마음 내려놓고 대나무에 의지한다’ 라고 맘대로 풀이해 본다. 번잡한 욕망 버리고 꿋꿋하게 살아서 꿈과 뜻을 꽃으로 일구어내고 싶어하셨던 지조 있는 선비로 신영복 선생님을 내 맘대로 만난다. 황국을 그리시고는 도연명의 음주시 일부를 적으셨다. 그 중 일부가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이다. ....멀리 남산을 바라보노라.... 긴 수형생활과 자신에게 엄정하셔서 더 없이 고단하셨을 그 분의 삶, 위로해 드리고 싶다. 이젠 댓잎소리 들으시며 멀리 남산을 바라보시며 쉬시는 그런 호사 누리시기를 빈다.
단지 글자만 읽는 독서인이었는데 성찰의 작은 불씨가 지펴졌다고 해도 될 것 같다. 함께 읽어준 분들이 고맙고 기회를 마련해주고 도와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2017년 7월 19일 신영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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