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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시대를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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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송푸른나무
댓글 0건 조회 622회 작성일 19-06-2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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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강력하게 의문이 생겼다 중구관할 동네 어울림도서관 주관하에 { 두번의 강연과 탐방} 듣고 강사님과 동행해서 직접 역사의 자리를 보고 해설을 들으면서 초 중 고 배웠던 사실과 너무나도 달랐다 첫번째는 강화도조약은 강제로 한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당시에 남은 자료에 근거에 의해서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특히 2년마다 부산 인천 원산 개항을 했던것을 강사님의 말씀에 혼이 나갔다 학창시절에 이런사실을 그냥 넘어간것은 이해가 정말로 안갑니다 매우 중요한 사항 입니다 두번째는 아관파천 사건의 내용이 심하게 왜곡 되었던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고종께서 국가의 안위를 생각 안하시고 러시아 공사관에 몸을 위탁한것으로 배웠는데 고종께서 그시대의 일본의 만행 { 민비살해} 압박감등 국가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려고 부단히 노력 하였던 것이다 비겁한 왕이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몸부림쳐서 버티신 것 이었다 어떻게 이런일이 생기는지 납득이 안갑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역사를 잊는것은 미래가 없다 그당시에 말씀 하셨습니다 당연한 말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세번재는 덕수궁과 정동 주제를 가지고 말씀 하셨습니다 두개의 이름을 가진배경과 그당시 지적도의 그림과 지도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뒤늦게 밝혀진 사료와 유적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고종께서는 왕의 신분에서 황제를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다 근대역사의 교육을 제대로 알아야 겠다고 다짐을  가졌습니다 네번째는 독립신문의 창간의 배경 입니다 우리는 서재필님만 떠오릅니다 그것만 간단히 배웠쓰니 더욱 그럴겁니다 사실은 독립신문 창간은 고종께서  소통의 중요성을 깊이 생각하시고 그당시에 미국에 있던 서재필박사님한테 지원요청을 하신것입니다 외국의 실생활과 사리에 밝은분이 국내에는 없었나 봅니다 그당시에는 서재필박사님은 고국에 올수없는 처지였습니다 { 갑신정변주역} 고종의 용서가 없었다면 절대로 일어날수가 없었지겠지요? 독립신문의 자금은 그당시에 국가의 재정에서 나왔던 겁니다 이런시실을 지금에 이르러서 알게된것을 부끄럽게 생각을 합니다 아마도 일제36년 식민지 사관교육의 잔재가 뿌리깊게 남아서 더욱 그럴겁니다 작년강원도 강릉에서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에서 잠깐 만났던 독일 이탈리아 학생도 강연의 내용을 거론한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깊이 생각도 안하고 흘러버렸는데
강사님의 뚜렷한 주제설정과 자료 그림등을 보고 들으면서 머리속에서 떠 오르게 된것입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익한 시간이 었습니다 차분한게 강연을 해주신 안창모교수님과 어울림도서관 관계자님 한테도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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