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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바라보는 우리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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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두천
댓글 0건 조회 567회 작성일 19-10-2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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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인문학 탐방20191026북촌한옥마을, 창덕궁

출발하면서부터 뜨끈한 온기의 시루떡과 후원해주신 밀감이 간식으로 제공된다.항상 따뜻한 정을 느끼는 장면이다.

북촌문화센터 건물마당과 쪽마루에 모여 탐방의 개략적인 설명을 듣고 출발이다.
북촌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이다.
북촌 한옥마을은 일본이 우리를 강제로 점령했을 때 지어진 집들이다.
도시형한옥이라고도 부르는 개량한옥건물들이다.

대동세무고등학교에서 내려다 본 계동 13번지의 인촌 김성수의 옛집에는 웅장한 정자, 소나무와 향나무가 풍류를 느끼게 했으며 감나무에는 깊어가는 가을이 달려있다.

현대전자에 근무할 때 토익시험을 치르던 계동 1번지의 중앙고등학교에 들렸다.
3·1운동이 싹 튼 중앙학교 숙직실에서는 2·8독립선언서 초안이 건네졌던 장소이다.
지금은 수령 500여년 된 은행나무만이 역사의 현장을 지켰던 모습 그대로이다.
본관·서관·동관 세 건물 모두 영국의 컨트리하우스 양식이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융희황제(순종) 인산일인 6·10 만세 기념비도 한 컷 박았다.

한옥성당에 들려서 기념사진도 한 컷 박았다.
시멘트 건물의 성당과 사랑채 역할의 한옥이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돌에 이해박는집이라고 안내하는 한옥치과는 문이 닫혀있어서 볼 수 없었다.
관광객과 주민들 간의 소음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아홉가지약속 팜프렛과 피켓맨도 보인다.

복정우물을 거쳐 경복궁, 인왕산, 청와대가 바라다 보인다.

점심은 탑골공원 인근에서 닭한마리의 계탕을 먹었다,
모임장소로 오는 길에는 고 박완서 작가가 서대문 인근의 자택에서 인왕산자락을 걸어서
다녔다는 교동초등학교도 보였다.

창덕궁 가는 길에 현대사옥이다.
서민의료기관인 제생원 터라는 안내석이 보인다.

창덕궁에 들렸다.
이방원이 형제들과 개국공신들을 죽인 골육상잔의 장소를 피하고 싶어서 창덕궁을 지어 1405년에 들어간 곳이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 없어지고, 창덕궁을 지어 1610년 광해군 때 완성되어 마지막 황제에 이르기까지 270여 년간 경복궁을 대신한 궁궐이다.
원형 그대로 태종 때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금천교도 한 컷 박았다.

마당이 사다리꼴 모양이다.
이 모양 때문에 당시 건설 책임자가 하옥까지 됐다고 한다.
세종 때 만들어진 부분인데, 당시 살아있던 태종이 네모반듯하지 않다고 박자철을 하옥까지 시킨 것은 폭주 태종 이방원의 품성을 말해주는 것 같다.
창덕궁은 궁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미학을 매우 잘 담아두었다.
마당을 중심으로 증식해서 비대칭을 큰 골격으로 지었다.
창덕궁은 동서로 뻗어, 그 축이 바르지 않는데, 이는 자연의 형태를 그대로 이용한 모습이다.
지붕선을 잡을 때 주변과의 흐름을 중시하여 궁궐에 적용된 곳이 창덕궁이다.
궁궐은 아름답기보다는 권위적이고 웅장하다.
수많은 장식들이 상징적인 의미로 자리잡고 있다.
인정전/선원전/희정당/대조전/낙선재를 둘러보았다.

낙선재는 최근까지도 왕족이 살던 곳이다.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가 1989년 소천하실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깊어가는 가을에 한양의 북촌과 궁궐탐방을 마련해 주신 동두천 시립도서관의 스텝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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