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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립의성공공도서관] 예술가의 흔적과 풍경들, 서촌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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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현주
댓글 0건 조회 792회 작성일 16-06-1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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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립의성공공도서관] 예술가의 흔적과 풍경들, 서촌 골목

                                                                                                                                                                           

                                                                             권미경(참가자) 

 

  녹음이 짙어지는 푸른 5월의 마지막 주이며 6월의 첫날인 61일 의성공공도서관에서 시행하는 길 위의 인문학기행으로 오전 610분까지 공설운동장 집결이다. 서울 서촌 일대 예술인들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 가 보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두 차례의 강의를 들어야 하지만 한 강의를 놓친 터라 내심 불안하기도 했으나 화창한 날씨만큼 일상을 즐겨보리라 마음을 먹으니 한결 가볍다. 급히 올라온 집결지에 반가운 얼굴도 보이지만 낯선 얼굴들이 많다. 한 차 가득 태운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하고 도서관 계장님의 인사말씀에 이어 담당선생님의 간단한 일정 안내를 듣는다.

  1030분경 윤동주시인의 언덕을 잠시 올랐다가 세검정, 별서정원터, 라 갤러리, 창의문을 통과하면 오전 일정이 끝나고, 현지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윤동주 문학관, 수성동 계곡, 박노수 미술관, 송석원, 이상범 가옥, 통인시장을 둘러보면 모든 일정을 마치는 것이란다. 맛난 간식으로 입도 맘도 즐겁게 하다 보니 어느덧 서울에 도착했다.

  1030분경 윤동주시인의 언덕 입구에서 내려서 윤동주시인의 언덕을 올랐다. 예전에 왔을 때는 꽃이 많았었는데 녹음이 짙어지고, 같이 온 일행들도 낯설어서 또 다른 느낌이다. 서울 도심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최석호 소장님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서시 비석 앞에서 기념사진부터 한 장 남긴다. 날씨가 참 좋다. 춥지도 덥지도 않다. 우리 조상들도 이 맘 때쯤이면 순성을 했다고 한다. 한양도성 성곽을 모두 걸었다는 말이다. 조상님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 보기로 했다.

  백악산 북쪽 계곡 세검정에서 출발하기 위해 세검정에서 버스를 내렸다. 도로 바로 옆에 정자가 있다. 정자 앞에서 세검정의 유래를 듣는데 칼을 씻었다는 뜻의 정자라고 한다. 세검정은 인조반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임금 광해의 패륜을 응징하기 위해 서인이 주축이 된 반정공신들이 이 세검정에 모여 반정을 모의한 후 칼을 씻으면서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폭우가 쏟아질 때 포효하는 소리가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세검정 계곡 위로 올라가니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집터가 하나 나온다. 두 개의 연못과 정자, 우물이 있었다 하는데 지금은 주춧돌 기둥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서울 도심에서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웅장한 자연을 배경삼아 지은 이 집이 과연 예사롭지 않다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2008년 문화재청에서 추사 김정희의 별서정원이라고 확정했다고 한다.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이곳이 백사실계곡이라고 적힌 푯말이 보인다. 산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 듯한데 집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백석동천이라고 새겨진 큰 바위가 좌측에 서 있다. 백석은 백악산(현재 북악산)으로 동천은 동천복지를 구현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죽음을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옮겨가는 것으로 본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다고 하는데 잠시 신선이 사는 곳에 와 있는 착각을 느낀다. 터만 덩그러니 남겨진 별서정원을 바라보며 의성 비안의 쌍책문이 생각났다. 보호받지 못하고 버려져 있는 많은 문화재들, 별서정원의 연못 정자도 어디로 사라지고 없다는데…….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산 중턱 쯤 올라온 것 같다. 북악산 성곽이 보이는데 한국의 만리장성인가 싶어 한참을 바라다 봤다. 북악산 성곽이 보이는 찻집 산모퉁이’, 너무 아름다운 찻집이다. 일정에 쫓겨 차 한 잔 마실 수 없는 게 너무 아쉽다. 주인장에게 미안했지만 찻집 앞에서 너도나도 추억만 찰칵 찰칵…….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서울이란 도시에서 이런 동네가 아직 남아있다는 게 신기하다. 좁은 비탈길 같은 골목을 내려오다 보면 이곳이 서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개발되지 않음에서 오는 순한 맛과 문명의 편리함을 맛 본 자의 어떤 불편함으로 조금 힘드네하는데 길 양쪽에서 피어나 있는 아름다운 꽃들과 멋스런 찻집들이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있어서 여행의 색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도로 옆에서 몇 계단 내려가 있는 라 갤러리에 들러 박노해 사진전을 관람했다. 눈물 흐르는 지구의 골목길을 17년간 유랑하며 찍은 사진을 전시하는데 이 번 사진전은 히말라야산맥 아래 카슈미르지역을 찍은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오랜 영토분쟁으로 고통의 땅이 된 이곳의 봄날을 그리며 찍은 사진들이다. 우리들 고통과 슬픔은 끝이 없겠지만 우리들 사랑과 희망 또한 끝이 없는 것, 눈부시게 아름다운 카슈미르의 봄, 그리고 희망을 만나라는 작가의 말을 뒤로 하고 나오는데 햇볕 쨍쨍한 이 골목길의 야생화들은 왜 이다지도 예쁜 것일까?

  와우~ 이제 상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반갑기도 하고 왜 이리 안도감이 드는 거지? 아마도 배꼽시계 탓이리라. 양쪽 길에 아담한 상가들이 저마다 상점 앞에 갖가지 꽃으로 손님들을 반기고 서울 속 유럽을 보는 것 같은 기분도 살짝 드는데 고깃집 소반이란 소박한 가게로 들어섰다. 시원한 물과 함께 주 메뉴인 잘 양념된 돼지고기 위에 수북이 올려진 콩나물 양념무침, 지금 이 시간 이 순간 여기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이젠 낯선 얼굴들도 친근감이 느껴진다. 지도하시는 선생님을 따라 창의문을 찾아 나선다. 창의문은 한양성곽 4소문 중 하나로 4소문 중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원래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문이란다. 창의문의 역사적 중요성은 첫째 인조반정시 반정군이 이 문을 지나 창덕궁으로 들어갔다는 역사성 때문이고 둘째는 창의문 내부 천장의 닭 모양의 봉황이 그려진 아름다운 문양 때문이란다. 창의문 바깥의 지형이 지네처럼 생겨 닭의 형상을 그려 그 기운을 막아보자는 것이고 지금도 창의문 주위에 닭집이 즐비한 연유이기도 하단다.

  산을 내려오니 도로를 건너 바로 윤동주 문학관으로 연결되어 있어 시대의 아픔 속에 일찍 죽어간 시인의 생애를 사진과 영상으로 느껴본다. 예전의 정수장 시설을 문학관으로 리모델링한 곳으로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의 우물을 형상화하여 우물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느낌이 꽤 괜찮은 것 같다.

  버스에 올라 서촌으로 이동한다. 경복궁 서쪽에서 인왕산 아래로 이어지는 동네, 서촌이다. 조선시대에는 중인들이 주로 살았고 권문세가에서는 별장을 짓기도 한 곳이 이 곳이라 하니 서울의 변두리 어디선가 조선시대 사람들이 불쑥 나타날 것 같은데 간간이 보이는 멋들어진 별장들이 역사적 고증을 더해주고 있는 듯하다.

  통인시장을 통과하니 한참을 이어진 시장통에 먹거리가 풍부하다. 엽전으로 물건을 살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통인시장을 나오니 세종대왕의 출생지이기도 하여서 세종마을이라고 명명한 표지판도 보인다. 시간관계상 이곳에서 이상범화백 고택방문과 박노수 미술관으로 세 팀으로 헤어졌다. 우리 팀은 이상범 화백의 고택으로 출발했다.

  중인들이 많이 살았다는 서촌에는 예술적인 기운들이 면면히 이어져 와서인지 이렇게 예술인들의 집이 보존되어 있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화가의 집에 들러 그 기운을 직접 느껴보는 기회를 붙잡은 것 같아 다시금 길 위의 인문학프로그램과 도서관에 감사함을 느낀다. 통인시장에서 얼마 걷지 않아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이상범 화백의 가옥이 나온다. 겸재 정선의 화풍을 이으신 분으로 한국 풍속 산수화의 대표 화백이시란다. 지금도 이 분의 화실은 청연산방이란 이름으로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넷째 며느님이 관리하고 계셨다. 입구에서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는 참 고우신 서울 할머니가 넷째 며느님이시란다. 생전에 그림 그리시던 모습을 영상을 통해 보게 되었고, 덤으로 서촌의 아름다운 가옥의 내부를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어 기쁘게 기념촬영으로 기록을 남긴다. 많은 화가들이 이곳에 모여 같이 동고동락하며 이상범화백의 가르침을 받고 제자로 길러졌다는 공간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방이 참 많다.

  다시금 골목길을 돌아서 이상범화백의 제자인 박노수 화백의 미술관으로 향한다. 2013년 타계하신 박노수 화백의 박노수 미술관은 매국노 윤덕영이 지은 집을 몇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사들여 사신 집으로 아름다움 속에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기도 했다. 박노수 미술관을 나와서 골목골목을 누비며 다시 인왕산 바로 밑 수성동계곡입구에 섰다. 수성동, 물소리가 진동했다는 뜻으로 이곳에서 발원한 물은 청계천을 거쳐 서울을 휘감아 흘렀다는데 현재는 거의 말라 있었다. 겸재의 진경산수화 <수성동>을 토대로 수성동 계곡의 중간쯤에 다리를 복원해 둔 게 눈에 띈다. 기린교이다. 옛 그림 속에서 복원자료를 찾아내니 예술가의 진가를 다시금 느끼는 바이다.

  도서관 선생님들의 안내를 받아 미로 같은 서촌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서 옛것과 현재가 공존하는 서촌, 이곳이 뭔지는 모르지만 강한 인상으로 남는다. 개발제한구역으로 이나마 보존되고 있다고는 하는데 좀 더 아름답게 재생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싹 철거되어 옛 것이란 찾아볼 길 없는 동네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까지 두 가지 맘이 교차한다.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 길에서 부인과 함께 다시 이 골목길을 와 보고 싶다는 한 참가분의 말씀을 들으니 서촌을 느끼는 깊이가 남다름을 느낀다.

  오후 4시경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주위 분들을 둘러보니 낯설게 만났던 분들이 한 가족같이 정감이 느껴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쉴 짬 없이 꽉 짜인 일정을 소화하느라 사실 좀 힘들었지만 너무나 많은 경험들을 하게 해 준 도서관 관계자들에게 더욱 감사함을 가지게 된 하루였던 것 같다.

  어느 가을 날, 가랑비 오는 고즈넉한 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다시금 성곽을 돌며 서촌 일대를 다녀보는 이 일정을 그대로 답습해 보고 싶다.

 길 위의 인문학참 주제에 걸맞은 멋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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