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후기

참가후기

> 참가후기

[동두천시립도서관] 강화산성 길을 찾아...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홍도의
댓글 0건 조회 740회 작성일 17-06-04 15:14

본문

[동두천시립도서관] 강화산성 길을 찾아...


 강화산성 길을 찾아...

길 위의 인문학 현장을 둘러보았다 -

 

어제 아들과 강화도를 다녀왔다. 지난 목요일 동두천시립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두 번째 시간에 들었던 강화산성 길을 찾기 위해서다. 강화산성 서문 쪽 연무당 옛터 근처에 주차 공간이 있다. 성곽을 따라 서문부터 북문쪽으로 오르기로 했다.

연무당 옛터. 아픈 역사의 현장, 1870(고종 7) 강화유수부의 군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세워진 조련장.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길건너 산성의 서문으로 건너갔다. 산성앞에 강화산성에 대한 안내판이 보인다.

강화산성(江華山城), 서문(첨화루, 瞻華樓). 강화산성은 사적 제132.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고종 19(1232)에 도읍을 강화로 옮기고 궁궐을 지을 때 도성도 함께 쌓았는데, 개성의 성곽과 비슷하게 내성, 중성, 외성으로 구성되며,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 현재의 강화산성이다. 원래는 흙으로 쌓았으나 숙종 3(1677)에 현재와 같은 석성이 되었으며, 성의 주위의 길이는 7,122m이다. 4개의 대문, 4개소의 암문(暗門), 2개소의 수문(水門), 2개소의 성문장청(城門將廳)이 있었다. 남문은 안파루, 북문은 진송루, 동문은 망한루, 서문이 첨화루이다.

 서문(첨화루 瞻華樓)에서 북문으로 오르는 길은 성벽을 따라 올랐다. 가던 길이 끊겨, 산사 스님에게 길을 묻기도 했다. 안내표지판을 보며, 흙으로 쌓인 성곽길과 솔 숲 산길을 지나, 30~40분여 오르다 보니 북문(진송루 鎭松樓)이 나타났다.

진송루(鎭松樓)와 북장대(北將臺). 이동미 여행작가 강의때 들었던 기억을 살려 진송루 성곽을 따라 500여미터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북장대 터가 나타났다. 사방으로 확 트인 전망. 녹음 짙은 푸른하늘과 흰 구름의 조화로 북문이 한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북장대는 터만 남아있고, 나무에 새겨진 심도기행(1906) 저자, 조선 선비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의 시만 보인다.

 

높 다란 석축위에 북장대가 있는데, 

산가득 숲 우거졌고 산들바람 불어오네.

누가 먼저 차지하여 무예위엄 보이는가.

분명한 군령 후엔 몇 잔 술이 있었겠지.

 

멀리 보이는 강이 강연 때 배웠던 조강인지, 아니면 한강인지, 그것도 아니면 염하인지 헷갈린다. 강 넌너 보이는 곳이 북한인지, 파주의 북쪽 어디쯤인지도... 관광안내지도에 나타난 북장대에서 내려가는 길에 나타나는 동문 코스를 생략하고, 북문에서 고려궁지로 난 길(차도와 인도 조성길)로 바로내려가기로 했다.

내려오면서 문득 북문과 서문의 현판 한문으로 새긴 글자의 배열이 다름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서문(첨화루)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자가 배열(樓華瞻)되었는데, 북문(진송루)는 그 반대로 배열 되어있다. 그 원인은 무얼까? 궁금했다.

고려궁지 & 왕가정 묵밥. 수령 수십년 이상씩은 되어 보이는 벚나무 터널을 지나 10여분쯤 내려오다 보니, 왼쪽 고려궁지 울타리 안으로 외규장각의 모습이 보인다. 전에 아이들과 한번 와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점심시간이 지나기도 해서 마침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갔다. 트인 이층건물 테라스에 자리 잡고 묵밥과 두부김치를 주문했다. 왕가정 묵밥집에는 가족이나 끼리끼리 같이 온 지인들이 그들만의 대화 나누며,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식사후 잠시 쉬고 내려오니, 고려궁지 정면 승평문(昇平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궁궐 영역 지도에 매표소, 화장실, 주차장이 보이고, 궁궐 영역에는 동헌, 이방청, 강화동종, 외규장각, 승평문으로 나뉘어 표시되어 있다.

 

강화고려궁지(江華高麗宮趾). 사적 133. 고려 시대 궁궐이 있던 곳.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고종 19(1232)에 도읍을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후 궁궐을 건립하고 39년간 사용하였으나, 몽골과 화친하여 환도(1270)할 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등을 모두 파괴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행사 시에 머무는 행궁 외에도 유수부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 장녕전, 만녕전 등을 건립하였으나 이 또한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 되었고, 1977년 강화 전적지정화사업으로 보수정비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 시대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2003년 복원) 등이 남아 있다.

고려궁지를 지나 강화도령의 이야기가 기다리는 용흥궁(龍興宮)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