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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립도서관]월봉서원, 필암서원에서 호남도학 정신을 만나다다.후기 - 송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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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숙진
댓글 0건 조회 682회 작성일 16-06-1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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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립도서관]월봉서원, 필암서원에서 호남도학 정신을 만나다다.후기 - 송남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소감

월봉서원, 필암서원에서 호남도학 정신을 만나다.

                           

 

  목포 시립도서관에서 작년 길위의 인문학 부여 능산리 고분군인 백제 왕릉원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백마강 탐방에 이어 올해도 공모사업에 선정이 되어 월봉서원 필암서원에서 호남도학 정신을 듣는다.’ 강의 1차 교육에 참가 하였다.

 

처음에는 강의만 참가하고 탐방은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평소에 필암서원 소세원은 많이 갔던 곳이라 생각 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시립도서관 담당자님의 탁월한 선택과 안목으로 명강사님을 초청해 주신 것이다 1차 강의에 참가한 후 마음의 감동을 받아 1차 탐방까지 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행이란 누구랑 언제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하다. 역시 나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40여명의 참가자분들도 한결같이 길위의 인문학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1차 강의, 2차 강의를 참석하신 분들이라. 강사님의 강의에 집중하며 몰랐던 부분들을 깊이 있게 알아 가는 시간들이었다. 첫번째 탐방지역인 장성 필암서원으로 사액을 받으면서 토지와 노비 등이 지급되었는데 필암서원이 서원의 규모를 갖추고 제 기능을 하게 된 것은 이 때부터라 한다.

 

 

필암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하서 김인후선생의 고향인 맥동에 붓처럼 예리한 형상의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하서 김인후선생은 고고한 절개와 맑고 깨끗한 인품을 가진 도학자였다. 34세에 인종 임금이 되는 세자의 시강이 되었다. 이때 세자는 하서의 학문과 덕행에 대한 총애와 기대가 가상하여 손수 묵죽 한 폭을 그려 하사하였는데 이 묵죽은 하서의 높은 절개를 뜻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36세에 인종이 즉위하자 큰 기대를 하였으나 같은해 갑자기 승하하자. 관직을 사양하고 세상과 인연을 끊은 채 학문에 매진하며 여생을 보내게 된다. 인근 가까운 곳에 통곡대가 있다 한다. 하서는 인종임금의 승하를 애통해 하며 해마다 인종임금의 기일인 7월 초하루에 산에 올라 북쪽을 향해 울었다고 한다. 후에 하서의 절개를 높이 평가한 정조 임금이 필암서원에 경작각이라고 쓴 편액을 하사한다.

 

경장각에는 인종이 하사한 묵죽도와 묵죽도판이 보관되어 있다. 누의 이름은 확연루라 한 이유는 군자의 학은 확연하게 크게 공정하고 하서 선생은 가슴이 맑고 깨끗하여 확연히 크게 공정하다. 이에 우암 송시열선생의 '확연' 이란 두 글자로 빛나게 하였다. 강당 '청절당' 역시 같은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필암서원은 문화재청이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한 서원으로 사적지 제24호 하서 김인후선생의 문집 유형 215호 하서 김인후선생의 유묵목판216호 보물 제587호 등 조선시대 서원 운영과 선비 교육에 관한 중요한 기록 자료가 전해오고 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올 7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될 제 40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권고안을 토대로 최종 결정될 예정이라 한다. 과연 장성은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라 할 정도로 문필의 대가들이 많이 배출된 지역이다.

 

두번째 탐방지인 담양으로 옮겨 점심식사를 하였다. 담양의 대표적인 음식인 대통밥 한정식은 천연 발효식품으로 맛을 내서인지 음식 맛이 깊이가 있고 산뜻하니 뒷맛이 개운해서 기분이 좋았다. 역시 여행의 묘미는 음식 맛이 좋아야 두 배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다음 도착한 소쇄원은 사적 제 40호로 중종대의 처사 양산보가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화를 입자 낙향해 은거지로 꾸민 별서서원 들 같은 곳에 지은 집과 정원이다. 소쇄원의 '소쇄'는 공덕장에서 나오는 말로 깨끗하고 시원함을 뜻한다. 양산보는 이 정원의 주인이다. 대봉대 소쇄원48영의 주요한 시점의 하나로 여기에 서면 소쇄원의 모든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제월당은 정자라기보다는 정자의 성격을 띠는 건물로 주인이 거쳐하며 조용히 독서하는 곳이라 한다. 광풍각은 비 갠 후에 해가 뜨며 부은 처량한 바람이라는 뜻으로 손님을 위한 사랑방이라 한다. 종손이 가끔 계시다가 차도 한 잔 하기도 하는데 오늘 방문 때는 외출하셨는지 열쇠가 잠겨 있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기대승선생의 월봉서원으로 발길은 옮긴다. 이야기가 살아있는 월봉서원 백옥련 선생이 계시면 차를 한잔 하고 싶었는데 오늘은 한국관광공사 주최 팸투어가 있는 날이라 손님들과 마을로 내려 가셨다고 하신다. 월봉서원은 선조11년에 김계휘를 중심으로 한 지방 유림의 공의로 기대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효종5년에 월봉이라 사액되었다. 빙월당은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장판각에는 고봉집 목판474판이 보관 되어 있다. 서원 안으로 들어가 조망하는 것보다는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운치가 있어 보였다. 오솔길을 따라 가다 보면 기대승과 이황의 8년 논쟁이 귀감이 되는 이유 8년 논쟁 자체가 남다르다. 32세였던 기대승이 아바지뻘인 58세 이황과 열띤 토론을 이어가는데 상대방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자신의 논리도 다듬고 오늘날의 우리세대에게 귀감이 되는 내용이다. 고봉 기대승선생의 묘소에 참배한 후 오늘 탐방을 마치고 40여명의 탐방 참가자들과 행복한 마음과 꿈을 안고 목포로 돌아왔다. 아울러 탐방에 힘써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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