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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수정도서관] 낯익은 공간에서 만나는 낯선 이야기 <1차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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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남시수정도서관
댓글 0건 조회 537회 작성일 18-10-13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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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수도는 한양이다.
그렇다면 그 때 당시 성남은 뭐라 불렸을까?
한강 이남 지역은 햇빛이 덜 든다고 해서 한음으로 불렸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성남에 강산이 2번 변하고도 더 변한 시간을 살면서도 성남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분당과 일산은 중국 동포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인 것도 알지 못했다.
광주 대단지 사건을 지나 어렵게 설립된 도시가 성남인 것도 알지 못했었다.
그렇게 성남에 대한 이야기를 쭉 듣고서야 아, 내가 서있는 이 곳이 이런 역사가 있던 곳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 가족, 애인과 같이 한 번 쯤은 가봤던 경복궁.
지금 남아있는 경복궁은 그 때 당시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는 것도 오늘 알았다.
경복궁의 구조는 중심이 왕의 공간, 동궁은 왕 및 관료의 가족들의 생활공간, 서궁은 관료들의 일터로 나뉘어져있다.
특히 관료의 일터인 서궁과 왕의 공간인 금정전을 연결하는 가운데에는 경회루가 있었는데
이 경회루는 물고기와 물을 나타낸다고 했다.
물고기는 왕, 물은 신하, 백성으로, 물이 없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하듯이, 백성들이 윤택해야 왕이 잘 통치할 수 있다는 정신을 구조물로 나타낸 것이다.
조선시대에서는 칸이 많으면 격이 높은 건물이였는데 왕의 공간인 금정전보다 경회루가 칸이 더 많은, 즉 경회루가 더 격이 높은 건물로 지어졌다.
이는 조선의 신념, 왕과 신하의 협, 수어지교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이를 본 일본은 안타깝게도 몇 개만 남겨두고 모두 허물고 엑스포를 지었다.
왜 몇 개를 남겨두었을까 라고 의문을 갖게 되었을 때 '경복궁을 보러 오면서 일제의 신문물 및 문화를 전시하는 엑스포에 자연스럽게 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라는 일제의 고도의 전략이라는 것을 배웠다.
조선시대 때 나타났던 왕과 신하, 왕과 백성의 통치 신념.
오히려 지금 다시 우리가 배워야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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