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립도서관]길 위의 인문학 참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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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강좌를 들으며
김시권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고 방향을 설정 할 것인가?”라는 명제를 안고 고민하던 중 길 위의 인문학 강좌를 듣게 되었습니다.
제1주제 우리고장 인물 정순와후, 수렴청정으로 영조의 뜻을 잇다
1392년 이성계가 “백성을 위한 왕도정치”를 외치며 유교를 국시로하여 조선을건국 약200년간 태평성대를 구현하였다고는 하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2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됐다는 것은 그동안 국방에 대한 사전대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왕을 비롯한 사대부들이 무능하고 나약한 지를 알 수 가 있는 것이다.
1694년에 취임한 영조는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왕권을 회복하려고 탕평책을 쓰는 등 상당히 노력을 하였으나 사도세자가 노론세력에 모함을 당하여 뒤주에서 처참하게 죽었다는 사실은 오로지 정권만 잡겠다는 아주 사악한 양반들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1776년에 즉위한 정조도 탕평책을 쓰고 규장각을 설치하고 문예부흥을 꾀하고 백성을 위한 참된 정치를 하고 왕권강화를 위하여 애를 썼으나 역시 노론벽파를 비롯한 사대부들에 의해 심하게 견제를 받아오다가 병을 얻고 승하 하였던 바 흔히 후세들은 영,정조시대가 조선의 문예부흥시대라고 합니다.
1800년 순조가 11세에 등극 어린왕 대신 대왕대비인 정순왕후가 4년간 수렴청정을 하여 영조의 유지를 받들어 왕권을 강화하고 민생고를 해결하고자 애를 썼다고는 하나 역시 정권을 잡은 노론벽파세력을 포함한 사대부들에 막혀 선의의 정치가 힘들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당시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청나라는 유럽등 외국과 교역을 활발히 하여 전세계경제의 70%를 장악한 가장 부강한 나라로 발돋음 하였으며,
일본 역시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서 부강한 나라로 발전하였습니다.
조선의 현실은 남인들을 중심으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하여 개혁을 꾀하고,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한 변혁을 하려하였으나 정권유지에 급급한 사대부들에 의해 꽃을 피우지 못하고 결국은 국운이 기울어 일본에게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제2주제 징비록을 통해 본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
징비록을 통해 서애유성룡의 엄격한 선비정신, 도체찰사로서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어려웠던 국정을 이끌어 갔던 아주 훌륭한 선비인 것을 알게 되었고,
벼슬아치를 선발할 때에도 선비로서 갖추어야할 기본덕목을 갖춘사람 만 선발하였으며,
이순신, 권율 같은 뛰어난 장수를 발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데 앞장 섰으며, 의병을 일으키는 등 백성을 위한 사심 없는 정치를 했기 때문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징비록을 통해서 전쟁의 참화를 상세하게 기술함은 물론 다시는 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전쟁을 통해서 나타난 문제점과 대비책 등을 강구한 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학식이 높은 유학자로서 병법, 경세치세 등에 능한 유성룡같은 인재가 있었기에 명나라와 외교도 잘이끌어가는 등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할 수있다.
참고로 선비란 꼿꼿한 지조와 강인한 기개 옳은 일을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한다는 청정한 사람을 말한다.
흔히 보국안민, 위민정치 등의 용어가 곧잘 인용되고 있는데 위와 같은 정신이야말로 양반이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입니다.
오늘날 4차산업혁명이다 해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월속에서 전세계를 상대로 싸워야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역사공부가 소홀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고는 하나
이휘소를 포함 핵물리학학자 등 세계석학들이 동양사에 놀라울 정도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답니다.
과거를 모르고는 현재를 분석할 수 없고,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번강의가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되고 앞으로도 종종 귀중한 강의가 이루어졌으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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