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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_용인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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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남시분당도서관
댓글 0건 조회 791회 작성일 18-07-2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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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역사탐방 – 사주당이씨, 모현지석묘, 정몽주지묘, 심곡서원, 조광조지묘

경기도 용인지역 역사탐방을 다녀 왔습니다. 탐방지는 사주당이씨지묘, 서파 유희지묘, 모현지석묘, 포은 정몽주지묘, 심곡서원, 정암 조광조지묘로서 시간을 내어 다녀올 만한 역사탐방지였습니다.

당일 역사탐방지에 도착함과 동시에 우리를 인솔하신 김인회 교수님께서 관광과 답사의 의미와 차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올림푸스 우화 얘기가 있는 데 무엇이든지 손에 닿기만 하면 모두 황금으로 변하는 황금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모든 걸 황금으로 만들어 주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부자가 된 것이지요. 그러나 자신의 부인이나 자식도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 버리니 결국 나중에 황금과 자신만 남아 홀로 되어 외롭게 죽어갔다고 합니다. 사주당이씨의 아들 서파 유희가 유명한 언문지를 편저하였으며 19세기 훌륭한 한글학자로 활동했다는 새삼스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포은 정몽주 선생은 조선조 유학의 토대를 세웠다는 말씀을 듣고 보니 새로운 사실을 답사도 하기 전에 들어 매우 유익한 배움으로 오늘 답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주이씨인 사주당이씨는 조선조 유한규의 넷째 부인으로서 여성으로서는 특이하게 성리학의 대가였다고도 합니다. 용인시 모현에 소재한 한국외국어대 캠퍼스 뒷산에 자리잡은 사주당이씨묘를 도보로 1km 산으로 걸어 올라 보게 되었습니다. 울창한 숲에 자리잡은 남편 유한규와 함께 묻힌 묘로서 자리가 좋아 보였습니다. 다시 조금 내려와서 그의 아들 서파 유희의 묘에 올라봤습니다. 서파 유희는 한글학자로서 그 공헌이 크다고 합니다. 다음 장소로 옮겨 모현 지석묘에 들렀습니다. 용인지역에 고인돌이 있다는 사실은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습니다. 크기도 거대하고  두 개의 지석묘를 보니 용인지역이 역사 이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느껴졌습니다. 다음으로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를 찾았습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포은 정몽주는 고려의 제일 가는 충신이지요. 그래서 오늘 답사는 더욱 뜻 깊습니다. 정몽주는 고향이 경북 영천인데 개성에서 명정을 앞세우고 장의를 옮기다 현재의 용인 수지 풍덕천에 잠시 쉬는 중에 명정이 바람에 펄럭이며 한 없이 날라가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쫓다 쫓다 도착한 곳이 현재의 용인시 모현지역이 되어 그 곳에 묻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저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 곳을 찾아 보니 묘터가 매우 아름답고 시원하게 뚤려 있습니다. 천하의 명당처럼 보였습니다. 포은 정몽주의 묘를 보니 고려 말의 역사와 조선 개국까지의 역사가 오버랩되어 머리에 잠겼습니다. 묘터에 있는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를 읽어 보았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과연 고려 제일의 충신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용인 수지에 있는 심곡서원을 찾았습니다. 이 곳에는 정암 조광조의 위폐가 모셔저 있고 김인회 교수님의 여러 유익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원을 둘러보니 수령이 400년, 500년이 된 느티나무가 두 그루가 서 있습니다. 500년 된 느티나무는 정암 조광조 선생 생존 무렵부터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음으로 서원 맞은 편 산에 있는 정암 조광조 묘를 찾았습니다. 조광조는 조선조 중종 때의 개혁적 신하로서 충성을 다 하다가 끝내 훈구파들의 모함을 받아 기묘사화 때 사사된 충신입니다. 走肖爲王이라는 서글픈 역사 이야기에 안타까움이 몸에 배입니다.

오늘 역사탐방은 그 동안 몰랐던 역사에 대해 새로이 깨우치게 된 하루가 되어 매우 값진 기회가 되었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2018. 6. 27.

용인지역 역사탐방 참여자 신 승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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