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별 강릉으로 떠나는 힐링캠프 - 인생에서 언제가 가장 아름다웠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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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Right now & Jus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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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언제가 가장 아름다웠던가요?
전 단언코 지금 이 순간이라 말합니다.
어딜가도 주뼛거리지 않고
누구와도 말을 할 수 있는
오지랖 넓은 중년의 시간
난 지금의 내가 너무 좋습니다.
앉았다가 일어나면
무릎이 뿌드득 거리기 시작한 지금
텔레비전 소리를 점점 높이고
덩달아 내 목소리도 점점 커져가는 지금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 나인지 엄마인지 모를
입가에 잔주름이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지금의 내가 너무 좋습니다.
아니,
지금의 나를 사랑하려고 합니다.
아끼려고 합니다.
- 아포칼립스(Apocalypse)-
모든 것이 가족, 아이, 일이 우선이었던 시간들이었지. 내가 피곤하더라도 남이 우선이었던 시간들이었어. 내 게으름은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나는 늘 동동 거렸고 타인의 배려를 앞세워 나를 옭아 메었어. 그것이 잘 사는 것인 줄 알았지. ‘커피 한 잔의 여유’ 이런 광고용 멘트는 텔레비전 속에나 존재했고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 주려는 선심성 멘트로만 날렸지 커피를 대접하기는 해도 정작 마실 시간을 갖지 못했는데…….
- 변화의 시작, 그 첫 단추 -
사고가 있었어. 일상의 큰 변화이고 전환점이 되었지. 주어진 삶에 대해, 그리고 산다는 것에 대해 이상적 고찰이 아닌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해 보게 되었어.
세 번의 수술을 하고 난 뒤 후유증으로 휴직을 했어. 몸과 마음은 일에서 분리되어 자연스럽게 멀어졌지. 일중독에 가까웠던 나에게서 한 발 떨어져 나오니 다른 세상의 존재가 보이기 시작했어. 우주의 생명체는 지구에만 존재하지 않듯 말이야.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 시간이 없어 배움을 미루어 왔던 것들을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고, 모임을 갖고.
어린왕자가 소행성 B-216을 벗어나 여러 별들을 여행하며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듯 말이야.
그러다 정신을 차리니 그 동안 무언가에 홀린 듯 대상만 바뀌었을 뿐 난 여전히 바쁜 거야. 하나 둘 놓아보기 시작했어. 내게 주어진 자유에 지쳐 휘청거리는 모습을 발견했지. 편안해 지고 싶었어. 어떤 극적인 변화를 바라지도 거창한 삶의 목표를 세우는 것도 아닌 그저 내가 가는 길 위에서 꽃도 보고 새 소리도 들으며 바람도 느끼는 그런 삶.
그게 바로 길 위의 인문학이 추구하는 목표겠지. 그러다가 만난 도서관 여행. 그저 평소처럼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그 인연으로 길 위의 인문학을 만나고.
외부에서 제공되는 자료가 있고, 적어도 한 가지 결과가 생기며, 모든 명령은 명백하고 실행가는 것이어야 한다, 는 알고리즘의 조건처럼 나는 도서관과 맺은 알고리즘의 연결로 책을 매개로 인문학을 만나고 그 인문학은 내게 명백히 실행가는 삶을 살라고 했지.
그것은,
나에게 집중하며 나에게 여유와 자유라는 시간을 허락하라는 명령어였어.
- 커피별 강릉으로 떠나는 힐링캠프 -
6월 4일. D-day 한 달 전부터 시골 작은 동네에 현수막이 걸리면서 주민들의 마음엔 벌써부터 커피향이 번지기 시작했지. ‘커피별 강릉으로 떠나는 힐링캠프’
우리 동네 호골산에서 불어오는 아카시향이 물러간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밤꽃향이 밤마다 잔인하게 창문을 타고 넘실댈 때도 하루하루 날짜 가는 것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어. 모처럼 남편과 둘이서만 조금은 낯선 사람과 마치 단체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랄까.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여행에서 부부인지 불륜인지 알아보는 방법이 100m 뚝 떨어져 서로 누구세요? 하며 앞 서거니 뒷 서거니 가면 부부이고 손을 꼭 잡고 가면 불륜이라던데. 괜히 남편과 친한 척 손도 잡고, 서로 어깨도 토닥거려주고. 심지어 연애할 때만 한다는 남자가 화장실 앞에서 기다려 주기까지.
한 공간에 같이 살면서도 이토록 애틋하게 살갑게 살면 좋으련만 꼭 나와서 다정한 척, 친한 척, 좋은 척. 쓰리(Three)척 3종 세트를 발산하며 돌아다녔지. 재미났어.
커피. 그 커피에 얽힌 잔잔한 그리움. 그리고 돌아갈 수 없지만 지난 시간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가슴 따뜻해지는 기분. 지금은 쓰리 척을 하지만 그때는 아마 진심이었을 우리.
대학교 1학년, 도서관 휴게실 자판기에서 백 원짜리 일반커피에 비해 월등히 향에서 앞서 갔던 오십 원 더 비싼 프리미엄 고급 커피로 사치를 누리며 잠을 쫒으며 공부하던 그 때. 젊음의 대가가 미래에 대한 불투명함이라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무한 긍정으로 지내던 그 때.
그 때 그 도서관을 나설 때 쏟아지는 별 빛 아래서 건네받던 헤이즐넛 향 가득한 따뜻한 종이컵 속 커피 한 잔과 그.
“너만 마셔.”
그래. 그랬지. 다시금 그 때의 오십 원 어치의 사치가 그리워졌어.
어쩌면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부터인지도 몰라. 어쩌면 서로를 나의 분신처럼 부리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지.
그 대상이 누구이든 내 속을 찬찬히 들여다 봐. 그 속에 부끄러운 나의 자화상이 내 마음의 우물에 갇혀 어쩌면 부끄러움도 모른 채 들어있을지도.
커피별 강릉에서 만난 건 고급스러운 예가체프나 케냐 AA 같은 명품 커피가 아닌 20년도 더 된 그 때, 도서관 자판기 커피의 향과 추억이었어. ‘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와 같은 타임리스를 느껴 본 시간이었어.
살면서 흔들리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어. 줏대 없어 보일지라도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그냥 있을래. 투철한 신념에 사로잡혀 주변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 유연하고 편안하게.
에스프레소처럼 너무 진한 것 보다 물을 많이 넣은 아메리카노처럼 부드럽고 싶어. 그리고 잘 늙어가고 싶어. 내 얼굴을 보며 누구라도 ‘커피 한 잔 사 주세요.’하며 속내를 꺼낼 수 있게.
그래서 난 지금 참 아프지만, 지금 참 아프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야. 그리고 난 지금 참 행복하고 편안해.
그래서 사고 후 다시 얻은 내 삶이 좋아. 아마도 그 말이 맞나봐.
신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는. 난 그 속에서 좌절하진 않을래요. 커피열매처럼 발갛게 익어 로스팅 잘 된 커피처럼 풍미 넘치는 내 중년을 가꾸어 가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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