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립도서관]길 위의 인문학 참가후기 - 최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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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사랑 그리고 용기
최 진 선
글쓰기가 참 어렵다. 민낯을 드러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담을 수 밖에 없기에 더욱 그러하리라. 추앙받는 위인들께서 저술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그 용기에 머리를 숙인다.
임혜련 선생의 명강의에 이어 정순왕후의 생가(서산)와 서울 창덕궁을 탐방하면서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부는 시원한 바람은 매 시대에 긴박한 정세와 궁중에서의 갈등을 씻어내는 듯하다. 정순왕후에 대한 시선이 곱지 만은 않다. 많지 않은 연세에 국모로서 왕의 지지기반을 견고히 하고 친정가문을 세운 일이 그리 쉽지 만은 않았으리라. 신유사옥으로 천주교 박해는 조선을 쇄국의 길로 가게 하는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질문해 본다.
정순왕후는 66세의 영조와 15세에 혼인하여 국모가 된다. 그 이후 정순왕후의 친정 가문인 노론에 속한 경주 김씨가 정계에서 활동이 두드러진다. 혜경궁 홍씨 가문 등의 예에서 보듯이 왕은 척신을 적절히 등용하여 지지기반으로 삼아 나라를 다스린다.
영조가 승하하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즉위한다. 이때 정순왕후는 대왕대비가 되어야 함에도 왕대비가 된다. 정조는 외척세력 배제를 정치의 첫째 원칙으로 세워 정순왕후의 친족들이 정계에서 배제되는 아픔을 겪는다. 그렇지만 내명부를 책임지는 왕대비로서 왕의 후사문제 해결을 위해 충실한다. 반면 수렴청정이 아닌 언교를 통해 정치력을 행사하는 정순왕후는 정조와 많은 부분에서 대립하여 역사적인 논란거리가 된다. 왕가의 잇단 의문의 죽음과 정순왕후의 친정 오빠 김귀주의 죽음 등으로 인해 홍씨 가문과의 대립 등과 함께 은언군의 일로 정조와 노골적으로 대립한다. 은언군을 둘러싼 이 대립은 공의(公義, 정순왕후)와 사의(私意), 정조)의 대립 양상을 띠게 된다.
수렴(동)청정(垂簾同聽政)은 세습 왕조에 있어 공식적인 한시적 정치기관이라 할 수 있다. 정조 재위 24년 만에 승하하자 11세 세자가 즉위한다(순조). 이때 정순왕후가 4년동안 수렴청정한다. 정순왕후는 표면적인 명분을 내세웠으며 영조의 의리로 정조시대의 사안을 처리한다. 방법론에서 정순왕후는 합법 적인 절차를 거쳤고, 권한을 남용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룬다. 그 한 예가 신유사옥으로 천주교 탄압을 명분으로 내세워 남인 시파까지 제거한다. 그 결과는 급격한 정치세력의 변화를 가져오나, 이것은 오랜 세월 궁중에 살면서 체득한 정순왕후의 높은 수준의 정치력을 보인 것이다.
영국의 역사가 배러클러프는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비록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도, 엄격히 말하면 결코 사실 그것이 아니라 널리 승인된 일련의 판단들이다.” 라고 한다.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이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 역사해석을 역사가의 전유물로 맡겨둘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 사이에서 중립을 잡아야 할 것이다.
‘길 위의 인문학’에 강의하신 김흥식 선생께서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주지시켜 주신 적이 있다. 인문학은 ‘사람의 글’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사람의 무늬’에 대한 학문이란 것이다. 즉 그 사람의 살아온 자취를 탐구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인문학을 함으로써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수밀 선생께서 ‘절대 선’의 가치를 지닌 말(단어)를 물으신 적이 있다. ‘생명’을 말하신다. 다들 그 소중함을 왜 모르겠느냐마는 막상 질문을 통해 대답으로 끄집어내기는 또 즉각적이지는 않았다. 본 강좌들에서 듣고 배운 분들-정순왕후, 유성룡(징비록), 박지원(연암일기)-을 통해 우리가 바라보고 교훈을 얻고자 하는 관점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무조건적인 옹호나 비판이 아니라 오늘 함께 살고자 하는 생명을 위한 몸부림으로써 ‘본받을 점과 비판적인 점’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생명을 이루고자 하는 몸부림은 또 한편에서는 ‘그가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사랑했는가’ 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대답이 석연치 않을 때, 즉 자기와 친족만을 위한 결정이었을 때 비난이 거세질 것이다.
만일 정순왕후가 정조대와 같이 천주교를 용인하고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국정을 진행시켰더라면 오늘 우리나라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애국, 애민 - 사랑은 하나인데 방법론은 사람마다 다르다. 정순왕후가 사랑한 것, 유성룡(징비록)이 사랑한 것, 박지원(연암일기)이 사랑한 것 - 이에 대한 평가와 교훈은 오늘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이해와 입장 차이로 날카롭게 대립할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에게 어떤 유익을 주었는가 냉정히 평가하여 오늘 유익함을 이루고자하는 용기가 요구된다. 결국, 인문학을 통해 배움은 생명(삶)을 위함이요 그 방법은 사랑이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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