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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1차 강연, 탐방 참여후기 (최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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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미정
댓글 0건 조회 777회 작성일 17-07-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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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1차 강연, 탐방 참여후기 (최연주)

 <길 위의 인문학 1차_"근대도시 부산의 개발과정과 역사" 참가 후기 >

                               - 최 연 주 -

 

 부산에서 태어나 살아오면서도 정작 나는 부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쩌면 미디어에서 자주 비춰주는 서울보다도 더 아는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따금 외국이나 서울에서 지인들이 찾아 올 때면, 나는 그들에게 보여주거나 이야기해 줄 것이 별로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백화점이나 광안대교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주변 도시의 화려한 경관은 그들에게는 그저 그런 것들이었다. 그들은 부산이 가진 독특한 무엇인가를 보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들은 멋진 경관보다 가난의 흔적이 깊게 새겨진 산복도로 산동네를 궁금해 하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어촌이었던 부산포는 개항 이후 일본인 거류지를 중심으로 일본의 식민도시로 건설되면서 부산이라는 근대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륙 침략을 위한 전초기지이자 경제 침탈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항구가 매립, 매축되었고 철도와 도로가 놓여졌다. 일본인 위주의 도시 개발로 인해 그들이 거주하던 지역은 부산의 중심가이자 주거지역이 되었지만 일자리를 찾아 들어온 조선인 노동자들은 평지가 부족한 지형 탓에 도시 변두리의 산자락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 후 해방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온 귀환동포들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대규모로 유입된 피난민들이 살 곳을 찾아 산을 따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정착하게 되면서 지금의 산동네가 형성된 것이다.

 

합판으로 지어졌던 피난민 수용소는 현재까지도 서민들의 주거지로 남아 우산 하나 펼치기 힘든 비좁은 골목길에 가분수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나래비마을이 되었다. 넘쳐나는 피난민들은 조선의 소들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해 지었던 소 막사에도 수용되었는데 소 한 마리 들어가던 공간에 피난민 한 가구씩 수십 가구들이 함께 지내면서 소막마을이 생겨났다. 그마저도 얻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가파른 산비탈 일본인 공동묘지에 천막을 치고 비바람을 가리며 살기 시작했는데 이곳이 바로 비석마을이다. 한 때 이 땅을 지배하던 일본인들의 유골은 비석마을 주민들의 구들장 아래 묻혀 후손들에게 잊혀져갔고, 그들의 명복을 기리던 비석과 상석들은 뽑혀나가 계단이 되고 축대가 되어 지금까지 이 마을 전체를 떠받치고 있다. 성공해서 떠나간 이들의 자리는 다시 도시 산업화에 따라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노동자들로 채워졌으나 세월이 흘러가며 점점 빈 집이 많아지면서 쇠락해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열악하고 빈곤한 환경으로 인해 재개발의 광풍마저 비껴가면서 이곳의 주민들은 부동산으로 가난을 벗어날 기회는 얻지 못했지만, 대신 전국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간직할 수가 있었고 덕분에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던 마을에는 여행자들과 젊은 예술가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타지인들은 높은 산복도로의 풍경에서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떠올렸고, 산동네가 가지고 있는 부산의 역사적 가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여행객들과는 달리 나는 이곳에서 마음 편히 풍경을 즐길 수만은 없었다. 파스텔 톤의 알록달록한 마을에는 여전히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열악한 삶을 이어나가는 우리의 이웃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매일 좁고 불편한 골목길과 구불구불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고 집 밖에 있는 공동화장실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부산의 도시재생사업이 관광지 개발에 치중하기보다 주민들의 삶이 좋아질 수 있도록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작년 서울의 한 벽화마을에서 일부 주민들이 벽화를 지워버리는 사건이 일어났었다. 소란스러운 관광객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도시재생사업으로 인해 재개발이 무산되고 일부 지역에서만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자본가들은 부산의 산복도로 문화마을을 주시하고 있다. 벌써부터 일부 풍광 좋은 곳들을 매입해 놓고 어떻게 개발할지를 가늠하는 중이다. 부디 상업시설이 들어오더라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좋은 환경을 만들어 나가면서 지속가능한 상생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관이든 민이든 사업성에만 몰두하여 지역주민의 가난한 삶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키지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탐방 내내 가난하고 소외된 삶에 마음이 아프다가도 높은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망에는 절로 감탄이 흘러나오기도 하면서 이런 저런 복잡한 심경에 부대끼던 나는, 탐방이 끝나갈 무렵 온통 시멘트로 발라진 회색의 골목길을 따라 놓인 조악한 고무 화분에 꽃나무들이 사랑스럽게 피어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쫓기듯 고향을 떠나와 모질고 고달팠던 근현대사를 묵묵히 살아내었던 사람들의 삶도 이 꽃나무들과 같았을까. 비가 올 듯 말 듯 무덥고 흐린 날씨에도 생명 가득한 싱그러운 초록 이파리와 형형색색의 꽃들은 마치 희망처럼 화사하게 동네를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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