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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원주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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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진
댓글 0건 조회 676회 작성일 17-09-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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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원주 둘러보기.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가치와 생각이 있다. 그러한 생각이 우리가 고전을 보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주변에서 만나는 대상들을 대개 별 일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 옆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조상들 가운데 훌륭한 사람을 수업시간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 분을 모르시고 낯설게 남의 입을 통하여 듣는다는 것은 참 슬프다. 재미있는 예를 들어 영화 트랜스포머를 보면 주인공 로봇 군단이 구식 자동차 모형이다가 신식 모델의 차를 보고 나서 똑같이 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늘 고유한 가치를 간직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 그 모습이 변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변화라는 것은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원호 선생님의 묘역을 탐방하러 내 남송길을 다녀왔다. 소나무 숲을 바라보면서 원호 선생님의 생전에 묫자리를 미리 봐 두셨다고 한다. 그렇게 정성들여 묘역을 살피고 무인석과 정간제중건헌성비가 있었다. 그런데 벌초를 하지 않은 봉분의 모습을 보면서 후손들이 벌초해주었으면 하기도 했고 나역시 이런 저런 이유로 벌초하러 다니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2차시에 걸친 강의를 함께 들은 아저씨께서는 오늘 벌초를 하러 가셔서 탐방에 참가를 못하셨다는데 후손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양천 허씨에 유명한 선조의 이야기를 강의를 통해 들으면 후손임을 자랑스러워 할 자격이 있는지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를 만나듯이 원호선생님의 묘역을 다녀왔다. 그리고 임윤지당 선생님의 선양관에 가서 또 집중해서 배웠다. 임윤지당과 관련된 남자들은 아버지서부터 남편, 자식에 까지 이렇게 쉽게들 저 세상으로 갔는지 모르겠다.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여자인 임윤지당이 남자를 잡아먹었다고 손가락질을 하지는 않았을지 여인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였다. 오늘은 두번째로 임윤지당 얼 선양관을 방문했는데 해설사 분이 알아봐 주셔서 너무 반가웠다. 선양관 앞에 비문을 대표로 읽으면서 공감이 되고 마음이 단단해졌다. 그런데 주변이 공원이라서 그런지 맥주캔이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얼른 쓰레기를 주워서 버렸다. 그리고 어머니같은 모습으로 임윤지당 선생님을 상상하니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성은 다르지만 원호 아버지와 임윤지당 어머니를 마음 속에 담고 세상에 나가 출세하여 강원감영에서 일하게 되는 감찰사가 되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멋진 포정루가 반기어 본원으로 자신있게 들어섰다. 웅장한 선화당이 눈에 들어오는데 몇 단의 돌 위에 세워졌다. 천지인 사상에서 하늘같은 지붕과 땅에 놓인 건물의 기단 사이에 거하는 사람의 지위가 높았다고 한다. 그래서 돌 기둥이 몇 층 놓여있는 것이라는데 선조들의 생각이 건물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에 흐뭇햇다. 예전에는 강원 감영이 훨씬 넓은 곳에 분포하였다는데 배말아파트이름이 배가 서는 종착점이라는 것은 생각이 새로웠다. 관찰사는 관동지방을 다녔다는데 정철 선생님께서도 관동팔경이라는 작품을 남긴 것이 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인물이 나서 부모께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면 그 마을 전체가 상을 받는다고 하였다. 물론 잘못하면 그 마을이 낮은 행정구역으로 강등이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역시 한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마음을 합해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 새삼 공감이 된다. 원주에서 글자랑 말라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공부를 잘 하셨으니 그를 키우기 위한 원주 한마을의 사람들의 가정 교육, 서당에서 비롯된 공부가 가볍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앞서 배웠던 김금원은 강원감영의 관기였다는데 그런 관찰사를 모셨을텐데 비록 관기의 신분이었지만 참했을 것이라 상상을 해 본다. 그리고 봉산동 당간지주를 구경하는데 학창시절에 봉산동 골목을 누비고 과거 원주 문화관이 봉산동에 있을 때 자주 그 곳을 지났다. 내 주변의 보물을 모를 때는 그냥 지나치다가 알고 나서 깜짝 놀라는 것은 내가 참 부끄럽다. 발걸음을 무항길로 향해 좁고 누추한 공간으로 발을 옮기면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원주의 뒷모습이라 마음이 무거웠다. 장충각도 보존이 참 허술하고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게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아직은 내가 문을 열만한 힘이 없는 형편이라서 조금씩 힘을 실어 잠겨진 문을 열어야겠다. 그렇게 나는 원주에서 주인이 되어 앞으로 역사의 문을 열어 나가기 위해 열심히 커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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