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탐방 "사주당이씨의 묘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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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爲人 在妶乎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노릇을 하는 것이 어찌 여기에 있겠는가?”
18세기 중엽 조선시대엔 남녀의 역할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던 남성중심의 사회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사주당 이씨는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구실을 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선언으로 엄청난 자의식의 발로 하므로 깨어있는 자각의 일단을 보여 주며 스스로 인간의 존재적 의미를 찾고자 선언을 하였다.
2000대 후반 조선후기 국어학자로 정학가로 과학가로 알려진 유희의「문통」이라는 문집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지면서 책속에 실린 어머니 사주당 이씨의 삶을 살펴 볼 수 있는 단편적 자료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었으며 그 속에 자식을 낳고 기르며 교육시켜 성장시키는 과정을 기록한 ‘태교신기’가 최근 재조명 받고 있다.
성남과 가까운 용인이라는 곳에 사주당이씨의 묘가 있으며 최근 이 도시에서는 ‘여성이 살기좋은 도시’의 슬로건과 함께 임산부들에게 사주당 이씨의 ‘태교신기’에 나오는 내용으로 태교음식이나 강의가 한동안 꽤 큰 행사로 진행 된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탐방에서 만나 사주당 이씨의 모습은 내가 강의나 책속에서 만난 상상속 이씨의 위엄있고 당찬 어머니이자 여성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것 같아 안타까웠다.
어느대학 기슭에 사주당 이씨의 묘가 있음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 하나, 표지판이 가리키는 숲길을 따라 10분 남짓 오르니 며칠 전 내린 비로 더 무성해진 잡초들을 한껏 짊어지고 덩그러니 홀로 누워있는 분묘하나를 마주 할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나이지만 조금은 황망한 느낌, 답답함 그리고 작은 한숨까지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다. 살아생전 여성이라 말 못하고 짊어져야 했던 삶의 고난들을 죽어서도 훌훌 벗어버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안고 누워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더욱이 ‘사주당 이씨’ 못지않게 국어학자로 재조명 받고 있는 아들 ‘유희’의 묘지는 변변한 표지조차 없고 묘지를 찾아가는 길조차 나있지 않아 이번탐방을 진행해주신 교수님의 도움 없이는 찾지도 못할 곳에 있었다.
몇주 전 강릉에서 오죽헌 탐방과 비교해 보면 사주당 이씨의 묘의 관리상태는 위상에 맞지 않는 너무나 열악한 주위환경과 관리상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후손으로 부끄럽기 까지 했다. 이번 탐방이후 사주당 이씨의 ‘태교신기’ 책을 찾아 읽어보았다. 조선시대의 남성중심사회에서도 현명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자녀교육까지 직접 시켜 훌륭하게 길러낸 어머니 사주당 이씨, 그런 어머니를 자랑스러워 하는 아들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태교신기’의 책은 자식을 기르는 나에게 또 한권의 좋은 지침서가 되어 줄것 같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노릇을 하는 것이 어찌 여기에 있겠는가?”
18세기 중엽 조선시대엔 남녀의 역할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던 남성중심의 사회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사주당 이씨는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구실을 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선언으로 엄청난 자의식의 발로 하므로 깨어있는 자각의 일단을 보여 주며 스스로 인간의 존재적 의미를 찾고자 선언을 하였다.
2000대 후반 조선후기 국어학자로 정학가로 과학가로 알려진 유희의「문통」이라는 문집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지면서 책속에 실린 어머니 사주당 이씨의 삶을 살펴 볼 수 있는 단편적 자료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었으며 그 속에 자식을 낳고 기르며 교육시켜 성장시키는 과정을 기록한 ‘태교신기’가 최근 재조명 받고 있다.
성남과 가까운 용인이라는 곳에 사주당이씨의 묘가 있으며 최근 이 도시에서는 ‘여성이 살기좋은 도시’의 슬로건과 함께 임산부들에게 사주당 이씨의 ‘태교신기’에 나오는 내용으로 태교음식이나 강의가 한동안 꽤 큰 행사로 진행 된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탐방에서 만나 사주당 이씨의 모습은 내가 강의나 책속에서 만난 상상속 이씨의 위엄있고 당찬 어머니이자 여성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것 같아 안타까웠다.
어느대학 기슭에 사주당 이씨의 묘가 있음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 하나, 표지판이 가리키는 숲길을 따라 10분 남짓 오르니 며칠 전 내린 비로 더 무성해진 잡초들을 한껏 짊어지고 덩그러니 홀로 누워있는 분묘하나를 마주 할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나이지만 조금은 황망한 느낌, 답답함 그리고 작은 한숨까지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다. 살아생전 여성이라 말 못하고 짊어져야 했던 삶의 고난들을 죽어서도 훌훌 벗어버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안고 누워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더욱이 ‘사주당 이씨’ 못지않게 국어학자로 재조명 받고 있는 아들 ‘유희’의 묘지는 변변한 표지조차 없고 묘지를 찾아가는 길조차 나있지 않아 이번탐방을 진행해주신 교수님의 도움 없이는 찾지도 못할 곳에 있었다.
몇주 전 강릉에서 오죽헌 탐방과 비교해 보면 사주당 이씨의 묘의 관리상태는 위상에 맞지 않는 너무나 열악한 주위환경과 관리상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후손으로 부끄럽기 까지 했다. 이번 탐방이후 사주당 이씨의 ‘태교신기’ 책을 찾아 읽어보았다. 조선시대의 남성중심사회에서도 현명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자녀교육까지 직접 시켜 훌륭하게 길러낸 어머니 사주당 이씨, 그런 어머니를 자랑스러워 하는 아들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태교신기’의 책은 자식을 기르는 나에게 또 한권의 좋은 지침서가 되어 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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