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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평생학습관] 잃어버린 시를 찾아서 - 유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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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미령
댓글 0건 조회 904회 작성일 16-07-0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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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평생학습관] 잃어버린 시를 찾아서 - 유영분

잃어버린 시를 찾아서

-길위의 인문학 2삶을 정화하는 시참여 후기-

(유영분)

 

어린 시절 문간방에 세들었던 젊은 여자 테니스선수가 있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낮에는 문도 안 잠근 채 외출이 잦았던 선수의 방에 나는 슬며시 들어가 이것저것 뒤지며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책상 위에 놓인 노트에는 좋아하는 시가 적혀있고 손수 그린 삽화도 있었는데 그 노트를 읽으면서 롱펠로우나 베를렌 같은 이국의 시인들을 접했고 덕분에 나는 용돈을 모으면 세계명작시선집이나 한용운 시집, 한국명시선 같은 시집을 사들이면서 청소년기를 맞을 수 있었다.

한동안 입시공부를 이유로 시와 멀어진 나는 흔히 시의 시대로 불리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남들처럼 박노해나 이성복을 읽고 기형도와 황지우를 좋아했다. 서점에 가면 시집이 진열된 구간을 얼쩡거리며 문지시선이나 창비시선을 시리즈로 모으기도 하고 신작 시를 읽기 위해 문예지도 사면서 무척이나 시를 살갑게 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서 시는 웬지 빛이 바랜 듯 멀어졌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세속의 때가 묻어가던 나는 시름시름 존재감을 잃어가는 시 대신 가끔 단편소설 문학상 수상집이나 들추면서 실용적인 영어공부에 매달려 살았다.

이런 이유로 안상학 선생님의 길위의 인문학 삶을 정화하는 시를 신청할 때만해도 본격적인 시강좌를 듣는 게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고 실상은 권정생 선생님의 생가를 방문하는 탐방 프로그램에 이끌려 강좌를 신청했다.

하지만 첫 시간에 강의 자료집에서 안상학 선생님의 자전적인 글을 읽으면서 여전히 시만 바라보고 오로지 시만 갈구하며 스스로 황야의 거친 삶을 택한 시인들이 아직도있구나 하는 경이로움과 감동을 느꼈다.

또한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전문을 읽으면서 젊은 시절 내가 읽었던 현실 참여형 시나 지식인 독백 류의 시와는 전혀 다른 토속적이면서 순박하고, 거칠지만 진실한, 시와 삶이 일체가 된 새로운 시 유형을 발견한 듯한 감동을 느꼈다.

백석의 시가 이렇게 좋은 줄 미쳐 몰랐다는 감탄과 그 동안 백석의 시를 한 줄도 읽지 않고 살았던 내 자신의 무딤에 대한 허탈감이 교차하면서 백석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생경하고 낮선 평안도 지방의 토속어들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웬지 내가 그 뜻을 알 것도 같은 그런 친근함, 호롱불 켜진 오두막에서 찐 감자를 먹던 아주 오래전 어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가슴아림이 느껴지는 시들이었다.

두 번째 강의 시간에는 이육사와 권정생 선생님의 문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문학은 배우고 익혀서 멋진 글귀를 나열하고 언어를 조탁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한 생의 슬픔과 고통, 그리움과 희망을 녹여내어 피와 눈물로 쓰는 자기 삶의 족적임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보통 시인이나 철학자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서전이나 전기를 보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하는데 같은 고장에서 나고 자랐으며 두 작가의 발자취를 쫓고 연구하며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안상학 선생님의 강의는 마치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가 친한 친구의 성격이나 생활에 대해 얘기해주는 것처럼 생생하고 진솔하게 느껴졌다.

권정생 선생님의 삶에 대해서는 얼핏 알고 있었지만 직접 생가를 방문해 선생님이 기거하시던 작은 토담집과 텃밭, 손수 장만하셨을 나뭇단, 마치 스님들이 기거하는 장소처럼 휑하니 소박하기 그지없는 집안을 보니 그 어떤 설명보다 더 그 분의 사람됨과 사상을 느낄 수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놓인 빈 개집에선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고 손글씨로 직접 만든 문패에선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았던 선생님의 밝고 천진난만한 성품이 느껴졌다. 예쁘고 곱고 아름다운 것만 들려주는 것이 좋은 동화가 아니며, 참된 동화는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어린이들이 처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어린이들이 대면하는 세상의 폭력과 고통, 아픔을 그대로 들추어내고 어루만져 주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문학관은 새삼 우리가 잃고 지낸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허위의식 속에서 어떻게 현실을 외면하고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또한 교과서에서 익숙하게 본 이육사의 시는 그래서 더욱 이육사의 시를 마치 아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번 강의를 통해 이육사의 삶과 시에 대해 다시한번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 읽으면서 시인이 나고 자란 고장의 풍경과 시인이 성장한 집안의 가풍을 알게 되었다. 초인처럼 굳건하고 강인한 독립운동가 이육사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의 따뜻한 아버지이자 남편, 단정한 복장으로 세련된 멋을 풍기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낭만가객 이육사도 알게 되었다. 수차례에 걸친 투옥과 갖은 고초를 겪으며 의지가지없는 어둡고 차가운 이국의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면서도 꽝꽝 얼어붙은 동토 어딘가에서 옴작거리며 봄을 준비할 꽃을 노래했던 시인의 낙관주의와 영혼의 건강함이 새삼 놀랍기만 했다.

권정생 선생 생가와 이육사 시비를 거쳐 병산서원을 둘러본 후 잠시 머물렀던 서원 앞 모래사장은 처연한 아름다움과 고즈넉함을 지니고 있었다. 잔잔한 낙동강 줄기와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산등성이 너머로 떨어지는 낙조는 얼마나 아름답고 비감할지 새삼 궁금해졌다.

백석의 독창적이고 토속적인 시세계를 알게 되고 인간 이육사의 삶과 시를 좀더 이해하게 되었으며 권정생 선생님이 생활로서 몸소 실천하신 소박하면서도 이타적인 나눔의 삶을 알게 되어 정말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추신 : 힘들고 바쁜 탐방 일정을 총괄하시면서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김미령 선생님과 성함은 모르지만 키크고 잘생기신 남자 선생님, 그리고 함께 해주신 모든 스텝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귀중한 강의를 무료로 듣는 것도 고마운데 차도 공짜로 태워주시고 맛있는 간식까지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이경자 선생님과 안상학 선생님께서 탐방여행에 동행해 직접 설명까지 해주셔서 얼마나황송했는지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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