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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해방촌을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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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해미
댓글 0건 조회 1,056회 작성일 15-10-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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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해방촌을 다녀오다’ <!--StartFragment--><p style="text-align: center; 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7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7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fareast-font-family: 서울한강체 L;" lang="EN-US"><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7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fareast-font-family: 서울한강체 L;" lang="EN-US">[강서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해방촌을 다녀오다’</span></span></p><p style="text-align: right; 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7pt;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 align="right"><span style="font-size: 11pt;">참가자 박*숙</span></p><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3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 align="left"><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3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fareast-font-family: 서울한강체 L;" lang="EN-US">?</span><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ascii-font-family: 서울한강체 L;">청명하다는 단어를 떠올리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는 초가을 오후. 이범선의 오발탄을 소재로 한 아침 강연이 끝난 뒤, 단체로 버스에 탑승해 ‘길 위의 인문학’ 이라는 주제에 딱 들어맞는 해방촌 탐방에 나섰다.</span></p><p style="text-align: left; 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3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 align="left"><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ascii-font-family: 서울한강체 L;">?</span><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ascii-font-family: 서울한강체 L;">한남대교를 지나 처음 도착한 곳은 용산고등학교. 정문에 도착하자 운동장은 보이지 않고 작은 정원과 건물 그리고 그 앞에 순국학도탑이 먼저 우리 일행들과 마주했다.</span></p><p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ascii-font-family: 서울한강체 L;">탐방지의 이해를 돕기위해 곁들인 해설사님의 친절한 설명이 끝나고 교정 한 켠에 자리한 순국학도탑을 둘러봤다</span></p><p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fareast-font-family: 서울한강체 L;" lang="EN-US">‘우리에게 왜 이런 아픈 역사가 존재해야만 하는 걸까?'</span></p><p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fareast-font-family: 서울한강체 L;" lang="EN-US">'목숨같은 어린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놓고 노심초사 불면의 밤을 보냈을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span></p><p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fareast-font-family: 서울한강체 L;" lang="EN-US">300명이 넘는 학도병 중에서도 몇 명을 제외하고 고등학생이었다. 그 중에서도 용산고 학생이 80명으로 제일 많았다.</span></p><p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ascii-font-family: 서울한강체 L;">그리고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전쟁의 참화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쓰러져 갔을 그 순간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지기까지 했다.</span></p><p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ascii-font-family: 서울한강체 L;">아들 또래였을 그 분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채 새기기도 전에 이동하여 용산고 정문에 세워져 있는 ‘이태원 터’라고 적힌 표석에 대해 해설을 들었다. 조선시대 한양근교에 있었던 여행객들의 숙소쯤으로 알고 있었던 이태원이라는 지명에 비구니 스님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진다는 슬픈 얘기에 많이 놀랐지만 그 사실의 진위여부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용산고 입구에서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후암동 로터리에서 올려다 보이는 108계단이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 있었다.</span></p><p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ascii-font-family: 서울한강체 L;">그 높은 곳에 일본인들이 참배하는 신사가 있었고, 해방 후 그 터에는 북쪽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터전을 형성하였다고 했다.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그 계단도 지금은 둘로 나뉜 대리석 계단으로 말끔하게 정리되어 생활에 편리함을 더했고, 끝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데 계단높이가 낮게 만들어져 있어서인지 어르신들도 힘들지 않게 천천히 오르내릴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span></p><p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ascii-font-family: 서울한강체 L;">지금은 허물어져 가는 집 몇 채만이 남아 그 곳이 우리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지 대부분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비슷비슷한 집들로 새단장하여 그때의 얘기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현실에 한동안 남산타워만 바라보게 하였다.</span></p><p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ascii-font-family: 서울한강체 L;">다시 후암동 로터리에서 북쪽으로 구불구불 가파를 골목길을 따라오르니 영락보린원이 나왔다. 입구에 ‘전생서 터'라는 표석이 있었는데 이전에는 궁중제사에 쓰이는 가축을 기르던 전생서라는 관아가 있었다고 한다. 좁고 낡은 골목길 담벼락에는 예쁜 벽화들이 그려져 있어서 마치 전시관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고 지루하고 고달파 보이기까지 한 터전에 젊은 감수성을 입힌 예술가들의 창의성에 감탄하며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span></p><p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ascii-font-family: 서울한강체 L;">작은 공간 곳곳에 젊은이들이 입주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고 후미진 좁은 골목길에도 새로운 디자인을 입혀 각양 각색의 상가들이 나눔의 얘기를 담아 탐방객들을 불러들이며 해방촌이 제2의 예술촌으로 거듭나는 변화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내려오는 가파른 길은 우리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가를 짐작하기에 충분하였고</span></p><p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서울한강체 L; font-size: 11pt; mso-hansi-font-family: 서울한강체 L; mso-ascii-font-family: 서울한강체 L;">골목을 지날 때마다 이 동네에서도 한 번 살아봤으면 했는데 내려오는 반대쪽 길은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안전까지 걱정하게 만드는 그런 양면성을 가진 복잡한 현대사회의 해방촌이었다. 이번 기회에도 우리 역사의 흔적들이 조금씩 지워져가고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고, 그 흔적들을 되살리기 위해 열정을 다해 해설을&nbsp;해 준 젊은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은 탐방이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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