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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시대와 공간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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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6회 작성일 23-06-17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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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기다리면서 서울역에 무슨 이야기가 2시간이나 있을까 했다.

첫 충격은 서울역 시계였다. 3개월 빼고는 지금까지 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파발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이 시계는 한국전쟁 중 역무원들의 노력으로 지켜졌고 그 3개월 빼고는 지금까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계의 크기가 무려 160cm라니, 그것을 들고 어떻게 피난을 갔을까? 역무원님들의 책임의식에 탄성이 나왔다.

두 번째 충격은 강우규 의사였다. 그렇다, 나도 몇 번 서울역 광장을 지나가다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런 내가 부끄러워졌다. 누구일까 생각은 했었는데 더 이상 찾아보지 않았음에 부끄러웠다.
그 분이 바로 소설 <토지>에 등장했던 강의원이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주갑이라는 인물을 고쳐주었던 주갑이의 멘토가 되는 인물.
강우규 의사는 3.1운동 이후 젊은이들에게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65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게 폭탄을 속옷에 넣고 국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간질과 밀정을 키웠던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향해 투척, 그러나 총독에게는 파편만 튀기고 말았단다.
본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도와줬던 동지들을 위해 변호사 없이 항소를 하면서 동지들의 무고를 주장했고, 청년들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알리려 애썼다.
당시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된 것은 물론이요 해외에서도 주목했다는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나라면, 나라면 어땠을까?

세 번째로 나를 흔든 것은 바로 철도와 기차였다. 이용하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여행의 즐거움만 생각했던 철도와 기차.
알고 보니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이 철도와 기차였던 것!
철도를 설치하기 시작하는 표준궤를 정하는 것부터 제국주의의 손은 뻗쳐왔다. 그 지역을 점령하는 것은 철도 부설권에 있었다. 큰 기차역은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다.
철도가 놓이고 을사늑약이 체결되면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생활터를 잃게 되고 빼았긴다. 동서남북으로 물자와 자원 인력을 빼앗기 위해 철도는 뻗어나갔다. 잔인했다.
빨때로 표현된 강사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남대문역에서 경성역으로 그리고 지금 문화공간으로 아픔을 극복하고 활용되고 있는 서울역까지 우리의 역사와 생활, 교통과 인물이라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2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다양한 사진으로 보여진 서울역이 신기했다. 방문해서 다시 강의 때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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