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문화관도서관..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1강 - 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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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5일부터 듣기 시작했던 관악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제1차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강의가 7월 2일 토요일
경복궁과 고궁박물관 탐방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한 달간 수요일 밤이 되면 형광 불빛 아래 40여 명의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며 도서관에 모여들었다.
이번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은 그동안 대부분 인문학 강좌가 낮에 진행되어서 마음은 있어도 직장을 다니느라 참여하지 못 했던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도서관을 찾아 값진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여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2016년 관악 도서관에서 이뤄지고 있는 길 위의 인문학은 분야를 나눠 1차 김문식 교수님의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와
2차 신병주 교수님의 <500년 역사, 조선왕조실록>, 3차 강문식 교수님의 <유네스코 지정 기록 유산으로 본 조선왕조> 3차례 강의가
릴레이식으로 이루어지는 특별 인문학 강좌이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 첫 강의가 이뤄졌는데 조선 왕실에 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강의실을 꽉 채웠다.
엄마를 따라온 초등학생부터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인문학을 준비한
관악 도서관 관계자들도 고무되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조선 22대 국왕 정조가 남긴 8권의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바탕으로 입체 영상 복원된 3D <의궤, 8일간의 축제>를 감수하신
역사 전문가 김문식 교수님의 강의로 진행되었다.
바로 요분!!
조선 왕실 의궤 분야 연구 권위자이신 단국대학교 사학과 김문식 교수님의 강의를 직접 들으면서 우리가 잘 몰랐던 조선 왕실의
비밀을 하나둘 알아가는 즐거움이 아주 컸던 시간이었다.
김문식 교수님께서는 TV <역사 저널, 그날>에서 시종 미소를 지으며 다년간의 연구로 밝혀낸 다양한 조선 왕실의 다양한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조근조근 들려주시던 것처럼, 매시간 10쪽 넘는 자료를 배포하고 수강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서 강의해주셨다.
이번 관악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은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를 주제로 하여 모두 3강의로 이루어지는데
기록문화를 중시한 조상들의 뜻을 받들어 두고두고 확실히 기억을 해둘 겸 대략적인 강의 내용의 핵심 정리를 해보았다.
첫 주- 조선 왕실 의궤의 역사적 의의
둘째 주- 조선 국왕의 탄생, 즉위식
셋째 주- 조선 왕실의 자치, 연향
1강- 조선 왕실 의궤의 역사적 의의
'의궤'란 의식과 궤범이라는 뜻..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행사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종합 보고서이다.
조선 왕실에서 결혼, 장례, 왕세자 책봉, 각종 잔치 등 왕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글과 컬러 그림으로 기록한 의궤는
기록이 희소하고 세밀하며 300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국가의 각종 제사와 잔치, 왕실의 결혼식, 왕과 왕비의 국장, 왕자의 탄생에 따른 태실 봉안, 국왕과 신하의 활쏘기 의례,
악기 제작, 외교 의전, 농사 시범, 성곽과 궁궐 건축, 어진과 보인 제작, 실록 편찬 등등)
이번 강의를 통해 의궤는 국왕이 열람하는 <어람용>과 담당 관청이나 사고에 나눠 보관하는 <분상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람용>은 규장각에서 보관하는 의궤로 표지는 초록색 비단으로 화려하게 만들었는데 의궤를 2개의 놋쇠로 된 경첩으로 묶고
5개의 국화동을 박고 동그란 고리 1개를 달았으며, 표지의 제목은 흰 비단에 해서체로 썼다.
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프랑스에서 반환된 의궤, 중국책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분상용> 의궤는 담당 관청이나 사고에 보관하는 참고용 자료로 쓰이는데 표지는 삼베를 사용하고,
2개의 무쇠 경첩, 3개의 박을 정, 고리 1개를 달았다.
왼쪽은 <분상용> 오른쪽은 <어람용>
초록색 비단 표지였던 <어람용> 의궤는 대한제국 때 황제용 노란색 비단으로 바뀐다.
<대례의궤>는 고종이 대한 제국을 선포하면서 우리나라가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황제국임을 알린 내용을 기록한 의궤.
<명성황후국장도감 의궤> 표지- 왼쪽부터 황제 어람용, 황태자 어람용, 분상용
어람용 의궤..
속지는 잘 번지지 않는 두꺼우면서도 부드러운 고급 초주지 종이를 사용하였고 글씨는 사자관이 해서체로 쓰고 붉은 괘선을 둘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식의 입체감 있는 그림을 그렸다.
<영조 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
분상용 의궤..
저주지 종이에 글씨는 해서, 행서, 초서 겸용이며 검은색 괘선을 둘렀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1795년 윤2월 9∼16일 화성행궁에서 열린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의궤이다.
정리자로 찍어낸 활자본 의궤가 나오면서 의궤 종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일반 백성들도 의궤를 소장할 정도가 되었다 한다.
실제로 10월 초 무렵에 1박 2일로 원행이 재현되는데 당시 정조가 행차하면서 지나갔던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서는 이 행사 준비로
바쁘다는데, 그 당시처럼 배다리를 놓고 한강을 건너 수원 화성까지 그 원행 일행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클 것 같다.
<원행을묘정리의궤>.. 활자본 의궤. 그림은 목판
<기사진표리진찬의궤>는 1809년(순조 9) 혜경궁 홍씨 성혼 60주년을 경축하는 잔치의 전말을 기록한 의궤로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1894년 10월 24일 프랑스 해군이 영국에 10파운드에 팔았다고 전해진다.
의궤 기록 내용이 그대로 재현해볼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하고 그림이 아름다운데 이 의궤의 그림이 의궤 중 최고라고 한다.
<기사진표리진찬의궤>
의궤 유출과 환수..
만일을 대비해 강화도 <외규장각>에 어람용 의궤들을 보관하였는데 외규장각에는 총 1042종, 6130점의 물품이 소장되어 있었다.
1857년(철종 8)에 작성된 <외규장각형지안>에 따르면 외규장각에는 왕실 물품 25점, 어제와 어필 68점, 족자 6점,
의궤 401종 667책, 기타 도서 666종 4400책 등이 보관되어 있었다.
강화유수부 관아 바로 뒷편에 있는 행궁(임금이 지방에 오면 머물던 곳) 그림
강화 행궁 바로 옆에 있었던 외규장각 그림
2002년 복원된 외규장각 건물(7년 발굴조사 끝에 복원) CBS 노컷뉴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강화도로 쳐들어와 11월 11일 해군 중령 앙리 주앙 등이 외규장각의
많은 책자와 물품을 약탈해갔는데, 프랑스군은 도서 340책, 지도 족자 1건, 어필비문 족자 7점, 옥책과 보관함 6점을 가져갔고
나머지는 외규장각 건물과 함께 불태워버렸다.
불타 없어진 의궤 가운데 136종, 235책은 유일본이었는데 프랑스군의 방화로 다 사라져버렸다.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착륙하기 직전 포격하는 모습(종군화가 주베르의 그림)
강화도의 관아와 행궁의 궁궐들과 외규장각이 있는 곳에서 행진하는 프랑스군(종군화가 주베르의 그림)
50년대 말 프랑스로 유학 간 '박병선' 박사에 의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1975년 의궤가 발견되었고 이후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
2011년 4월 14일부터 5월 27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외규장각 의궤들이 영구임대 형식으로 반환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총독부가 1920년 일본으로 반출한 의궤 167책도 2011년에 서울대 규장각으로 반환됐다.
그중 일본 궁내청에서 환수한 의궤 68건, 122책을 포함한 1천757건, 2천751책의 <조선 왕조 의궤>는 보물 제1901호로 지정됐다.
(일제강점기 이전에 제작된 의궤로서 어람용 의궤, 분상처가 확인되는 분상용 의궤, 분상처가 확인되지 않는 의궤 중 필사본 등)
<조선 왕조 의궤>
한편, 그동안 목록만 전하던 의궤도 소재가 밝혀지게 되었는데 프랑스 국립파리동양언어학원도서관이 지금까지 알려진 순조대 한글본
의궤보다 더 앞서는 정조대에 한글본 <정리의궤(整理儀軌·뎡니의궤)>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마도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정조 비 등 여성들에게 보이려고 만든 의궤로 이 한글본 정리의궤는 주한 프랑스 초대공사를 역임한
꼴랭 드 쁠랑시(Collin De Plancy)가 수집해 기증한 자료라고 한다.
국립파리동양언어학원도서관은 한글본 정리의궤를 비롯해 한국 고문헌과 지도 등 621종, 1천369권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파리동양언어학원도서관 소장되어 있는 <한글본 정리의궤(뎡니의궤)>
조선 왕실의 의궤가 반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일반인들은 의궤에 대해 자세히 아는 바가 없으니 그저 그림책으로만 알았는데
이번 강좌를 통해 의궤는 사실 그림보다는 기록, 행사 문서(공문서)를 철해 둔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조선 초부터 의궤는 제작되었으나 17세기 이후 의궤들이 부분적으로 전하고 안타깝게도 임진왜란과 병인양요, 일제 지배기에
해외에 유출되거나 불타 없어진 경우가 많아 조선 초기의 의궤는 찾아볼 수 없다.
강의를 통해 우리가 보게 된 의궤가 어람용인지 분상용인지 알게 되었고, 내친김에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찾아가서 조선 왕실의 의궤들을 직접 살펴보는 의욕을 보였다.
조선 왕실에서 의궤를 제작할 때 대단히 공을 들이고 정성껏 기록을 남기기 위해 행사 치르는 임시기구인 특별 도감이 설치되어
정승급 관리를 두고 엄중하게 편찬하게 되는데 한석봉 같은 최고 명필이 글씨를 쓰고 김홍도 같은 최고 화원이 그림을 그렸기에
이러한 의궤는 조선 왕실이 두고두고 남기고 싶은 진정한 최고 예술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세하고 정확하고 정성을 다해 정리해둔 이러한 기록문화는 세계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가치 있는 자료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자부심까지 더해 아주 즐겁고 뿌듯한 마음으로 김문식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다음 길 위의 인문학 2강에서는 <조선 국왕의 탄생, 즉위식>에 대해 강의가 이어졌다.
(느꽃지기 2016.6.15.수.강의, 7.4.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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