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암 가는 길(전주시립삼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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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암 가는 입구를 처음 봤을 때 감탄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으로 마음이 맑아졌으니까. 올라가는 길도 평탄했다. 원만한 경사에 양 옆으로 즐비하게 서 있는 나무들. 곱디고운 꽃봉오리를 살며시 드러낸 야생화들. 눈을 정화해주는 느낌이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도 좋았다. 바람이 주는 것인지, 나무들이 주는 것인지 모를 시원함도 가슴 가득히 담고 올라갔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조금 급격한 오르막이라 힘들었지만. 또한 태조 이성계가 품고 갔을 거대한 꿈도 같이 꾸면서 가는 듯해 뭔가 모를 감정도 함께 올라갔다. 나 자신을 다독이면서.
중간쯤 갔을 땐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성계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가는 길이라 전혀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성계와 뜻을 같이 하는 장군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을 따르는 군사들은 어떤 마음으로 갔을까? 백성들은 무슨 마음으로 이들을 바라보았을까? 과연 이성계와 같은 마음일리는 없겠지만, 비슷한 마음이 있었을까?
상이암을 가는 날은 무척 더웠다. 평탄한 오르막이라 해도 오르막이었다. 평소 운동부족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좋아해서 선택한 결정이었고, 편안한 마음으로 온 것이라 몸이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즐거웠다. 하지만 그때 병사들이랑 백성들은 어떤 심정으로 왔을까?
상이암은 태조 이성계가 큰 야망을 꿈꾸며 기도했던 곳이란다. 이곳에서 잠을 자다, 꿈속에서 “성수 만세”라는 소리를 세 번 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하늘이 주신 계시라 여기고, 조선을 건국했단다. 역사가 깊이 새겨진 곳이다. 때마침 TV에서 <정도전>이 방영되어 이곳이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역사가 깃든 곳에 내 발자국도 찍었다는 뿌듯함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승리자가 된 고귀한 신분으로만 우리가 모든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란 승리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패배자의 역사는 잊혀질 뿐이다. 다만 후손들에게 아주 부정적인 시각만 줄 뿐.
이런 저런 생각으로 무심하게 오르니 상이암이 보였다. 강사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도 끄덕이기도 하고, 알고 있는 사실인데 하면서 스스로 재기도 하고, 대견해 하면서 탐방을 마쳤다.
이번 탐방은 남원의 운봉 황산과 인월리, 인풍리를 거쳐 상이암에 들린 후 전주 오목대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진안 마이산을 못간 것이 약간은 아쉽지만 말이다. 사실 마이산은 가족들과 함께 가보기는 했지만,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니라서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름대로 기대를 했지만 여건상 할 수 없었다. 다음에 내 스스로 정확한 목표설정 후 방문할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도서관에서 실시하는 <길 위의 인문학> 덕분에 전주를 더 많이 알게 되어 개인적으로 너무 감사하다. 역사라는 거대한 그림에서 조선을 파악했다. 이건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야말로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회로 인해 거시적 시각이 아닌 미시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또한 지역 역사를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말할 것은 없지만 말이다. 앞으로 책을 보든, 영화를 보든, 드라마를 보든 역사를 바라볼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 고맙다.
온 몸으로 느끼는 역사. 눈으로 아로새기는 역사. 많은 소리를 듣는 역사.
추상적으로 생각했던 역사가 아니라, 진정으로 살아있는 역사를 만났다. 살아있는 만남을 삼천도서관은 주선해 주었다. 또 앞으로 나 혼자서도 유적지나 유물을 대할 때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다.
선조들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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