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시대를 기록하다]
페이지 정보
본문
웬만해서는 외출을 하지 않는 지독한 집돌이인 나를 집 밖으로 이끈 건 ‘길 위의 인문학’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된 건, 방학에 집에만 있지 말고 뭐라도 하라며 내게 무심코 던져준 지인의 정보 덕분이었다. 다른 주제였다면 흘려들었겠지만 윤동주 문학관을 탐방한다는 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게다가 근처의 석파정과 서울미술관도 함께 간다니. 구미가 당겼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켜 문학관의 위치를 검색해봤다. 경복궁 근처였다. 서울에서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모처럼 찾아온 외출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탐방 당일, 오랜만의 나들이에 잔뜩 들떠 집을 나섰다. 하지만 집밖을 나와 처음 마주한 건 눅눅한 하늘이었다. 피부로 스며드는 습한 공기는 기분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가방 속에 우산이 있어 비는 피했지만, 신발이 젖어 양말까지 축축해졌다. 눅눅한 기분은 버스를 탈 때까지도 이어졌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 집이 그리웠다.
집 생각은 서울미술관을 방문하면서 씻은 듯이 사라졌다. 다채롭게 구성된 작품들이 걸음마다 눈길을 끌었다. 정신없이 찍고 감상하다 보니, 양말은 어느새 말라 있었다. 오히려 비가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없어 한적하게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감상하니 더욱더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그의 설명 중에 가장 놀라웠던 건 이 거대한 미술관이 개인 소유라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작품도 그의 소장품이라고 했다. 그가 누구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재력이 부럽기도 했다.
처음 눈길을 끈 건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라는 독특한 제목이었다. 대충 지은 제목 같지만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을 향유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면서 작품 감상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어 대중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었다. 일상을 담은 작품들로 구성한 전시 주제와도 잘 맞물리는 제목이었다. 난해하게만 느껴지던 예술이라는 영역의 포장을 한 꺼풀 벗기고 좀 더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방향성까지 내포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독특했던 점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성이었다. 아침에 시작하여 낮과 저녁, 그리고 새벽으로 점철되는 작품들은 각각에 어울리는 시간대에 전시되어있었다. 시간에 집중하여 미술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린 느낌을 받았다. 나는 새벽의 끝자락에 앉아 뭉친 다리를 주무르며 아직 관람 중인 사람들을 관찰했다. 누구는 낮이 길었고, 누구의 하루는 나보다 빨랐다. 그들 모두 상대적인 순간 속에서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미술관의 이층은 선을 강조한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교과서에서만 봐오던 이중섭의 ‘소’를 비롯하여 스페인의 예술가인 하비에르 마틴의 ‘보이지 않는’이라는 제목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소’에서는 굵은 선으로 표현한 골격에서 역동성이 느껴졌고, ‘보이지 않는’ 이라는 작품은 상업광고에 나오는 모델 사진의 눈과 몸에 네온사인을 붙여 놓은 설치예술작품이었는데, 그들을 바라볼 때의 시선을 네온사인으로 가시화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의 볼거리는 전통 가옥과 현대식 건물의 조화가 이루어진 독특한 구조의 건축 형태였다. 2층까지는 전시관이었고, 3층은 석파정과 연결되어있었다. 석파정은 대원군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라 한다. 그런 석파정을 가는 데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다니, 기분이 묘했다. 대원군이 돌아온다면 문명의 이기를 과연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미술관을 나온 뒤 향한 곳은 기대하던 윤동주 문학관이었다. 그곳은 수도가압장과 물탱크가 있던 시설을 변모시킨 곳이다. 비록 그가 실제로 살았던 공간은 아니지만 그의 생애와 문학에 대한 때 묻지 않은 열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세상에 두 권밖에 남아있지 않은 초판 원고, 그의 손때가 묻어있는 책들, 그리고 유고시집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그의 육필원고를 본 것이다. 왠지 윤동주 같은 대문호는 시를 쓸 때도 전혀 퇴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그가 원고에 두줄로 찍찍 그어놓은 오탈자들을 보면서 그의 인간적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실제 물탱크였던 곳에 들어가 그의 생애를 담은 12분짜리 영상을 빔프로젝터로 보는 체험도 독특한 경험이었다. 문학관을 모두 둘러본 후에 문학관 뒤편에 있는 시인의 언덕에 올라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어느새 비는 그쳐있었고,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숨결처럼 불어왔다.
길 위의 인문학이 아니었다면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알았다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찾아가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날 경험한 것들은 내 안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알게 모르게 삶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정보를 준 지인에게 고마웠고, 프로그램을 제공해 준 어울림도서관에게 감사했다.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된 건, 방학에 집에만 있지 말고 뭐라도 하라며 내게 무심코 던져준 지인의 정보 덕분이었다. 다른 주제였다면 흘려들었겠지만 윤동주 문학관을 탐방한다는 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게다가 근처의 석파정과 서울미술관도 함께 간다니. 구미가 당겼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켜 문학관의 위치를 검색해봤다. 경복궁 근처였다. 서울에서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모처럼 찾아온 외출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탐방 당일, 오랜만의 나들이에 잔뜩 들떠 집을 나섰다. 하지만 집밖을 나와 처음 마주한 건 눅눅한 하늘이었다. 피부로 스며드는 습한 공기는 기분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가방 속에 우산이 있어 비는 피했지만, 신발이 젖어 양말까지 축축해졌다. 눅눅한 기분은 버스를 탈 때까지도 이어졌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 집이 그리웠다.
집 생각은 서울미술관을 방문하면서 씻은 듯이 사라졌다. 다채롭게 구성된 작품들이 걸음마다 눈길을 끌었다. 정신없이 찍고 감상하다 보니, 양말은 어느새 말라 있었다. 오히려 비가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없어 한적하게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감상하니 더욱더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그의 설명 중에 가장 놀라웠던 건 이 거대한 미술관이 개인 소유라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작품도 그의 소장품이라고 했다. 그가 누구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재력이 부럽기도 했다.
처음 눈길을 끈 건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라는 독특한 제목이었다. 대충 지은 제목 같지만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을 향유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면서 작품 감상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어 대중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었다. 일상을 담은 작품들로 구성한 전시 주제와도 잘 맞물리는 제목이었다. 난해하게만 느껴지던 예술이라는 영역의 포장을 한 꺼풀 벗기고 좀 더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방향성까지 내포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독특했던 점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성이었다. 아침에 시작하여 낮과 저녁, 그리고 새벽으로 점철되는 작품들은 각각에 어울리는 시간대에 전시되어있었다. 시간에 집중하여 미술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린 느낌을 받았다. 나는 새벽의 끝자락에 앉아 뭉친 다리를 주무르며 아직 관람 중인 사람들을 관찰했다. 누구는 낮이 길었고, 누구의 하루는 나보다 빨랐다. 그들 모두 상대적인 순간 속에서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미술관의 이층은 선을 강조한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교과서에서만 봐오던 이중섭의 ‘소’를 비롯하여 스페인의 예술가인 하비에르 마틴의 ‘보이지 않는’이라는 제목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소’에서는 굵은 선으로 표현한 골격에서 역동성이 느껴졌고, ‘보이지 않는’ 이라는 작품은 상업광고에 나오는 모델 사진의 눈과 몸에 네온사인을 붙여 놓은 설치예술작품이었는데, 그들을 바라볼 때의 시선을 네온사인으로 가시화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의 볼거리는 전통 가옥과 현대식 건물의 조화가 이루어진 독특한 구조의 건축 형태였다. 2층까지는 전시관이었고, 3층은 석파정과 연결되어있었다. 석파정은 대원군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라 한다. 그런 석파정을 가는 데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다니, 기분이 묘했다. 대원군이 돌아온다면 문명의 이기를 과연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미술관을 나온 뒤 향한 곳은 기대하던 윤동주 문학관이었다. 그곳은 수도가압장과 물탱크가 있던 시설을 변모시킨 곳이다. 비록 그가 실제로 살았던 공간은 아니지만 그의 생애와 문학에 대한 때 묻지 않은 열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세상에 두 권밖에 남아있지 않은 초판 원고, 그의 손때가 묻어있는 책들, 그리고 유고시집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그의 육필원고를 본 것이다. 왠지 윤동주 같은 대문호는 시를 쓸 때도 전혀 퇴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그가 원고에 두줄로 찍찍 그어놓은 오탈자들을 보면서 그의 인간적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실제 물탱크였던 곳에 들어가 그의 생애를 담은 12분짜리 영상을 빔프로젝터로 보는 체험도 독특한 경험이었다. 문학관을 모두 둘러본 후에 문학관 뒤편에 있는 시인의 언덕에 올라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어느새 비는 그쳐있었고,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숨결처럼 불어왔다.
길 위의 인문학이 아니었다면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알았다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찾아가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날 경험한 것들은 내 안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알게 모르게 삶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정보를 준 지인에게 고마웠고, 프로그램을 제공해 준 어울림도서관에게 감사했다.
- 이전글[「인문도시 춘천 !」3.1운동 100년의 길을 묻다] 19.07.24
- 다음글[라이프 밸런스 인문학, 쉼] 19.07.2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