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문화관도서관 <1차> "실학의 등장과 역사인식" 참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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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김금순님 후기입니다~
성호 이익 선생
나는 서울생활 전부를 관악구에서 보냈다
시근방진 생각이지만 구청이나 도서관에서 이제껏 많은 행사가 계획되고 진행되었지만 항시 눈에 차지 않았고 모자라는 느낌을 가졌다. 우연히 책을 빌리러 갔다가 안내문을 보고 성호를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김교수의 깊은 학문도 느끼길 원했다.
이번에 기호학자인 성호선생에게서 조선중기의 남인의 학풍이 살아있으며 그 학풍을 이어 수많은 사승관계로 성호학파를 이룬 대가임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자고로 학자는 오래 살아 훌륭한 제자를 많이 키워내야 자기 학문의 틀을 만든다고 했다. 성호는 이 만고의 진리를 착실하게 지킨 분이다. 병약하게 태어나 집안의 많은 풍파에도 83세라는 놀라운 시간을 살았으며 뛰어난 인재를 길러 자신의 뜻을 잇게 하였던 것이다.
그의 학문은 책상머리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지행합일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유학자의 본래 모습이다. “군자되기”라는 정해진 목표 보다는 실질적인 학문- 즉 배운 이치를 실천하고 적용하는 일- 이 일이 자신과 백성을 위하는 길임을 깨달아 몸소 실천하며 학문에 매진한 것으로 안다. 이익과 권력을 쥐락펴락 하던 패거리에 다가선 적 없었기에 선생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죽은 사람도 뱃속의 태아도 엄청난 군포를 내던 시대에 사대부들은 한 번도 그런 걱정 없이 호의호식 했지만 불쌍한 백성들은 각종 세금과 갖은 부역으로 한 시도 편할 새 없이 허덕거렸다. 사람 축에 낄 수 없는 계층이었던 백성들과 같이 호흡하며 세상을 향한 문을 열어 조선과 다른 문화, 인종, 학문에 대한 관심에 놀랄 뿐이다.
나는 그의 학문이 깊고 높아서도 존경하지만 그 실천력을 더 높이 추앙한다. 그 됨됨이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지금 섬처럼 겨우 살아남은 안산의 묘역이 기적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우리의 현실 정치실정과 자꾸 비교해보기도 한다. 아직도 수많은 탁상공론은 무수히 행해지고 공중분해 되지만 그 책임은 누가 지고 간 적이 있었나?
다음 번의 홍대용 편을 기대한다.
으스대기를 좋아한 뚱보 연암과 친숙하게 지냈지만 많이 다른 그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교수진을 부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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