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시립도서관] 무성서원에서 고운 최치원을 만나다. 참여후기- 양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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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목포시립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감상문
이름: 양 윤 자
<무성서원에서 고운 최치원을 만나다>
요즘 인문학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는 듯하다. 여러 가지 인문학 교육에 참여를 해봤지만 인문학의 뜻에 대해 자세하게 알기는 이번 강의가 처음이었다.
성균관대학교 김현우 교수님의 자상한 강의 덕택에 인문학에 대한 생각이 바로 서게 되는 시간이었다.
인문학이란 원래 청소년들을 국가에 부합하는 시민으로 키워내기 위한 교육 또는 그 원리를 의미했는데 이후 교양교육 또는 고전교육으로 확산되어서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여러 곳에서 인문학 강의를 들었는데 주변사람들이 목포시립도서관에서 있는 인문학 강의에 또 등록하자고 했을 때 난 반대했었다.
더구나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만 잠깐 만났던 최치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하니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와서 공자, 맹자, 최치원을 알아서 무엇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의를 들으면서 내 생각이 편향되고 속 좁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머리가 똑똑했지만 신라에서 신분제도 때문에 흙수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어린 최치원은 아버지의 권유로 12살 때 당시 선진국이었던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과거에 급제하고 많은 시와 글을 남기게 된다.
특히 879년 당나라에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때 <토황소격문> 을 지어서 임금은 물론 신하들까지도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학창시절에 마냥 외우기만 했던 그 <토황소격문>이 황소라는 사람을 토벌하기 위한 격문 이라는 사실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평생교육을 받아야 한다는데 동감하게 된다.
17년간의 당나라 생활을 접고 신라로 귀국했지만 조국 신라는 여전이 신분제로 꽉 막혀 있어서 국가개혁안을 당시 진성여왕에게 올렸으나 묵살당하면서 오히려 지방으로 보내져버렸다는 것인데, 그 후로도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우리의 현실이 마음 아픈 것은 나만의 생각뿐이었을까?
최치원의 위폐를 모신 무성서원의 답사가 시작되고 서원입구에 있는 현가루를 지나 명륜당에 들어섰다. 양쪽으로 기숙사까지 갖추고 있었던 무성서원을 보면서 옛 선조들의 후세교육에 대한 사랑도, 배우는 학생들의 열정도 느끼게 되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정자를 보면, 그냥 쉬면서 풍류를 즐겼거니 생각만 했었던 정자들, 피향정에 오르며 정자 아래 펼쳐진 연꽃 가득한 연못을 보면서 연꽃 향기가 펴졌다는 피향정의 유래까지도 알게 되었고, 피향정의 반대편에 새겨진 현판은 호남제일정 이라는 것도 새삼 올려다보며 다시금 생각에 잠겨본다. 한 개의 정자에 두개의 현판이라니...
지금까지 의미 없이 지나치던 정자들에도 각기 다른 의미들이 있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우리나라 곳곳을 둘러보고 모든 것의 소중함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정읍의 구절초 동산을 오르며 최치원선생 같은 애민정신 가득한 지도자가 많이 나와서 우리나라가 인류의 인간성 회복을 이끌어 나가는데 앞장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상하고 차분하게 강의해 주시고, 친절하게 답사 안내까지 해주신 김현우 교수님과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시립도서관 관계자들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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