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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인문학 참여후기 (동해시립북삼도서관 정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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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성운
댓글 0건 조회 891회 작성일 14-11-0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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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인문학 참여후기 (동해시립북삼도서관 정용옥) <!--StartFragment--><p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3,4차시. 이진모 교수와 함께 한 관동팔경의 가치와 문학 I, II</span><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nbsp;</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늘 바쁘게 살던터라 이런 인문학 탐방은 생천 처음이라 무척 설레고 기대도 되었다. 관동대 이진모 교수님의 사전이론 수업을 가슴깊이 세기며 북삼도서관에서 주선한 버스에 탑승을 하고 관동팔경 탐방길에 나섰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이북에는 갈 수 없으니 삼일포와 총석을 덮어두고 두어시간만에 고성 청간정에 도착하자 탁트인 동해바다가 가슴 후련하게 우리를 안아 주었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사는 곳이 동해인지라 늘 바다를 접하고 살지만 이렇게 모든것을 다 내려놓게 하는 심금을 움직이는 바다 풍경에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span>&nbs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그야말로 위치한 자리가 무한대의 일품이요 명다이었다. 그 옛날 송시열이 썼었다는 현판이 지금은 아닌것에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당대 성현인 우암 송시열이 이곳을 다녀간 흔적을 찾아보았다. 여기 청간정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새기고 무엇을 다짐 했을까? 어디에도 비길 수 없는 강직한 성품은 저 넓디 넓은 바다에서 안아 왔을까? 세세한 세태의 찌꺼기들은 이 바다속에 내려 놓았을까? </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뿌연 안개속에 성현이신 우암 송시열 할아버지를 정중히 내려놓고 양양낙산사 의상대로 향했다.</span>&nbs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의상대 또한 위치한 자리가 보통의 명당이 아니었다. 관동팔경안에 당당히 들어 갈 수 있었음이 확연히 보였다. 신라 문무왕때 의상이 창건한 낙산사에 정자이름이 의상대로 명명된건 오히려 감사했다. 의상대에 오르니 뜬금없이 2005년도 큰 화재가 머리에 스쳐 지나간다. 보물 제 479호인 동종이 녹아 버린것도 가슴싸하니 아깝구 애처로웠다. 의상대 멋진 동해바다 풍경에 그동안의 모든 욕심을 한 바람에 날려 보내고 깨끗하고 잔잔한 그리고 따스함을 가슴에 꼭꼭 눌러채워 담고 그 유명한 강릉 경포대로 향했다.</span>&nbs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span>&nbs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관동팔경속의 또 하나의 명당. 경포대에 들어서면 신사임당과 율곡선생이 먼저 가슴에 와 닿는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6호. 1층, 2층, 3층 까지의 정자, 기둥 32개 정면 6칸, 측면 5칸 참으로 넓은 정자임에 가슴까지 후련했고, 잔잔한 경포호수는 참으로 아름답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이곳에서 시, 문예와 노닐었을 선인들이 슬금슬금 부러워 진다. 천정에 자리한 율곡선생의 글에서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을 다시 한줌 몰래 가슴에 담아 넣고 경포대를 나섰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오전 일찍 출발했는데 벌써 오후 4시가 훌쩍 넘어간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나머지 관동팔경의 일자가 정해진 21일 다시 모여 이번에는 젤 아래 경북울진의 월송정으로 향했다.</span>&nbs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송강정철이1580년도에 강원도관찰사로 머무르면서 맨 마지막에 읊은 관동팔경인 것이다. </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월송정을 향하는데 주위가 온통 하늘이 안보일만큼 적소나무의 향연 장이였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빽빽한 소나무숲을 지나 월송정에 오르니 그야말로 천상낙원이 따로 없는듯 내몸도 두둥실 떠오르는 듯했다. 앞은 끝없이 푸르디푸른&nbsp; 바다요 옆은 울창한 적소나무의 군락이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몽매한이라도 시성 한 수 쯤 저절로 나올 경치였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창건은 고려시대이고 지금 이정자는 1980년에 고려시대의 양식을 본따서 새로 창건한 것이라고 한다. 아주 깔끔하고 단청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으며 바다를 등지고 반듯하니 서있었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월송정부근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다음 다시 버스를 타고 망양정으로 향했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버스 속에서 살짝 눈을 감으니 영상들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옛날옛적신라화랑들이 이 모래벌에서 활과 창으로 무예를 겨누는 장면들. 담소하며 울창한 솔숲을 거니는 장면들. 정자에 앉아서 시성을 나누는 모습들. 참으로 평온하고 단아한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었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자아~~ 내리 세요~~ 깜짝 눈을 뜨니 벌써 망양정에 도착인가 보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깜짝 눈을 뜨니&nbsp; 벌써 망양정에 도착인가 보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작은 돌계단을 사뿐 돌아 한참을 올라서니 역시 또 하나의 절경이 시야 가득하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조선숙종이 관동팔경 중 으뜸이라 하여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하사할 정도이면 가히 짐작이 가는 터. 끝없이 넓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있는 이시야에 어느 누구가 쪼잔하고 소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랴.</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정조임금의 어제시와 숙종임금의 어제시가 누각안에서 후세인을 반긴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정자계단을 올라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눈앞에 숙종임금의 어제시가 눈안에 들어온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nbsp; * 이뭇 멧부리들이 첩첩이 둘어있고</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nbsp; * 놀란 파도 큰물결 하늘에 닿아 있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nbsp; * 만약 이 바다를 술로 만들 수 있다면</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nbsp; * 어찌 한갓 삼백 잔만 마시리&nbsp; </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nbsp;</span>&nbs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숙종이 월송정 그림을 보고 이런 어제를&nbsp;내릴 수 있는 정도면 가히 경치를 짐작하고도 남으리~&nbsp; </span>&nbs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오늘 우리들의 해설사이신 울진 문화원장님의 망양정 극찬은 시간이 가도가도 끝날줄을 몰랐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흘러 3시가 넘어서고 우리들은 서둘러 삼척죽서루로 향했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고려 말에 허물어졌던 것을 1403년 당시 삼척부사 김효선에 의해 다시 건립 되었다고 한다. 동해에 바짝 붙어있는 죽서루이지만 어찌 어찌 살다보니 가까워도 찾게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길 위의 인문학이란 타이틀을 안고 들어서는 죽서루는 사뭇 다른 감흥이였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올랐으면 자연석이 대리석보다도 더 윤기가 있을까? </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돌로 덮여 있는 길이 반짝 반짝 윤이 났다. 올록볼록하고 아주 반지르르한 돌계단을 올라 유유히 흐르는 오십천을 끼고도는 강가에 우뚝 선 죽서루~~!</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span>&nbs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송강정철을 기리는 비석도 한켠에 높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정자들은 다하나같이 다시 복원도하고 예쁜 단청을 하고 있었는데 죽서루 위에 올라서자 옛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단장하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역사 스러워었다.</span>&nbs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관동팔경 중 삼일포와 총석정만 빼고 두루두루 다 보았건만 정자가운데 기둥이 있는 곳은 이곳뿐이었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해설자의 말을 빌리면 신분이 높은 분이 기대어 앉도록 했을것이라는 해설이였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특이 한것이 또 있었는데 정자밑층에 자연석을 주춧돌로 사용하여 기둥마다 높이가 달랐다. 하나같이 빼어난 관동의 절경을 다 본후에 죽서루를 보아서인지 아니면 시대가 변해서인지 오십천을 제외하면 주변경관이 그렇게 썩 좋은 것은 아니었는데 정말 궁금 한것이 있었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이 죽서루가 관동팔경 중 유일하게 보물 213호로 지정된 이유와 뜻이 무엇일까?</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자연석의 주춧돌? 정자 가운데 기둥? 해답을 못찾고 있는데 이렇게 저렇게 날이 저물어 동해로 돌아오는 버스에 올라야 했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엇더니</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관동 팔백리에 방면을 맛디시니 </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어와 성은이야 가디록 망극하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이술 가져다가 사해에 고로논화</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억만 창생을 다취케 맹근후에 </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그제야 고쳐 만나 또 한잔 하잣고야~~</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온 민중을 잘 이끌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nbsp; 감탄스러이 표현할 수 있단말인가.</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어찌 이런 가사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보면 볼수록 놀랍고도 놀라웁지 않을 수가 없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전문곳곳에 임금을 위하는 충심과 민생을 진심으로 위하는 구구절절. 뉘라서다 헤일건가~</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관동별곡의 전문을 다시금 다 읽으며 참으로 많은&nbsp; 생각들이 오고 갔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이번 길 위의 인문학~~~ 참으로 유익한 날들이었다.</span></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span>&nbsp;</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끝으로 주관 인문화체육관광부에 감사하고 시행인 한국도서관협회에 감사하며 모집하여주시고 직접 인도하여주신 동해북삼시립도서관 강성운관장님께 더 더욱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의 정서함양에 많은 도움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span><br><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gulimche; font-size: 10pt;">고맙습니다.</span><br>&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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