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립도서관]길 위의 인문학 참가후기 - 정향훈
페이지 정보
본문
길 위의 인문학 연암 박지원을 통한 나의 생각
정향훈
도서관의 사계는 아름답지만 잔인하다. 그러나 서산 시내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고 햇볕이 제일 잘 드는 명당자리라 나에게 노력한 만큼 보답을 해 줄 것 같은 그런 장소이기도 하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는 벚꽃이 만개할 때 중간고사이고, 낙엽이 들고 마음이 스스로 고독해 지려고 할 때 기말고사라 일 년 중 감성에 젖을 수 있을 때에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올 초여름까지 지겹던 공부를 끝으로 헛헛한 마음을 어찌 달랠까 하던 차에 연암 박지원에 대한 강의가 한양대라는 이름 때문인지 확 끌렸다.
나는 왕십리 한양대와 인연이 있다. 그러니 박수밀 선생님의 한양대가 나를 인문학의 세계로 이끌었고, 스펙이라는 것에 나 역시도 신뢰를 보내는 것을 알았고, 어찌되었든 그런 마음이 연암 박지원을 알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중3 딸내미가 수준 높은 강의를 듣고, 넓은 세상에 눈을 뜨고, 닥쳐올 고교 입학 시에 자기소개서를 쓸 때 도움이 될까하는 기대도 있었는데 딸은 내 바램을 아는지 모르겠다.
나의 사리사욕에 눈먼 결정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딱히 말하기 어렵지만, 나는 두 번의 강의와 한 번의 탐방을 통해 어렴풋이 하찮게 여기는 것에 대한 뉘우침을 얻게 되었다.
사물을 관찰하는 힘, 그것에 얽힌 의미를 찾는 작업을 순간순간 해 보던 차에 칡넝쿨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긍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계속 찾아보았다.
예전 TV프로에서 산으로 약초를 캐러 가는 심마니가 낫으로 칡넝쿨을 자르며, 그 안에 있는 나무가 자신에게 ‘나 좀 살려 달라’고 구원의 눈길을 보내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 때 이후로 칡넝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칡의 보랏빛 꽃은 참 곱다. 초겨울에 농사일을 끝내고, 한가한 틈에 칡을 캐어 칡즙을 내려 파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을 마시면 몸에 약이 될 거 같다.
그러나 시댁 뒷산에 봄마다 따 먹은 두릅나무를 칡넝쿨이 감아 다 죽여 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 백일홍 나무에도 올라 타, 말라버린 칡 줄기와 다시 기승하는 파란 이파리와 줄기가 에일리언처럼 기운이 뻗쳐 있다. 맞다 에일리언. 고독에 몸부림치며 타고 올라가지만 같이 공생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이기적인 에일리언.
더욱 안타까운 것은 천리포 수목원에 있는 소나무들이다. 수목원 안의 식물들을 바닷바람에서 막아주기 위해 해변을 따라 심어 놓은 소나무들을 칡넝쿨이 타고 올라가며 고사시키고 있는 것이다. 나무와 식물들의 천국 천리포수목원, 그리고 그 안의 칡넝쿨.
글을 쓰며, 새삼 칡넝쿨의 긍정적 의미를 찾았다. 무지와 게으름의 채찍같이 생긴 길고도 질긴 칡넝쿨이 다른 생명의 죽음으로 이어져 있지만 자연은 늘 무언의 깨달음을 주고 있는 듯하다.
올 봄 나는 천리포 수목원에서 수선화를 짓밟고, 자색목련의 가지를 후려 사진을 찍고자 하는 무리를 보았다. 천리포수목원의 설립자는 그냥 나무와 식물들의 천국으로 남겨놓으려 했지만 관리의 어려움으로 2009년 민간인에게 개방했다고 했다. 나는 설립자의 마음을 헤아려보니, 생각이 부족한 사람들의 행로가 한탄스럽고 슬펐다.
당진시 면천면의 군자정과 면천 일대를 돌아보며 박수밀 선생님이 하신 말씀과, 버스 옆자리를 탔던 분의 말을 듣고 역사보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서산시의 해미읍성만 해도 온전히 보전한 읍성으로 인해 갈수록 관광지로 이름이 나 많은 행사와 교황의 방문으로 후손들이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다. 면천은 유명한 연암 박지원선생님을 기리는 작업도 허술하고 역사적인 유물도 보전하지 못해 줄어드는 인구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활기 없는 면단위로 전락한 느낌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지나쳐온 3층의 일본가옥은 멀쩡한 상태로 있으면서도 함께 발전할 기회를 잃은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군산일대를 관광하다 보면 볼 수 있는 일본가옥에 비해 보존상태가 좋으면서도 아무런 가치를 창출해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연암 박지원선생의 이용후생정신이 아이러니하게도 빛을 발하지 못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칡넝쿨과 역사~
무지와 게으름이 생명을 잃어가게 한다.
오랜 세월을 버텨 준 역사적 유물들의 소중함을 일찍이 발견했다면 그것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었다.
조금만 부지런했다면 나무 백일홍은 앙상한 가지들을 자꾸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칡넝쿨을 자른다 해도 칡은 죽지 않는다.
다만 보살핌과 부지런함이 서로 상생할 기회를 갖게 했을지 모른다.
도서관은 나에게 지식을 담게 하고 이번 인문학 강의와 탐방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자부심과 역사보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세상 만물의 있는 그대로의 존중과 그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생각을 글로 옮기며 깨우침을 갖게 한 글쓰기 또한 나를 무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음을 감사한다.
- 이전글[서산시립도서관]길 위의 인문학 참가후기 - 조규필 17.11.07
- 다음글[서산시립도서관]길 위의 인문학 참가후기 - 이해은 17.11.0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