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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나래도서관] 무심히 지나쳤던 곳을 다시보다 (김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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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나래도서관
댓글 0건 조회 561회 작성일 18-09-1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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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지나쳤던 곳을 다시보다
                                                                            김성인

문학산 정상을 올라가는 버스 엔진의 숨이 가쁘다.
도서관에서 예정된 시간에 출발하여 첫 번째 탐방코스인 문학산 정상을 향한다.
문학산 정상에서 음악회가 있는 날이라고 한다.
검은 양복을 입고 흰색 이어폰을 낀 안전요원이 입구에서 우리의 방문목적을 묻는다. 우리를 인솔하는 김정화 팀장님이 한참을 설명하고 나서야 철망으로 된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일반인과 구분되는 안전요원의 필요성을 모르지 않으나, 시민을 위한 행사이니만큼 요원의 복장이 통제라는 분위기를 너무 풍기지 않고 친근하다면 의미를 더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버스는 다시 한 번 숨을 몰아쉬며 정상을 향한다.
가까운 거리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개방된 지 삼년이 다 되어가는 이 곳 정상에 이제야 발을 디뎌서 미안하다.
어릴 적 아득히 먼 곳에 실루엣마냥 보이던 레이다를 손으로 가리키며 ‘가면 큰일 나는 곳’이라던 어른들의 말이 기억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어서인지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
행사준비로 어수선하기도 하고 아직 황량하다.
정상 주변을 둘러싼 경관을 보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고 군 막사를 리모델링하여 개관하였다는 문학산 역사관을 먼저 들렀다.
인천의 처음과 성장을 설명하는 현황판, 사진, 재현유물과 함께 도슨트의 해설이 같이 어우러져 이해하기 좋다.  그 내용은 함께하신 남달우 교수님 강의의 축약과 같다.
그 관람동선이 짧아 좋다. 소박해서 좋다. 기념관 크기가 작게 느껴지지만 이것은 그동안 규모의 건물에 익숙해진데서 오는 쓸데없는 느낌이리라.  클 필요가 있겠는가. 새 건물일 필요가 있겠는가.  무조건 기존의 것을 부수고 남김없이 새 것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
역사관을 나와 전망대에 섰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언제나 좋다.  잠시나마 좁은 시선과 삶의 치열함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
이즈음에서 김정화 팀장님 말씀이 떠올랐다. 왜 산성이, 왜 공군기지가 이곳에 있었는지 올라가서 보면 알게 될 거라는. 몽골인 시력이라면 수평선, 지평선 끝의 티끌도 볼 수 있을듯하다.
다음 탐방을 위하여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데 올라오고 있는 대형버스 몇 대와 마주친다.  버스 앞유리에 인천시립교향악단 표시가 붙어있다.  길이 좁아 위태로운 길을 운전기사님들의 양보와 좋은 솜씨로 위험하지 않게 잘 빠져나왔다.

도호부청사와 향교.  가끔 다른 곳을 가다 차 안에서 곁눈으로 보던 곳이다.  관람객들은 역시 많지 않다.  향교는 토요일이어서 문이 닫혀있다.
원래의 도호부청사는 문학초등학교 내에 있고 지금 이곳은 그것을 재현해놓았다고 한다.
남달우 교수님 말씀을 듣고서야 알았다.
교수님 말씀이 재현공간도 50년이 지나 가치를 인정받으면 문화재 등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은 그것을 충분히 감안하여 문화재로 지정되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지어졌을까.
버스는 주안역을 거쳐 제물포로 향했다. 차들이 많다.
주인공원 앞 차로 건너편에 흔적만 남은 교각은 한때 이 차로를 가로지르던 군청색 철교를 받치고 있었다.  인천남중을 다니던 학생 때의 기억이다.
등교할 때 학익동에서부터 4번 버스에 매달려오다가 철교가 보이면 내릴 준비를 하였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갈 때 가끔 친구들과 함께 철도를 걸어 용현시장까지 가서 3번 버스를 타곤 했다.  철도가에 있던 리어카에서 파는 떡볶이를 먹지 않고 그냥 지나친 적은 없다.  그 철도는 지금 없다.
여러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공원에 철도를 그대로 남겨두지 못한 사정이.
공원 주변 정겨운 골목길을 사진에 담고 싶었으나 주민이 실제 살고 있는 곳이라 그리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불편할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이 타인의 피사체가 되어 추억거리로 소비되면 좋을까 나쁠까.
옛것을 지우고 공원으로 바뀌어 시민들의 쉼터가 된 곳과 아직 지우지 않아서 촬영명소로 시민들의 문화콘텐츠가 된 제물포 시장터 그리고 눈으로만 담은 정겨운 골목길을 보면 옛것을 지워야 하는가 지우지 말아야 하는가, 옛것을 남기더라도 어느 정도 남겨야 하는가의 문제는 결론내리기 쉽지 않다.

마지막 탐방장소는 인하공전 캠퍼스 내에 있는 수준원점이다.
대한민국 국토 높이 측정의 기준점이다.
사실 이것이 인천 미추홀구에 꽁꽁 숨어있는 대표적인 숨은그림찾기 아닐까.  이곳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도 알았었으나 잊고 있었다.  여기 오기 전 갑자기 누군가 대한민국 수준원점이 어디 있는가 물었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기억을 더듬었으리라.

오후 다섯 시를 훌쩍 넘어 출발지였던 도서관 앞에 도착했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리면서 탐방 일정이 끝났다.

이 탐방의 기억과 이곳에서 떠올렸던 생각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그것이 곧 완전한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훗날 내가 하게 될 옳은 판단, 착한 판단의 밀알이 되기 위하여 잊힌 척 나도 모르는 곳에 머무르지 않겠는가.
가끔 지날 때 떠오를 추억이 하나 더 덤으로 생겼다.

2018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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