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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도서관] 천전리 암각화와 반구대 암각화를 둘러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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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미숙
댓글 0건 조회 1,049회 작성일 15-10-1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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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도서관] 천전리 암각화와 반구대 암각화를 둘러보고 <p>참가자 - 박영혜</p><p>암각화를 새긴 15도 가량 경사진 바위는 아마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지형적인 특징을 면밀이 따져 본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인다.<br>&nbsp; </p><p>바위는 이암이며 새기기 비교적 쉬운 곳이다. 무엇을 표현한 것일까? <br>상부에 면 쪼으기로 나타낸 사슴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동물과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선 쪼기로 나타낸 다양한 기하무늬는 농경의 풍요와 다산을 비는 일종의 종교적인 상징으로 해석되고, 마름모꼴무늬, 굽은 무늬, 둥근 무늬, 우렁 무늬는 비...바람...태양....구름.... 등등,&nbsp; 청동기시대는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농경에 필요한 여러 요소들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br>각종 회로제도 모양입니다. 동심원과 마름모꼴의 세상운영회로, 인면상 등이 잘 나타나 있다&nbsp; </p><p><br>하부에 여러 명문과 가는 선긋기에 의한 인물 및 기마행렬, 배의 항해 모습, 동물상 등이 있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사슴, 물고기 새, 뱀, 사람얼굴상 등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당시의 풍요의식과 관련된 표현으로 해석된다. </p><p>천전리암각화 또는 서석이라고도 하는데....신라시대로 추정되는 명문들이 날카로운 금속도구를 이용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nbsp; 이 글씨가 새겨져 있어 서석이라 한다. 이 글씨를 새긴 이들이 이곳의 이름을 서석이라 칭했다.<br>이 글귀의 내용 중 을사(乙巳)기미(己未)등을 통해 6세기 초 법흥왕의 동생 사부지갈문왕이 을사년 6월18일에 천전리로 놀러와 새긴 것으로 신라시대로 추정하고 있다.</p><p>신라 법흥왕의 동생이자 진흥왕의 아버지인 사부지갈문왕이 부인과 함께 소풍와서 남겨 놓은 글씨가 된다. 함께 동행한 사람들... 음식을 해서 함께 먹은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사부지갈문왕은 법흥왕의 딸 지몰시 혜비와 혼인한 것으로 보인다.<br>부인을 대단히 사랑했던 듯.... <br>&nbsp;부인 지몰시 혜비가 죽은 후 이 곳을 다시 찾았다. 부인은 사부지 갈문왕보다 한참 어렸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연유로 죽었는지 모른다. 갈문왕은 그의 어린 아들(진흥왕)을 데리고&nbsp; 그 옛날을 회상했다 한다.&nbsp; <br>천전리 각석은 선사시대와 고대사를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유적인 것 같다.</p><p>300여자의 명문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이 남긴 것으로 신라 사람들이 삼국시대 이래 이곳을 성지로 여겼음을 짐작하게 한다.<br>일부 파손된 부분은 가슴 아프지만 천전리의 폭발적인 기운은 생각만 해도 감동이다.</p><p>&nbsp;천전리 각석은 대곡천변의 풍광과 어우러진 풍경이 절경이었다.</p><p><br>천전리 서석 건너편에는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이 주변의 암석들은 모두 이암들인데... 먼 옛날 이곳이 호수였거나 바닷가였다는 증거다. 진흙이 굳어서 된 암석이다. 먼 옛날 공룡들이 이곳에서 노닐다가 갑작스런 지각변동으로 인해 그 발자국이 화석으로 남겨진 것이다. <br>&nbsp;<br>우리는 공룡의 발자국을 살짝 피해 간단이 싸온 도시락으로 공룡이 노니던 이 대 자연 속에서&nbsp; 감히 여럿이 모여 맛있게 먹고 담소를 나누며 반구대암각화로 발길을 돌렸다.</p><p>반구대암각화는 천전리 암각화에서 멀지 않다. 같은 계곡에 있다. 천전리는 상류, 반구대는 하류에 해당한다. 천전리에서 반구대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걷기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p><p>&nbsp;</p><p>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진 곳 가는 길에 습지도 보이고 이만한 규모의 습지도 그렇게 흔하게 볼 수 없습니다. 편안한 산책길이었다.<br>새로난 천전리에서 반구대로 가는 길에 유난히 氣가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라 한 장면 찰칵.</p><p>새로 계곡이 형성되어 가는 곳이라 새로운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나 보다.<br>반구대를 찾아 걸어가는 길에 참으로 호젓하고 수려한 길이다. <br>대곡천. 병풍 같은 절벽을 휘감고 굽이굽이 내가 흐른다. <br>오후 햇살에 개천물이 반짝반짝 빛을 낸다. 예사롭지 않은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br>반구대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감탄으로 얼굴빛이 밝아지며 탄성을 지른다</p><p>고래 암각화로 유명한 반구대 절벽이다. 세월의 웅대한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아 비장미가 느껴진다<br>예로 부터 시인 묵객들의 이목을 끌었음직한 반구대의 기암절벽이다<br>반구대는 정몽주선생이 귀양살이 하며 그 경치에 반해 정자를 짓고 제자들과 학문을 쌓은 인연이 있으며....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 등도 풍광이 수려한 이곳을 다녀갔다고 한다. 계곡으로 뻗어내린 지형의 모습이 거북을 닮아 반구대라 했다. </p><p>반구대 암각화 앞을 흐르는 대곡천은 사연호라는 댐을 거쳐 태화강으로 흘러간다.<br>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처마가 드리운듯한 경사진 평평한 부분에&nbsp;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선사시대의 그림, 우리나라 최초의 회화가 각인되어 있다.</p><p>반구대암각화는 암각화는 신석기시대 중기부터 초기철기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br>암각화는 너비 10m, 높이 3m 크기의 바위 면에 새겨져 있다. 암각화는 표현대상의 내부를 모두 쪼아낸 면쪼기 기법과,&nbsp; 윤곽만을 쪼아낸 선쪼기 기법으로 새겨졌다. <br>바위 면에 새겨진 것은 크게 바다짐승과 뭍짐승, 사람, 도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br>바다짐승으로는 고래, 물개, 바다거북 등이 발견되며, 뭍짐승으로는 사슴, 호랑이, 멧돼지, 개 등이 다수 보인다. 사람은 얼굴만 그려진 경우와 바로 선 모습, 옆으로 선 모습, 배에 탄 모습이 있는데, 옆으로 선 모습의 경우 성기를 강조한 점이 특징적이다.<br>도구로는 배, 울타리, 그물, 작살 등을 볼 수 있다. </p><p>암각화는 바다와 육지동물, 사냥과 포경 장면 등 동물의 생태적 특징과 당시의 생활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br>바다 동물은 고래, 거북, 물고기, 가마우지 등이 있으며, 육지동물은 사슴, 멧돼지, 호랑이, 표범, 여우, 늑대, 너구리 등이 새겨져 있다. <br>암각화에 표현된 배와 작살, 부구를 이용하여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은 과거 고래를 잡고 이를 숭배한 뛰어난 해양어로 문화가 울산만에 존재하였음을 보여준다.<br>특히 고래 고기의 부위별 해체장면을 기록해 놓은 걸 보니 이 시대와 똑같음에 감탄하였다. <br>망원경을 통해 찾아보니 마치 기억과 역사 속으로 빠져들어 고대인의 사유세계를 드려다 보는 야릇한 전율을 느꼈다<br>김종희 강사님의 시적인 격조 높은 언어로 열심히 설명하신다. <br>설명을 들으며 꿰맞춰보니 수많은 고래가 숨어있다.<br>마치 숨은 그림 찾기 같다. 작은 고래, 큰고래, 거북이, 그물, 사람그림 ..... <br>고래가 먹이를 따라 이곳 태화강의 상류인 대곡천까지 올라오고, 선사시대의 어부들이 함성을 지르며 작살을 내려쳐 고래를 잡았을 것이라고... <br>반복된 여러 마리의 고래는 자신들이 마치 돌을 쌓듯이 기원을 올리는 의미와 같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고 나니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염원은 변하지 않구나’ 라는 생각에 이 문화체험의 주제인 ‘기억과 역사의 경계에서 생각의 길을 걷다,’가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다.<br>물에 잠겨 유적이 소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금은 임시적으로 댐을 이용하지만 영원히 간직할 수 있기를...<br>이번 기회에 다시 찾아와 보게 된 암각화! <br>우리나라 최초의 회화로 알려진 반구대 암각화는 볼수록 조상들의 위대함이 벅차게 다가옴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한 훌륭한 답사였다. <br>이런 기회가 매년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김종희 강사님을 뵙게 되어 좋았다.&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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